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esting,
Pioneering and Satisfying

 뉴스레터

제목 경영자독서모임으로의 초대31: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발간일 첨부파일

저자: 고승덕(변호사)

오늘 참 좋은 자리에 제가 강사로 오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참 좋습니다. 앞에서 조동성 교수님께서 제 직업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사실은 저도 제 정체를 잘 모릅니다. 오늘 같은 경우 제가 경찰청 자문위원이거든요. 경찰수사보안연구소에서 여경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에 관한 인권에 대해 강의를 하고, 사무실에 들러서 변호사 일 한 3시간 일하다가 KBS 에 새로 MC 를 맡은 게 있습니다. 월요일 7시에 ‘경제특종’ 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겼는데 방송 녹화하고, 사실 요즘 제가 증권 연수를 받는 것이 있는데 시간을 보니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사실 오늘 처음으로 펑크를 내고 여기 왔습니다.
책 때문에 강의를 드리게 되었는데, 사실 인생 경험으로 보면 저보다 경험도 많고, 학식도 더 깊으신 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책이지만 책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 책을 쓸 때, 원고량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출판하는 분들한테 물어보니 살아오는 이야기를 책으로 두 권으로 내면 두번째 권은 안 팔리린다는 거예요. 영화도 마찬가지로 1권 2권 나가면 인기가 없다는 거죠. 제가 뭐 삼국지처럼 시리즈로 책을 낼 것도 아니고, 한 권을 내면 책 분량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350 페이지 정도로 하자해서 고민한 끝에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는가를 생각해서 드러낸 내용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고변호사가 살아온 것이 대단히 궁금한데, 정치하다가 뭐 공천 받고, 뭐 3일 있다가 그만두고 말이죠. 또 최근에 뭐 이혼했다고 잡지에 나기도 하고, 여러가지 궁금한 것들이 많아요. 그런데 책을 딱 들여다보면 그런 내용들이 없다는거죠. 그래서 제가 처음에 쓴 원고를 가지고 나중에 다른 제목으로 또 다른 독자층을 위해 다른 책을 내자, 아줌마라든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은 다른 새로운 버전으로 내자라고 생각을 하고, 이번 책은 젊은 사람들, 어떻게 공부를 하면 좋을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기본방향을 제시하는 그런 면에서 여기 계신 분들이 책을 읽으면 대단히 답답해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 내용은 주로 제가 살아온 이야기 입니다. 살아온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사실은 제가 살면서 가장 느꼈던 것이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상당히 외롭다고 생각하며 지내왔습니다. 상당히 의외죠. 아는 사람도 많을 것 같고 그런데 어떻게 외롭다고 하느냐. 제가 인생의 고비마다 누구에게 상의할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제가 부모님 말씀 안 듣고 커왔고, 세상 관점에서 보면 부모님 말씀을 무척 안 들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제가 책에 중학교 이야기를 써놓았죠. 어린 시절에 몸이 매우 약했습니다. 그래서 죽을 뻔 한적도 있는데… 책에 보면 어린 시절 밤에 숨을 제대로 못 쉬어 여러해 고생한 이야기도 있지요. 숨을 못 쉴 정도니 사람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숨 못쉬는 고통을 경험한 이후로 숨을 제대로 편하게 쉴 수 있는 것 만큼 즐거운 것이 없습니다. 행복한 것이 없습니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는, 지금 실내공기가 맑죠. 지금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것 만으로 엄청 행복한 사람이예요. 숨을 못쉬는 고통을 여러 달 경험했기 때문에 제가 초등학교 때 숨을 못 쉬어 고생하던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너무너무 행복한 사람이라는 거죠. 사람이라는게 그렇더라고요. 죽고 싶어도 죽지를 못합니다.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고비가 많이 있어도, 자기 마음대로 죽고 싶어도 죽어지지가 않아요. 초등학교 어린 시절, 숨이 안 쉬어져서 굉장히 심한 기관지 앨러지로 밤에 잠을 전혀 못 자는거죠. 숨이 답답하니 잠을 잘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헉헉대며 겨울을 넘기는데, 어린 생각에 차라리 숨이 멎어버린다면 고통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해도 제가 어리니깐 어떻게 죽는 줄은 모르죠. 그래도 사람이 죽지않고 지금까지 살더란 말이죠. 그래서 사람이 참 질긴 존재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고를 당해서 불행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죽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결국 살아나는 것이 사람입니다. 일종의 운명과도 연결되겠지만요.
몸이 약하다보니 제가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입시가 있었습니다. 시험이 있었더라면 제가 약한 몸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중학교를 들어가는데 중학교가 처음으로 추첨제로 처음 바뀌면서 제가 살아났습니다. 공부를 안하고도 학교를 가게 되니까 그 때부터 인생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당시 문교부 정책이 거의 냉탕 온탕하는 분위기로 너무 자주 바뀌잖아요. 요즘 우리나라 주식시장도 5분 후를 알 수 없다라고까지 말하는데, 문교부 정책이 갑자기 바뀌니까 갑자기 중학교 명문을 없애고 추첨제를 만들다 보니 학교를 갑자기 논두렁에 짓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라고 말할 수도 없는 짓다만 그런 학교입니다. 그런 학교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막상 학교를 가서 보니까 학교 다닐 맘이 안 나더란 말이죠. 그 때 놀았으면 지금 제가 그 동네서 놀고 있었겠죠. 그래서 제가 중학교 2학년 올라갈 때부터 서울로 공부하러 올라갈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솔직한 것은 뭐냐면, 제가 전남 광주에서 쭈욱 자랐었는데,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그러는거예요. 광주 일고가 그 지역의 명문이예요. 동네 명문인데. 그런데  “광주 일고에 갈 사람 손들어봐! ” 하니까, 반 아이들이 다 손을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보고 제가 너무 실망을 했어요. 그 중에는 정말 공부를 못하는 애들도 포함되어 있을 거 아니예요. 그런데 손을 다 드는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린 마음에 김이 팍 샌 거예요. 그래도 결국 나중에 보니까 손을 든 아이들이 다 광주일고를 가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중학교 2학년 때 아이들이 다 손을 드는 거예요. 거기서 김이 새가지고, 그러면 나는 서울로 와서 경기고등학교를 간다. 경기고등학교가 그 때 가장 어려운 학교였거든요. 그렇게 욕심을 세웠는데 문제는 제 주위에 경기고등학교를 간 사람이 없어요. 동네에도 전혀. 그 당시만 해도 지방에서 서울 경기고등학교 간다는 것은 거의 하늘의 별따기인데, 그 전에 입시로 명문인 광주 서중이라는 명문이 있었는데 그 명문에서도 일년에 몇 명 못 가는데, 선배도 전혀 없죠.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게 오기죠. 어떻게든 가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거기서 인생이 피곤하기 시작하게 된 거예요. 광주 일고를 간다고 생각했다면 제가 놀아도 간다고 생각하고 놀았을 겁니다. 그래도 아마 들어갔겠죠. 반에서나 학교에서는 잘했으니까. 그런데 전혀 황당한 목표를 세워놓은거예요. 달나라 가서 나무를 한그루 심겠다라는 식으로.. 저희 부모님도 황당하죠. 집안에 그런 사람도 없고 근처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간다 이거죠. 그러니까 인생이 거기서부터 피곤해지기 시작했는데, 그러니 어떻해요. 목표는 있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방법은 죽어라 하는 방법밖에 없더라는 거죠.
