Interesting,
Pioneering and Satisfying

 뉴스레터

제목 경영자독서모임으로의 초대34:직언
발간일 첨부파일

직언/저자-신봉승 교수(추계예술대)

 

‘文史哲 600’이라는 것은 문학책 300권, 역사책 200권, 철학책 100권 이렇게 600권을 읽어야 한다는 의미로 30세가 되기전에 해야 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문학책 300권은 한국문학전집 100권, 세계문학전집 100권, 그리고 여기에 끼지 못한 문학책 100권을 말합니다.
문학은 ‘言語의 寶庫’라고 합니다. 문화어라는 것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언어의 보물 창고에 들어가는 것이고 문학전집을 정독을 하는 것이죠. 역사책 200권을 마스터하는 것은 체험의 보고입니다. 우리가 미처 체험하지 못한 것이 이 역사책 안에 전부 있습니다. 직업이 달라서 체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연령층이 달라서 못하는 경우도 있으나 역사책만 들여다 보면 그것이 전부 있어요. 현재 2004년에 대한민국이 왜 이렇게 안 풀리는가, 알만한 사람들이 역사책을 읽지 않아서 그런 것이죠. 어떤 사람이 탄핵정국이라고 하는데, 저보고 그래요. ‘선생님, 이거 탄핵을 워낙 처음 당하다보니 이것에 대한 역사에 좋은 아이디어 없습니까?’ 하고 저에게 물어요. 조선왕조에는 왕조실록에 탄핵이라는 단어가 6500번 나옵니다. 선조 20년은 1년동안 탄핵이 111번 있어요. 역사책을 보면 어떤 경우에 탄핵을 하는지 다 나와 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읽는 사람도 없고, 그런 것이 적혀 있는지도 모르죠. 우리는 체험을 처음한다고 고생하지 말고, 역사책을 들여다보면 체험을 하게 되어 있죠.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드라마 작가죠. 역사학자는 전혀 아니고, 역사를 학문으로 배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지고 계신 직언을 국사편찬위원 회장이 읽으시고 저보고 하시는 말씀이 ‘나보다 나아.’라고 하셨습니다. 역사학자라고 역사를 정밀하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드라마를 쓰기 위해서 아주 정밀하게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을 정밀하게 읽었고 직언이라는 책에 구체적으로 많이 인용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내용을 우리가 읽음으로써 체험을 하게 되고, 역사를 30세에 읽으면 50살보다 훨씬 판단력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철학책은 무엇의 보고이냐, 초월의 보고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현실이 아닌 초월의 세계도 조금 경험할 필요가 있어요.
제가 직언을 쓴 이유는 정체성때문입니다. 정체성이란 것이 무엇이냐고 밝혀보고자 이 책을 썼습니다. 여러분 여유가 조금 있으니까, 동유럽 여행을 해보셨죠? 헝가리가면,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이란 곳을 가게 되는데, 너무 이쁩니다. 일평생동안 파리가 제일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파리는 흉내도 못 따라가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이라는 곳에 들어가면 구시청 청사가 있어요. 여기는 가운데 동상이 있고, 시청건물에 시계가 커다란 것이 꽤 높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멍이 뚫려 있어서 시계가 종을 울리면 예수의 12제자가 걸어나오고 종이 그치면 들어갑니다. 이것을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8시 45분되면 사람들이 모이고 8시 59분이 되면 사람이 천명쯤 모이고, 9시가 되면 종이 울리죠. 문제는 이 시계입니다.
세종 19년에 우리는 이것보다 월등히 좋은 것이 있었습니다. 경복궁에 가보시면 사정전과 경회루 사이에 건물이 있는데, 방의 크기는 이 방의 반만하고, 건물은 1층이고 뒤에는 산이 있고 이것을 왕조실록에는 칠척지산으로 되어 있어요. 일곱자짜리 종이로 만든 산을 뒤에 걸고 해가 뜨면 해가 동에서 서로 넘어가고, 이 산에서는 폭포물이 쏟아지는데, 이 앞부분은 전부 논과 밭입니다. 이 폭포물이 떨어져서 논, 밭에 도랑을 이루면서 흘러갔다. 여기에 옥으로 만든 옥인형이 13개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나무로 만든 인형이 14개가 서 있습니다. 1각이라는 것이 15분인데, 이 옥으로 만든 인형은 15분마다 전부 꽹과리를 치고, 나무로 만든 인형 14개는 1시간마다 징을 쳐요. 그리고 자시면, 판대기가 탁 누워서 12개의 12간지를 알려줘요. 이것이 세종 19년에 완성이 되었고, 이것을 만든 사람은 장영실입니다. 얼마나 유명하면 KAIST 본관 교정에 장영실(將英實)의 동상을 세웠을 정도로, 우리나라 과학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죠. 세종께서 과학을 해야 하는데, 머리 좋고 손재주 좋은 사람을 뽑아 올리라고 했더니, 동네에 괜찮은 아이가 하나 있는데 16살 먹은 관노의 자식이라고 해요. 관노의 자식은 벼슬을 못하잖아요. 그런데 세종이 이 사람을 불러서 장영실에게 족집게 선생을 불러요. 세종시대 희대의 학자인 정인지를 불러서 가정교사로 두고 이 사람을 가르친 것이죠. 이것이 리더쉽입니다.