저는 인생 철학 중의 하나가, 다른 사람이 나와 똑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내가 남보다 머리가 월등히 좋다, 잘한다 생각하면 접근 방법이 달라지죠. 머리가 좋거나 잘할 수 있으면, 덜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플러스 알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이너스 알파하게 된다고 한다면, 결과는 제로가 아니라 오히려 마이너스 알파 쪽으로 가요. 사람이 꾀를 부리면. 남이 나랑 똑같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어떻게 경기고등학교를 갈 수 있느냐. 어린 마음에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대한민국의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알 방법이 없어요. 시골에 박혀서 공부하기 때문에. 그 때 어떻게 생각을 했었냐면, 아주 단순한 생각이예요. 남들도 나랑 똑같다. 내가 공부하기 싫으면 남도 하기 싫고, 내가 자고 싶으면 남들도 졸릴 것이다. 내가 놀고싶다고 놀아버리면 남하고 똑같은거죠. 자고싶다고 자버리면 남하고 똑같아요. 그래가지고 똑같이 해놓고 어떻게 잘하기를 바라느냐는 거죠.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기 어려움 학교를 가느냐는 거죠. 그런 생각을 하고보니 남과의 싸움이지만 결국은 내 자신과의 싸움이더라는 거죠. 하기 싫으면 다른 친구도 다 공부하기 싫어하기 싫을 것이다. 조금 더 참고하면 조금 더 싫어지잖아요.
사람이라는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점점 단계가 올라갈수록 거꾸로 고통은 점점 더 증가하는거예요. 한 단계를 올라갈 때마다 고통은 더 증가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쉬운데 한 단계를 더 높일 때마다 돌파하는 고통은 굉장히 큽니다. 잠도 조금 졸릴 때 참는 것은 쉽지만, 굉장히 졸릴 때 참는 것은 고통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이죠. 저는 남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굉장히 괴로울 때 참는 것이 남들이 그까진 못따라 올거라 생각하고 하는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 부모님이 저를 도시락 싸들고 말렸어야 제가 지금 인생이 대충 놀고 먹고 살고... 모르겠어요. 먹고 사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요. 그런데 부모님이 해봐라 하시는거에요. 해 볼려면 해봐라. 그런데 아버님 생각은.. 아버님은 특이하게 지금까지 공부하라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안 하셨어요. 저희 아버님은 저한테 일체 싫은 소리 안 하세요. 그 이유 중의 한 가지가, 제 초등학교 때 가출을 몇 번 했기 때문에 싫은 소리하면 저는 ‘안 살아요’ 하고 나갔었어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가 동네에서 돌다가 붙잡아서 그러면 안 된다 해서, 제가 초등학교 때 가출을 3번 정도 했었어요. 저희 아버지는 싫은 소리하면 튕겨나가 이상하게 될 것 같아서인지 말을 못하셨죠. 지금까지도 그렇구요. 해볼테면 해봐라해서 안 말리셨단 말이죠.
사실은 그 때 저도 기대를 안 했어요. 제가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풀어보니 제가 점수가 미달이었어요. 200점 만점에 저는 193-4점 정도를 맞는데, 경기고 커트라인은 196-7점인 거예요. 몇번을 풀어봐도 마찬가지였어요. 합리적인 사람이면 포기를 했겠죠. 기출문제를 몇회를 풀어봐도 미달이니까 포기를 해야 하는데 저는 포기를 안 했다는 것이 그것이 제가 특이한 사람이었죠. 그런데 왜 포기를 안 했냐면 할만큼 했는데 남들이 더 공부를 했겠는가라는 생각으로 부딪혀보았습니다. 그런데 학교 들어가서 보니까, 실제 커트라인은 훨씬 낫더라는 것입니다. 그 때는 학교 위신 때문에 경북고가 몇 점이라고 발표를 하면 경기고는 그것보다 1-2점 높여서 발표를 해야만 했어요. 그러다보니 실제 점수보다 과장되게 되었죠.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이 ‘포기하지 않으니까 되더라’라는 것이죠.
그때 인생의 한 단계 돌파가 있었죠. 정말 훌륭한 학교였어요. 날고 뛴다는 사람 여럿도 와 있구요. 그런데 이상하게 학교에서 공부하란 말을 안 해요. 그래서 1학년 땐 놀았어요. 1학년 때 열심히 한 것은 영어공부만 했어요. 편식처럼 영어 공부만하고 나머지는 안 했어요. 그랬더니 2학년 때 수학점수를 받아보니 40점으로 낙제점수가 나왔어요.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실망을 하셨죠. 선생님이 오라고 하셔서 아버님은 좋은 일이 있는 줄 알고 가신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이 ‘이 성적으로는 대학 못 간다’고 하신 거예요. 아버님 얼굴이 완전 낯이 딱 변해서 오시더라구요. 그 때 경기고면 서울대 2/3정도 갔쟎아요? 연고대를 가면 반에서 밑이구요. 그런데 서울에 갈 대학교가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참 쇼크를 받았어요. 제가 태어나서 공부를 못해서 고민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어요. 그 때는 어린 마음에 인생 다 틀렸구나, 좋은 대학 갈 줄 알고 서울 경기고에 왔는데 언제 수학을 따라가냐.. 또, 저희 아버지는 인간문화재세요. 굉장히 특이한 분이십니다. 재테크라는 것은 우리아버지 사전에 없어요. 굉장히 고지식한 분이어서 과외라는 것은 말도 못 꺼내요. 우리 때도 과외가 성행해서 요즘도 그렇지만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과외를 할 것이면 학교를 가지 말아라가 저희 아버님 방침이셨어요. 과외를 할 것이면 분수에 맞게 살아라라는 것이죠. 남들은 과외해서 탄력받아 가고 있는데, 저는 낙제점수를 받았는데 과외도 하지 말라고 하시고, 그 때 제가 참 한탄을 했어요. 저희 아버지가 의사셨기 때문에 굶지는 않죠, 그런데 의사로서는 전혀 성공을 못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의대를 안가고 법대를 갔는데.. 그래서 제가 한탄을 했어요. 우리 아버지가 넉넉하게 재산이 있으면 과외를 좀 시켜주시면 조금 편하게 공부할 수 있쟎아요. 그러다보니 제가 이판사판으로 공부하기로 결심을 했어요. 그래서 2학년 2학기 동안에 수학만 집중적으로 날밤을 새면서 했어요. 그랬더니 점수라고 하는데 오늘 수학공부했다고 내일, 모레 잘하게 되는 것이 절대 아니예요. 10일 뒤에 잘하게 되느냐 그것도 아니예요. 그런데 6개월이 지나고 보니 굉장히 잘하게 되었어요. 제가 얼마나 6개월동안 매달렸겠어요. 제가 책에도 썼습니다만, 뭐든지 6개월동안 파고들면 잘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이 생긴거예요. 6개월간 파고들면 시한부 돌파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죠. 실제로 2학년 2학기가 때부터 수학을 잘하게 되었어요.
이때 제가 콩나물 기르기 전략을 깨달은 것이거든요. 우리 때는 망 같은 채가 있어 콩나물 을 넣고 물을 바가지로 부어요. 그리고 보면 그대로예요. 이런 식으로 물을 몇 번 붓고, 쳐다봐도 싹은 안 나지만 15일 후에는 콩나물이 되어있는 거예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저는 콩나물을 기른다는 기분으로 매달려요. 오늘과 내일은 똑같지만, 오늘과 6개월 후엔 엄청 차이가 날 것이다라는 심정으로 매달렸어요.
국영수 중에서 영어와 수학이 되니까, 국어는 대충해도 잘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 때 위기를 넘겼죠. 고3 올라가서는 전교에서 1,2등을 계속 다투고, 제가 그런데 제일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제가 3학년 2학기 성적이 내신성적도 제일 좋았어요. 그런데 우등상을 주는데 원래 학기별로 주게 되어있거든요? 그런데 3학년 2학기 때에는 1년 평균을 해서 1등을 다른 사람에게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우리집이 빽이 없어서 이런 꼴이 나는구나, 우리 부모님은 한 번도 학교 근처에 와 보신 적이 없어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대학교를 들어갔어요.
대학교 들어가보니 별천지라, 공부 안 해도 되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쓸데도 없는 건데, 제가 자라면서 콤플렉스가 뭐냐면 남자로서 좀 못났다는 것이 콤플렉스였어요. 얼굴도 크다, 키도 작다, 지금은 말 잘 하고 있죠. 그런데 그 때는 말도 못했어요. 남자건, 여자건간에 처음보는 사람은 가슴이 떨려서 말도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같아요. 그러면서 여자 꼬신다고 돌아다니니 꼬셔질리도 없죠.
이렇게 지나고 보니, 술이나 먹고, 공부도 제대로 한 것도 없고 그냥 1학년 겨울방학이 되었더라구요. 그러니 인생이 허망해요. 이렇게 한 일도 없이 대학교 4학년까지 보내야 하는가.. 우리 때는 사회과학계열이기 때문에 성적별로 학과를 지망했어요. 처음에는 법대에 대한 생각이 없었어요. 왜냐면, 공부하기 싫으니까.. 고등학교 때 죽어라고 2년간은 공부했으니 대학까지 와서도 그런다는 것이 힘들고, 그리고 서울대 나오면 대충 직장 가서 살겠다란 생각이 드니까 처음에는 고생 안하고 살겠다란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1년 놀아보니까 놀아도 한평생, 공부해도 한평생 어짜피 똑 같은 거예요. 그래서 고시를 해보자 해서 1학년 겨울방학 때 고시공부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응시자가 많으니까 1년 공부해도 떨어지는 사람이 많아요. 당시에는 사법고시 응시자가 많지 않았으니까, 지금처럼 떨어지는 사람이 많지 않았죠. 3개월 간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어요. 공부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여졌어요. 우리 때는 1학년 때 법학개론 외에는 법을 배우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1학년 겨울방학 때 2학년 올라가면서 1차 시험을 합격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1차 시험에 헌법, 민법, 형법은 일단 필수고, 경제학도 있고 선택과목에 국제사법, 법철학이 있는데 어떻게 배우지도 않은 과목을 시험을 친다는 목표를 세우냐는 것이죠. 제가 책제목처럼 얻은 철학이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잖아요. 모든 인생의 게임은 상대적인 게임이라는 것이죠. 사회 생활 내에서는 사람들과의 경쟁이니, 즉, 객관적인 불가능이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1차 시험을 준비 위해 책을 사보니 공부량이 너무 많은데 석 달 뒤에 시험에 합격할 확률이 너무 없었어요. 그런데 남들도 나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도 똑같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2학년 때 1년 더 공부를 한다고 나아질 것 같지도 안더라구요. 그래서, 남들도 똑같다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객관적으로는 공부할 날과 책의 분량을 계산해보면 계산이 안 되는데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공부를 할 때 단순한 방적식을 생각을 했어요. 공부는 결국 남들보다 더 많이 해야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어떻게 하면 많이 하느냐? 아주 간단합니다. ‘공부하는 시간 * 집중력 = 공부하는 양’을 저는 공부 방정식이라고 생각을 해요. 공부하는 시간과 집중력을 남보다 높이면 당연히 많이 하지 않겠냐.. 그래서 저는 시간적인 측면에서는 대학시절 밤낮을 바꿔서 생활했습니다. 당시 밤에는 통행금지가 있었기 때문에 밤시간이 보장이 되었기 때문에 밤낮을 바꾸어서 생활을 했습니다. 왜냐면, 그렇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집중도.. 저는 시간보다 집중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남에는 극성스런 부모가 많지만 옆집 애는 잠을 5시간 자는데 왜 너는 6시간 자느냐고 책망하는 부모가 가장 미련한 부모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시간은 1시간 차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해보니까, 집중도는 5배에서 최고는 10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여러분이 오늘 가서 한번 실험을 해보세요. 식사 후, TV켜놓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10페이지를 내가 몇분에 읽는지 해보세요. 그리고 하루 중에서 가장 두뇌회전이 빠를 때 초치기 하는 심정으로 내가 당장 이것을 안 읽으면 인생이 망할 것 같은 긴장감을 조성하여 책을 읽으면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신기한 것은, 굉장히 긴장해서 읽을수록 머릿속에 잘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잠자는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눈을 떴을 때 머리가 맑으면 집중도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잠은 덜 자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3시간동안 머리가 멍하다면 헛 일을 한 것입니다.