이 당시 한국의 과학, 천문학 수준은 어느정도이냐, 일식을 계산을 해요. 상상이 됩니까? 여러분 학교 다닐 때, 일식 배우잖아요. 세종 때는 이런 디지털이 없어요. 왜냐하면 1, 2, 3, 4, 5, 6, 7, 8, 9, 10은 있으나, 0이 없어요. 디지털은 0, 1, 0, 1이잖아요. 그러나 일식은 계산해 낼 수 있어요. 양력을 안 쓰는데 어떻게 일식을 계산하냐, 월식이겠지라고 생각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아라비아 노인들이 있었습니다. 젊어서 와서 여기 와서 늙은 이런 사람들이 고려시대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쓰기는 음력을 쓰지만 양력이론이 있었다. 이 때 만들어 낸 책이 ‘칠정산내외편(七政算內外編)’으로 이 원본이 서울대 규장각에 있습니다. 아라비아 숫자는 전혀 없고, 한문으로만 되어 있지만, 하나는 일식을 계산한 책이고, 하나는 월식을 계산한 책입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최초로 일식을 예고한 나라가 세종시대입니다. 여러분 상상이 안 되죠? 워낙 처음 들으니까요. 이것을 우리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이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천지차이죠.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창경궁 안에 대형시계를 만드는 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정체성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 책에는 상당히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만,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집안의 체통(부통), 학교의 도통(사통), 종묘(정부)의 군통을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첫번째 덕목이 상지(尙志)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자식들에게 뜻을 세우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두번째 덕목은 돈학(敦學)입니다. 학문을 돈독히 해라. 쉽게 말하면 공부를 잘하라는 뜻이죠. 세번째는 명예(明禮)라,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처음부터 예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데, 혼례, 관례, 장례, 제례 이 4가지가 전부 ‘예’자가 붙어 있어요. 그래서 예절을 더욱 밝게 해라.네번째가 병의(秉義), 의로운 것을 잡아라. 불의의 편에 서지 말고, 정의로운 편에 서라. 다섯번째, 금염(衿廉), 청렴결백한 것을 긍지로 삼아라. 여섯번째, 선치(善恥), 챙피한 것을 알아라.
이렇게 일평생을 가르치는데, 그냥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배운 것은 몸소 지행(知行)을 해라, 이것이 조선 주자학의 첫번째 덕목입니다. 배우고 익힌 바는 행동으로 옮겨라. 그래서 이 대목을 맞추면 선비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죠.
이것은 리더쉽하고도 관련이 있습니다. 리더쉽을 ‘Stock of Charisma’라고 적습니다. 이것은 독일의 유명한 사회학자들이 내린 정의 입니다. 카리스마가 저축이 되어야 한다. 카리스마의 저장량을 가지고 리더쉽을 말한다. ‘Charisma’는 희랍(그리스)말로 신의 은총입니다. 신으로부터 받은 많은 은총을 저축을 많이 해야 그 사람이 리더쉽이 있다고 합니다. 제 혼자 생각해보기에 조선시대는 참 리더쉽이 많았던 시대인데 무엇을 저축했는가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가지고 저축을 했는가. 그분들이 저축을 한 것은 위엄(威嚴)입니다. 위엄을 받는 사람들이 신뢰(信賴)를 보내주어야 합니다.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리더를 지휘하는 리더는 위엄이 있어야 하고, 부하들이 신뢰를 보내주지 않으면 리더쉽이 성립이 안됩니다. 그래서 위의 글자만 따서 위신을 저축을 많이 한 사람이 리더쉽이 있다고 하죠. 지행(知行)을 해야 선비가 되고 선비가 조정에 들어오면 관료가 되는 것이죠. 선비가 관료가 되었을 때를 우리는 사대부(士大夫)라고 합니다. 조선시대는 궁극적인 목표가 이렇게 공부를 해서 배우고 익힌 바를 몸소 행하는 사람이 되어 관료가 되고, 관료 중에서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가, 언관(言官), 관관(館官), 옥당(玉堂) 즉, 교리(校理)입니다. 이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이러한 자리는 오직 이것밖에 없어요. 직언(直言)밖에 없어요. 좋은 선비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직언할 수 있는 자리를 지망을 하는 것이죠.
국가는 그 기본이 굴러가야 합니다. 국가는 정상적인 룰이 있습니다. 거기에 관한 여러가지 사항을 제가 짧은 밑천을 가지고 톡 털어서 몽땅 써 놓은 책이 직언이라는 책 입니다.

*이원고는 지난5월3일 제18기 경영자독서모임에서 진행되었던 신봉승 교수의 강의를 바탕으로 IPS에서 재작성한 것입니다.



이예정 연구원 yjlee@ip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