그 때 밤에 일어나 공부를 하면서 일어나 있는 동안은 옆에서 누군가가 죽인다고 생각을 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내가 석달 후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다시 일년을 해야 하는데 그 때 합격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때 절박하게 공부를 했었죠. 정말 집중도를 높이려면 절박한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정도 절박한 심정이 되어야 하냐면 절벽위에 소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거기에 매달려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손을 놓으면 죽게 됩니다. 손을 놓으면 죽는다는 긴장감으로 공부를 하면 집중력이 남보다 10배 정도 더 생긴다는 것이죠. 공부라는 것이 참 희한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억력 자체는 좋다고 생각을 못하는데, 책을 느리게 한권 읽는 것과 빨리 한 권 읽은 것하고 느리게 읽는 것이 더 기억에 안납니다. 정독을 했기 때문에 더 기억이 날 것 같은데 천천히 읽으면 앞에서 읽은 것은 나중에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몇 달 전에 한번 본 것을 어떻게 기억을 하냐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어떤 전략을 폈냐면 처음에 한번 쫙 보고, 나중에 다시 훑는 거예요. 가령, 남들은 석달 전에 본 것을 기억을 못하지만 저는 1달 보고 2달보고 세번을 보면, 세번을 읽은 데다가 1달 전의 기억이잖아요. 고시 합격한 사람들의 비결을 물어보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시험 전날 한권 읽은 사람치고 떨어진 사람이 없어요. 시험 전날 책 1권을 읽으려면 그 전에 대여섯번은 읽었다는 것이죠. 시험 전에 읽은 것이 가장 기억이 생생하죠.
1차 시험 결과를 발표했는데 합격을 했습니다. 참으로 기뻤습니다. 우리 학년에 3명이 합격을 했습니다. 저는 3달 공부를 했지만 나머지 두 친구는 1학년 초부터 남몰래 공부를 했더라구요. 그래서 2학년 올라갔더니 메인 게임, 즉 주관식 시험이 시작되었죠. 이 때부터가 한단계 어려운 공부인데, 1차 시험은 이해만 하면 문제를 풀 수가 있는데, 2차 시험은 이해를 한 후에 문제가 주어지면 논술로 답해야 하는 것이지요. 2학년 올라가니 민법총칙, 헌법, 형법 총칙 등 기본법을 배웁니다. 그런데 고시 2차 시험에서 보는 과목은 4학년에서나 배우는 행정법, 민사 소송법, 형사소송법 등의 과목이었습니다. 그 때 2학년에 올라가서 다시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내년 3학년에 시험이 있는데 이제 1년이 남았다. 읽어야 할 책이 50권이 넘었는데, 이것은 인간이 할 공부가 아니었습니다. 공부할 분량을 보니 포기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도 역시 남들 또한 나처럼 포기하고 싶을 것이다. 1년 공부해서 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다고 2년 동안 공부를 한다고 해도 될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최연소로 합격을 했습니다. 어떤 고시든지 간에, 어떤 시험이든지 간에 7번을 이해를 하며 책을 읽으면 시험에 합격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0번을 읽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되어 있어요. 책50권을 꽂아두고, 모두 배우지도 않은 모르는 책들을 읽으며 초긴장을 하고 읽어도 진도가 안 나가는 거예요. 지금은 신림동에서 강의를 해주니까 1년간은 아웃라인을 잡고 책을 보면 쉽다고 해서 고시를 2-3년 코스로 공부를 하는 거예요.
그 때 재학 중에 합격한 사람이 딱 1명 있었었는데, 1년 선배 중에 안대희 부장이 있는데 합격을 하고 연수원에 들어가 버렸어요. 즉 재학 중인 사람 중에는 합격생이 없었던 거죠.  1번을 다 읽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어요. 한 5개월이 걸렸습니다. 1년 걸쳐서 7번을 봐야 하는데 이제 한번 읽는데 5개월이 걸리고 남은 시간은 7개월 정도니, 다시 한번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 때 역시도 포기냐 밀고 나갈 것이냐를 생각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도 고민할 것이라고 남은 달수가 얼마 되지 않으니 포기를 하고 1년 후에 차분하게 보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을 더 부여하는 순간에 이미 긴장이 풀어져 버리죠. 그래서 저는 남도 나와 같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계속 밀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두번째 읽으니 시간이 훨씬 빨라졌습니다. 처음엔 5달이었지만 두번째, 세번째 계속해서 읽으니까 책읽는 시간이 급속도로 빨라졌습니다. 그래서 정말 거짓말 같이 시험 보기 전날 6번 보고 시험보기 전날 바람소리 나듯이 책을 좍 넘기면서 한번 책을 다 보고, 결과는 합격을 했더라구요. 모든 게임들이 모두 상대적이잖아요. 남들과 상대적이고 내가 최대한 노력을 했다면,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죠. 그런 식으로 고비를 넘기고 나니, 그리고 학교 생활이 2년이 남았는데 친구들은 도서관가서 고시 공부를 시작을 해요. 그래서 같이 놀 사람이 없어요. 여학생도 좀 쫓아다녀 봤는데 딱지만 맞고 해서, 결국엔 친구들이랑 같이 도서관 가서 도시락 먹다보니까 행정고시 외무고시 준비를 하게 된 거예요. 그 때는 사법시험이란 것이 확실히 어렵습니다. 행정고시 외무고시를 준비할 때는 합격한다는 예상은 충분히 된 상황이었죠.
결과적으로 나중에 아버지께 감사했습니다. 과외공부를 시켜주지 않은 아버지 덕분에 혼자 매달려서 공부 하는 것이 훈련이 된 거예요. 대학교 가서 집안도 괜찮고 과외도 받고 한 친구들을 보면 고시공부를 하는데 굉장히 고통을 받았어요. 남들이 딱딱 풀어서 입에다 넣어주는 것을 하다보니까 고시공부는 그것이 아니거든요. 혼자 죽으나 사나 파고들어야 하는데 과외를 안 한 저는 결과적으로 그것이 오히려 수월했었고, 그 친구들은 고통을 받았어요. 대학교 4학년 때는 2학년 후배를 방에다 데려다 와서 너 행정고시 준비하는데 같이 공부하라고 해서, 결국엔 그 친구 과외까지 하면서 행정고시 준비를 했어요. 공부라는 것이 한단계를 넘어가면 요령이 생기기 때문에 어떤 돌파구가 되고,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해보니까 꼭 되더라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불가능을 어떻게 정의를 하냐면, 원래부터 불가능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단념하는 그 순간에 그 단념 때문에 불가능해 지는 것이더라구요. 그런 식으로 살다보니 포기하는 것이 없어지죠.
책에 보시면 고시공부한 이야기, 미국가서 공부한 이야기, 돌아와서 변호사 한 이야기로 되어 있는데, 미국가서 공부한 이야기는 따로 드릴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여기서 공부하던 것 처럼 소나무 매달리듯이 공부하면 되더라구요. 거기서는 그정도까지 공부를 안 해요. IVY리그에서도 그렇구요. 너무 또 얘기를 하면 자랑만한다고 하실까봐 그 부분은 생략을 하고 싶구요. 아! 제가 유학가게 된 계기만 언급을 해드리고 싶네요. 제가 84년도에 수원지방법원의 판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세상을 굉장히 현실감 없이 살았어요. 부모님 말씀도 안 듣고 엉뚱한 생각만 하고 살다가, 82년도에 사법연수원을 졸업을 했을 때 우리 외숙이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셨는데, 저보고 판사를 하라는 거예요. 저는 교수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가지고 그것을 거부를 하고 공부할 생각밖에 안 했어요. 그래서 연수원 나와서 바로 유학을 갔습니다. 부모님이 보시기엔 고시를 3개를 합격해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반이 된 것 같은데 미국가서 청바지에 가방 메고 공부하고 있으니까, 친구들은 판사하고 있는데 뭐하려는 것인지 부모님이 보기엔 좀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결혼이라는 문제도 있고 해서 들어와서 84년도에 판사를 했었는데, 지금 생각을 하면 그 때 판사를 했었던 것이 잘 한 것 같아요. 일생에 판사했던 시기가 그 때 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그때 제가 교통사고도 한번 났어요. 85년 12월 초순이예요. 그 때 인생이 한번 바뀌었어요.
제가 판사를 했을 때 부모님과 ‘앞으로는 딴 생각 안하고 죽을 때까지 판사만 열심히 하겠습니다’하고 약속을 했어요. 왜냐면, 그 동안은 2년 동안 유학다녀와서 자기 멋대로 2년간 살은 거죠. 부모님은 교수도 탐탁지 않은데 2년간 공부한다고 유학을 갔으니 부모님께 돈을 타가지고 살은 거죠. 다른 사람들은 판사하면서 부모님 봉양을 하는데, 다시 말하면 불효를 한 거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판사를 하고 있는데 현장 검증을 가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차와 부딪혀 엄청난 사고가 난 거죠. 정말 죽을 뻔 했어요. 앞에 계신 분들 이런데 흉터 같은 것 보이세요? 세월이 지나서 지금은 다행이지만요.. 나중에 법원에서 보니, 그 차가 안전유리를 했어야 하는데 값이 싼 일반유리를 끼워놓아서 유리창에 얼굴이 부딪혀서 얼굴이 다 찢겼어요. 코도 거의 떨어져서 끝에만 붙었었는데 코모양을 만들어 둔 거예요. 코라는 곳이 마취도 안됩니다. 수술할 때 바늘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느껴지니 엄청난 고통이죠. 한 5시간 정도 수술을 했죠. 그 때는 거울을 보니 살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어요. 얼굴이 너무 엉망이었어요. 그 때 제가 안경을 안 썼으면 실명했을 겁니다. 그 때 얼굴이 유리창에 부딪힐 때 안경이 눈을 보호해주었죠. 가득이나 제 콤플렉스가 못생겼다는 건데, 다치기까지 했으니 살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아무리 이 친구가 고시 3관왕이면 뭘해요. 그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서 2달간 출근을 못 했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을 했어요.
그 때 생각에 인생이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그 때는 계속 판사를 해서 대법원 판사를 하려고 했었는데, 한 사람 목숨이 일시에 없어진다고 생각을 하니 너무 허망한 거예요. 그 때는 애도 없었거든요. 애도 없이 세상을 뜬다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섭섭한  거예요. 그 때 굉장히 마음이 심란했어요. 그래서 그 때 이래선 안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법원에 1년 휴직을 하고 하버드로 유학을 간 거죠. 이렇게 교통사고 때문에 인생이 한 번 꼬였어요.
정상적으로 살던 사람이 꼬여가지고 미국가서 5년을 살고 온 것이 91년도죠. 91년도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책에다가 먹고 살기 힘든 이야기를 써 놨는데 좀 의아하실 거예요. 제가 박태준 회장님 둘째 사위였잖아요. 저 친구는 좋은 집에 가서 전혀 생활 걱정 없이 떵떵 거리면서 살았을 것 같은데, 먹고 살기 힘들어서 하나님께 해결해달라고 기도하는 부분이 나오죠. 앞뒤가 좀 안 맞는데, 그게 현실이었어요. 하여간 중요한 포인트는 안 도와주셨다는 부분이구요. 변호사를 개업을 했는데, 변호사의 장점 중 하나가 굶어죽기가 가장 어려운 직업이 변호사예요. 아무리 실력이 없고 무능해도 아직까지는 굶어죽지않구요. 월급 받고 일하는 곳에 가더라도 세금 빼고 한달에 5-600백만원을 주면 좋은 직업 아닙니까. 그래서 그런 상황인데, 간판을 붙이다 보니, 광고를 못하니까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 때 미국서 돌아와서 얼마 안 되었으니 사람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니 한 2년간 고생을 했죠.
저는 그 때까지만해도 먹고 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했어요. 부모님 밑에 있을 땐 먹여주셨고, 유학시절 장학금을 타서 굶진 않았는데, 갔다와서 변호사로 혼자 딱 서보니까 이게 쉽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돈의 귀중함을 그 때 처음 알았어요. 돈이라는 것이 없으면 이렇게 사람이 참 쪼들릴 수가 있구나. 그래서 큰 누님 매형이 한 달에 몇 백씩 도와주어서 2년을 넘겼는데, 그래서 결국엔 해결이 됐어요. 그 때 생각을 한 것이 사람이 편한 것만 생각을 하면 절대 성공을 못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달동네에 남들이 안 하는 사건들 해주니까 새끼를 쳐서 나중엔 떼돈도 벌어보고, 돈이 없을 땐 사람을 그렇게 힘들게 하더니, 있을 때는 왜 그렇게 돈이 들어오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들어오더라구요.
그 때도 부자들 큰 사건만 하고 작은 사건 안 한다고 하면 계속 굶어죽었을 거예요. 그런데 첫사건 달동네 사건 말도 안 되는 것 하다보니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더라 이거죠. 사실 요즘 방송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케이블 방송도 하면 3개 방송하고 있고, 그리고 출연 섭외도 들어오는데 변호사때문에 시간이 없어 다 하지를 못하죠. 처음에 할 때도 코메디부터 시작을 했다는 거죠. 그 당시엔 변호사가 방송 자체에 잘 안 나올 때고, 게다가 변호사가 코메디 프로에 출연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해요. 품위가 떨어지게 왜 거기 나가서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느냐. 근데 지금도 그래요. 남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안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이를 테면 막일부터 건물 청소부터 시작을 한 거죠. 그게 씨가 되서 지금은 청소 안 해도 되요. 이젠 코메디 프로 안 나가거든요? 그게 기회라는 것이 처음부터 고급스러운 것만 해서는 안되겠다. 명예퇴직자들도 마찬가지죠. 회사 부장, 이사까지 하고 퇴직을 했어요. 자신은 지금까지 직장에서 대우 받고 행세했는데, 딱 나와서 벌판에 서 있으니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죠. 그래서 자기 자격지심에 사무실도 넓게 해서 하고 싶고 손에 때 안 묻히고 하고 싶은데, 대게는 십중팔구 망하죠. 창업을 하더라도 정말 길거리 청소부터 한다는 생각으로 조그맣게 해서 늘려가면 성공을 하는데, 크게 해서 품위를 유지하면서 하면 대게 쪽박을 찬다는 거죠. 인생의 법칙은 다 똑 같은 것 같아요. 방송도 제가 돈이나 체신머리 생각했으면 절대 될 수가 없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방송해서 떼 돈 벌겠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아마추어라 돈을 많이 안 줍니다.
저는 새로운 것이 즐거워요. 제가 미국서 돌아와서 변호사 했을 때 시간이 엄청 많았어요. 사건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 때는 시간이 많다는 생각은 안 하고 사건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사건이 막 들어오니까 수표에 도장찍을 시간도 없고, 시간은 없고 일이 많고, 즉 없는 것을 생각하면 안돼요. 사건이 없을 땐 시간이 많아 좋다. 사건이 많을 땐 돈이 많이 들어와서 좋다라고 있는 것을 생각을 해야 해요. 방송 같은 것도 새로운 세계거든요. 약간의 조폭 같은 세계예요. PD들 한번 보면 형님이라고 불러요. 변호사들은 서로 형님 이렇게 쉽게 못부르거든요. 선후배하기도 그래서 깍듯이 공식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그런 문화들이 재미있더라구요. 그런 것도 시간 뺏긴다고 생각하지 않고, 즉 시간을 타이트하게 하면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작년에 제가 주식 책을 세 권을 냈습니다. 그것도 굉장히 새로운 세계죠. 제가 경영학과 정식으로 들은 적도 없고, 증권 누구에게 정식으로 들은 것도 없는데, 책을 내서 그 책이 10만권 나갔죠. 증권사 직원들 다 사보신 것 같더라구요. 객장에 나가면 제 책 보고 많이 배웠다고 해주시더라구요. 이런 것도 어떻게 보면 맨 땅에 헤딩해서 돌파를 한 것이거든요.
제가 증권 얘기를 잠깐 하면, 제가 2000년도에 주식을 잠깐 하다가 손해를 많이 봤어요. 그 땐 경제전망을 생각할 때, 경제라는 실물이 있고, 증시라던가 주식이라던가의 실물이 아닌 계산상의 부가 있지요. 두 개가 있으면 사람들은 펀더멘탈이 증시라던가 주가를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게 아니라고 하면 교수님들은 저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할 거예요. 그런데 그게 굉장히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아니라는거죠. 미국은 70년대부터 2000년까지 30년동안 주가가 수직 상승을 했어요. 그 곳에서는 10년-20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장기투자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1개월 보유하고 있는 것이 장기투자라고 하더라구요? 정신없이 사고파니까요. 미국은 30년동안 올라간 시장이예요. IMF도 없었어요. 미국의 최고 펀드 매니저라고 불리는 사람이 ‘피터 린치’예요. 가치투자를 주장을 했던 분인데 가치 투자라는 것이 우량주 오래 보유하는 거쟎아요. 저는 그 분이 잘나서 그렇게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분이 펀드 매니저 할 때는 우리나라가 99년도 거품할 때 막바지에 엄청나게 상승했던 때처럼 이분이 펀드매니저 할 시기도 시장이 마구 상승했던 거죠. 만약 피터린치가 2000년도 넘어까지 계속 주식을 했더라면, 나스닥 같은 경우 금년 초까지 1/5토막이 났쟎아요, 몇 년만 더 버텼으면 저절로 짤릴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돈 벌어서 똑똑하다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딱 빠져나갈 타이밍을 절묘하게 포착하여 역사에 남을 펀드 매니저가 된 거죠. 이런 것 때문에 우리나라에 가치투자라는 것이 미신처럼 남아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증권통계를 보면 증시의 종합주가지수 자체가 그동안 꼭지가 계속 낮아지고 있었어요. 삼성전자 외에 몇 개 빼면 은행이자 보다 나온 것이 없어요.
1166에 가서 낮아지고 있어요. 밑은 올라가고 있고. 외국사람들은 낮은 가격에 12조에 사서 33조 이익이 났다고 신문에도 낫쟎아요. 결국은 엄청난 장사를 한 거죠. 대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기서 삽니다. 대세꼭지가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가치투자로 이익을 낼 수가 없죠. 10년간 보유해서 정기예금 이상 나온 종목이 20 종목이 밖에 안돼요. 그것은 초우량주를 상대하지 않으면 이사람은 깨진다라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펀더멘탈을 가지고 상대하면 안되겠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어요. 이 것이 새로운 것이 아닌데, 책에도 나와 있쟎아요. 증시는 실물경제보다 6개월 선행한다. 이것이 계속 되풀이 됩니다. 작년에 2002년도 4월달에 꼭지를 치고 금년 봄, 2003년 3월까지 빠졌어요. 이 때 사람들이 증시에 많이 물렸어요. 주가는 지나고보니 계속 빠졌는데 신문에는 계속 펀더멘탈이 좋아진다고 기사가 났어요. 무슨 이야기냐면 실물경제는 4월달에 꼭지를 친 것이 아니고 계속 올라가서 경제학 통계 그대로 +6인 2003년도 10월까지 꼭지를 쳤어요. 이 때 꼭지를 치고 나서,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백화점 매출이 처음을 줄어든 것이 2003년 10월이예요. 저는 이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을 하는데, 실물경제의 선두지표가 백화점 매출이예요. 정말 6개월 지나니까 백화점 매출이 떨어진다는 통계가 나오더라구요. 그 동안은 백화점 매출이 증가하지 상장자 실적이 계속 좋아진다고 하죠, 실물경제가 좋아진다니까 주가를 어떻게 팝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물을 먹었어요.
지금은 증시가 흔들리고 있어요. 7-8개월간 계속 수직 상승을 했는데 이 때는 펀더멘탈이 계속 안 좋았어요. 금년 봄, 여름 내내 경제가 안 좋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사이 외국 사람들은 계속 샀어요. 집중적으로 샀어요. 이 때 인터뷰 기사에 나스닥 차트를 보니 미국 시장이 대세 상승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흥분된다라고 썼어요. 흥분된다는 말은 좀처럼 쓰면 안되는데 그렇게 썼어요. 이 때 우리나라는 대세는 커녕 펀더멘탈이 너무 나빠지고 있어서 생각도 못 했어요. 제가 이 때 증권투자 설명회에서 사람들에게 예언을 했어요. 10월이 되면 펀더멘탈이 좋아진다는 기사가 나올 테니 두고 보라고 심플한 예언을 했어요. 더하기 6을 하니까 10월 맞죠? 미국시장은 3월부터 우리나라는 4월부터 뜨기 시작했으니 실물경제는 +6하여 10월부터 좋아진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맞죠. 역시 정확하게 그렇게 되었어요. 수출이 몇 년만에 최고로 올라가고 미국 시장은 가관이예요. 최근 미국 기사 GDP 4분기 성장률이 1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였다고. 미국시장도 주가가 6개월 선행한다는 것이 맞아요.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주식투자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예요. 개인 투자자는 무엇을 보고 투자를 하느냐 펀더멘탈이 나빠지고 있다는데 어떻게 주식을 살 수 있냐, 살 수 있는 개인 투자자는 없습니다. 펀더멘탈이 좋아지고 있다는데 팔 수 있는 개인투자자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 예언을 한다는 것이죠. 분명히 통계학에서는 증시는 빨리 움직인다는 거예요. 가치는 펀더멘달이 결정하지만 움직이는 속도는 증시가 결정을 한다는 거죠. 증시보다 주가보다 빨리 움직이는 것이 없어요. 아는 사람은 미리 사서 기다리죠.
대표적인 것이 현대차의 경우 주가가 나쁘다고 빠지다가 3월부터 8월까지 올라갔는데 외국인은 싼 값에 사고 한국인은 비싼 값일 때 사고, 항상 되풀이 되고 있어요. 그러면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오늘은 맛보기를 몇가지만 설명을 드릴께요. 파동원리라고 물리학에서는 우주 만물을 들어다 보니 입자라고 하는 세계가 있어요. 입자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이 있고 크기도 변하죠. 그런데 전자라고 하는 궁극의 작은 세계로 들어가보니 이중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즉 똑 같은 존재를 파동으로도 보이고 입자로도 보인다는 것이죠. 차이점이 무엇이냐? 속도가 빠르면 파동으로 보이고 느리면 입자로 보인다는 것이죠. 같은 존재의 두가지 모습인데 물리학적으로 파동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되지 않고 크기가 없이 함수를 쓸 수 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것에 주목을 했어요. 주가의 움직임이 RANDOM WALK라고 술취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 같아요. 다른 것을 볼 것이 없으니 증시를 보아야 하는데 증시는 뭐냐, 움직이는 것을 파동으로 보자, 그러면 파동에 법칙이 있는가?
그 중에 한가지가 파동이라는 것은 모든 세상의 사물은 왼쪽의 이상적인 현상 그림처럼 움직이지 않아요. 직선으로 움직인다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면 되는데 파동으로 움직이니까 잔 파동에 신경을 쓰면 어지러워서 주식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파동이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고 항상 움직이면서 움직이므로 심플한 파동의 모습은 이렇습니다(파동사이클기본형참고). 올라갈 때도 출렁출렁, 내려갈 때도 출렁출렁, 즉 상승의 경우 강하게 오르고 적게 빠져야 또 오른 다는 것이죠. 강하게 오르고 적게 빠지는 모습 자체에서 확률상 추가적인 상승을 예측할 수 있죠.
최근의 부동산 시장을 보게 되면 아주 재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동산은 과연 사이클이 끝났냐 안끝났냐고 하는데 부동산의 사이클을 보면 IMF이후 엄청나게 빠지다가 다음 그림처럼 변화가 되었습니다. 2002년도 초에 부동산의 큰 사이클이 IMF이후 하락하다가 다시 조정을 받았는데 많이 오르고 적게 빠진 사이클이 나타났다는 것이죠. 즉 많이 오르고 적게 빠져야 계단식으로 오르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죠. 즉 바닥이 높아진 것인데요.
작년 10월의 기사를 보세요.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 놓아서 부동산 가격이 흔들렸어요. 정부 부동산 대책이 어떤 여파를 줄까 싶은데 조금 빠지더라구요. 남들은 이제 부동산은 끝났다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파동이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올라갔다가 제낄 때, 그 다음에 다른 모든 조건이 같으면 앞의 사이클과 그 다음의 사이클이 폭이 같습니다. 그래서 작년 10월부터 최근 두어달 전까지 정말 똑같이 올랐어요. 최근 많이 오르고 적게 내릴 때는 부동산을 절대 파는 것이 아니죠. 그런데 최근에는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어요.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1억원이 하락했어요. 그리고 나서 보름 후 신문기사가 다시 반등이라는 기사가 났어요. 다시 반등한 그래프가 나왔는데 1억원은 급락했는데, 반등할 때는 완만히 올랐더라구요. 이것은 힘이 내려가는 힘과 올라가는 힘 중에서 내려가는 힘이 강하면 또 빠질 가능성이 커요. 그리고 정부가 강력한 규제책을 내 놓아서 타워팰리스가 하루아침에 호가가 5억원 하락했죠. 재건축 아파트가 2억원 하락했죠. 그러면 파동을 보면 지금까지와는 달리 적게 오르고 많이 빠졌다. 그러므로 현재 위치는 하락기 초입이구나. 빠지고 나서 이번에 반등한다는 신문기사가 나와도 반등하는 힘이 약하면 또 내려간다는 것이죠. 따라서 지금 부동산은 투자할 적기가 아니죠. 많이 오르고 적게 빠지는 사이클이 다시 나타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죠. 부동산은 한 2년 정도의 사이클이죠. 따라서 부동산은 6개월이나 1년 쳐다보지 말자라는 결과가 이것에 의해서 딱 나오죠.
작년에 단일화 협상 기억하시나요? 정몽준씨와 노무현씨가 단일화 협상 배팅해서 노무현씨가 성공해서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되었죠. 단일화 협상 하기 보름 전에 신문에 지지율 그래프가 나왔어요. 그 무렵에 제가 부산도 가고 광주, 대구 투자설명회를 다니고 있던 때였어요. 그 때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한 이야기가 있어요. 정몽준씨는 아니다. 저는 당적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정몽준씨에게 감정도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냐면 그때 정몽준씨의 그래프가 어땠었냐면 오른쪽과 같았어요. 쉽게 말해 내려갈때의 맨 처음 나타나는 특징이 꼭지가 낮아진다는 거예요. 노무현씨는 형식적으로는 조건이 조금 낮기 때문에 조건없이 배팅을 한 것이죠. 그런데 약간의 격차로 노무현씨가 되었죠.
그리고 파동 원리 중 재미있는 것은 물리학적으로도 같은 이야기 인데, 파동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에 우주에 동시에 2개가 존재할 수 있어요. 2개로 되어 있을 때는 증폭이 되요. 그런데 반대파동을 두면 상쇄가 됩니다. 저는 이것을 그대로 주식에 응용을 합니다. 그래서 금년의 나스닥 차트를 보면 큰 파동과 작은 파동이 이렇게 같이 미약한 상승세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TO 시점에서 두개의 상승파동이 겹치는 것을 보고 실제로 대세 상승이 예견이 되었어요. 그리고 몇 달 동안 나스닥이 50%이상 폭등하여 저도 놀라버렸거든요.
그리고 일본 경제도 그동안 잃어버린 10년이었는데, 최근의 일본 경제가 주가도 그렇고 최근 상반기에 굉장히 좋아졌어요. 그리고 최근에 나오는 모습은 약하게 밀리고 있어요. 이제는 많이 오르고 적게 빠지는 그래프가 신문에 실렸어요. 일본 경제는 분명히 다시 상승한다. 일본경제는 상승세로 다시 돌아섰어요. 일본경제도 이런 식으로 예측이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같은 것끼리 합쳐지면 이렇다. 그런데 이것이 재미있는 것은 물리학에서 나온 것이고, 파동은 모든 존재 속에 다 들어가 있다. 느리게 움직이면 파동성이 약하게 나타나는 것이고요. 물리학에서 나온 이론이면 모든 것에 다 적용이 되어야 하쟎아요. 돼지에게 클래식음악을 들려주면 잠을 잘 자고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주면 잠을 안 자요. 돼지는 귀가 있으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귀가 없는 식물에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클래식을 들려주면 몇십%이상 잘 자란다는 것이죠. 결국은 자신의 고유 파동이 있어 자신의 파동에 잘 맞는 것은 기를 받아서 잘 자라고 반대 방향의 것은 잘 못 자란다는 것이죠. 그래서 식물에 대한 실험결과가 나와있더라구요.
그렇다면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사람도 물리학적으로 보면 파동과 입자가 들어있쟎아요. 입자는 우리가 보는 육체이고, 우리가 보이지 않는 마음, 사고방식,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의 세계, 시간과 공간이 없는 그런 존재들이 파동의 세계라는 것이죠.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둘이 파동이 맞아서 마음이나 생각이 잘 맞으면 불꽃이 튀긴다는 거죠. 사람끼리도 괜히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있어요. 사업이나 동업자를 구할 때 자금력만 가지고 평가를 할 수도 있는데, 근본적으로 생각이 틀린데 합치면 상쇄의 현상이 나타나거든요. 서로 형사고발하고 압류하고 서로 완전히 죽이고 끝나요. 서로 틀린 사람끼리 만나면요. 그러나 파동으로 이해사면 당연한 것이죠.
고변호사 이혼한 것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아요. 실제 이유는 저는 5년 전에 기러기 아빠가 되고, 그쪽은 귀국을 안하겠다, 영주 하겠다고 하니까, 서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완전히 반대죠. 부부는 기본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생각을 하고 도와주어서 1+1=3이 될 수도 있는데 반대의 경우에는 1+1=-1이 될 수도 있구요. 그리고 이것이 재미있는 것은 사람 심리에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요즘 칭찬합시다가 나오죠. 사람이 왜 칭찬을 해냐 하는가? 칭찬은 빈말로 하는 경우가 있죠, 아부라고 하죠. 옛날에 공부만 하고 살 때는 남에게 좋은 말을 일부러 못 했어요. 싫은 말은 입바른 말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던지기도 하는데 남에게 상처주는 그런 말은 좋은 게 아니예요. 칭찬이라는 것은 증폭을 시키는 거예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서로 만났을 때 차이가 있어요. 이 때 증폭의 방향으로 가려면, 특히나 대등한 관계의 경우 서로 같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칭찬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최근에 강의를 듣는데, 강사분이 자신의 부하가 있는데 진짜 일을 못한데요.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은 일을 열심히하고 능력이 있는데, 왜 세상이 모든 사람들은 나만 모라고 그러고 사람들은 나만 미워하고 나와 세상과의 관계가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칭찬을 해주었대요. 그래서 두 가지 경우를 생각을 해보았어요. 칭찬을 했더니 하나는 더욱 자기 잘난 맛에 고취가 되어 난리를 치다가 짤릴 수가 있죠. 그러면 자신은 정말 속이 시원한 것이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말로 이 사람이 개과천선하여 열심히 잘 하면 정말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자신은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대요. 그래서 칭찬을 했더니 좋은 방향으로 갔대요.
아버지와 아들간의 관계가 단절되기 쉬워요. 저만해도 아버지와 저의 대화는 단절되어 있어요. 서로 생각이 달라 언어가 틀려요. 바꿀 수도 없고요. 몇십년동안 형성된 파동은 바꿀 수가 없어요. 주식도 마찬가지예요. 큰 트랜드는 그 방향대로 간단 말이죠. 저만해도 아버지와 안 부딪히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을 해요. 한 예로, 아들이 형과 싸웠어요. 장난감을 뺐겨서 속상해서 아버지에게 왔더니 야단을 친다는 거요. 그럼 어린 것이 주판알을 튕깁니다. 아버니에게 와 봤자 야단을 맞거나 때리니까 아버지에게 올 필요가 없다라고 계산이 성립이 되는 거죠. 이렇게 되면 안되고, 상대방 마음부터 동조를 시작을 하는 거예요 아들이 징징대면서 아버지에게 오면 아버지가 첫번째로 할 일은 ‘너 정말 안 되었다’고 동조부터 시작을 하고 맞짱구를 쳐주는 거예요. 이 맞짱구라고 하는 것이 이 관점에서 보면 엄청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왜 사랑과 자비가 종교마다 똑같냐, 사랑과 자비가 남에게 방향을 맞추어 주라라는 심플한 원리라는 것이죠. 결국엔 남과 파동을 맞추어야지만이 파동이 증폭이 되죠. 이것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면, 신과 인간의 관계도 영의 세계로 마찬가지 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예로  무당을 예로 들면, 무당을 찾아 간다는 것은 신에게 다가서기 위한 나의 파동을 무당을 통해 증폭을 시킨다는 것이죠. 신을 빼고 인간의 유일한 특권은 생각에 따라 파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죠.
최근 베스트셀러 중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것인데, 물에다가 말을 하고 그 결정체를 찍어보니 사랑의 말을 하고 물을 찍으니 이쁜 모습을 하고 증오나 악마 같은 나쁜 말을 하고 찍으면 물의 결정체가 처참한 말을 했어요.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말을 해도 그런데 종이에다 써서 붙여도 모습이 같아요. 그 책의 결론은 사람의 대부분의 성분이 물인데 말하는 순간에 자기 스스로 물에다 파동을 주고 있쟎아요. 좋은 말을 하고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좋은 파동을 가지고 건강도 좋아진다라는 것이 너무 그럴 듯 해서 결국엔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습니다.
퀴즈를 하나 낼께요. 경기가 나빠지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 중 누가 타격을 더 받겠어요? 파동원리로 생각을 하면 답은 간단해요. 경기가 꺽였다. 즉 하락이죠. 부자는 상승운을 가지고 있죠. 가난한 사람은 하락운이죠. 따라서 경기 하락과 하락운이 만나면 폭락이죠. 이런 부분에 대한 것을 제가 노트로 한 권 정리해서 책으로 낼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실명을 거론하기가 그래서 소설로 하나 쓸까 생각 중에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야기는 이쯤으로 마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예정 연구원 yjlee@ip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