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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영자독서모임으로의 초대27: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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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벤처를 창업한 나로써는 정치와 경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칠 수 없기 때문에 “지역주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부분을 중심으로 이 책과 내 생각과 우리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경제학 카페의 출발 나는 대학시절동안 여러 가지 일로 학업을 제대로 못하고 순전히 안면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92년 독일에 유학을 가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 논문을 준비하다가 IMF 귀국유학생이 되어 98년 돌아왔다. 딱 김영삼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나가 있었다. 내가 가진 경제학 지식은 일종의 장사밑천과 같아, 나 스스로 나의 직업을 지식 소매상이라 부른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면 좋은 내용인데도 그렇지 못해 쓰임새가 적은 지식들을 찾아 그것들을 조금 더 소화하기 쉬운 형태로 재가공하여, 책을 내는 것이 원래의 나의 직업이다. 방송은 우연히 잠깐 맡았던 것이고, 글 쓰는 동안 언제나 내가 경제학을 공부한 것이 배경지식으로 항상 작용했으며,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를 볼 때도 경제학적 입장에 비추어서 그러한 사안을 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지금 내가 정치를 시작한 것은 현 상황을 보다 더 이상은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자들의 표현을 빌자면, “제 달란트는 아닌데,” 누가 좀 해줬으며 좋겠고,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데 동의하는데 아무도 하려는 사람이 없었고, 우리 나라의 “말한 사람이 책임지기”라는 풍토에서 처음 말을 꺼낸 내가 책임지는 형태로 정당을 하나 만들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재보궐 선거가 있었는데, 또 누군가는 후보로 나가야 되고, 다른 사람들은 나갈 수가 없어서 결국 내가 후보로 나가게 되었는데…이렇게 인생을 많이 살진 않았지만,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 걸 많이 느끼고 있다.

그런 질문을 많이 듣는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좋은데, 왜 정치를 시작하느냐고. 다른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도 정치를 하면 망가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나는 정치를 하고 싶어 정당을 시작한 것은 아니고, 지금의 정치를 개혁해보고자 했던 것으로, 이것이 내 방식의 정치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냈던 이유도,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우리나라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학 교육에 대단한 문제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이 내게 만족을 안겨주지 못했기 때문에 강의실 밖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비롯한 여러 가지 좌파 경제학을 20대에 많이 공부하였는데, 유럽에 가보니 그러한 책들은 50년대 말~60년대 초에 소련이나 동독의 과학 아카데미에서 나온 책들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 때 시간 낭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풍토가 아니었다면, 금지되었던 책들과 함께, 그 것을 비판하는 책들을 함께 읽어서 대학 초반에 경험하면 끝났을 책들에 5년, 10년씩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5년 여를 공부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독일의 대학원 과정, 즉 디플롬 과정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이 일반 이론을 넘어서 구체적인 독일 경제나 유럽연합경제를 구체적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 연구하고 일반 이론을 거기에 적용해 보는 등 수업시간에 다루는 내용을 보며, 우리 나라 대학의 경제학 커리큘럼에 문제 많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전문 경제학에 크게 영향을 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경제학을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나 주변의 경제현상을 조금 더 잘 이해해 보기 위해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대학이 ‘고문’을 가하고 있다고 보고, 실제로 학부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학 교육은 분석력 등이 아니라, ‘직관력을 기르는 것이어야 한다’라는 나의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우리의 경제학 교육은 가장 먼저 수요공급 함수를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것을 미분하는 등 수학문제를 푸는 것을 가르치기에 대학 4년을 마치고 현실의 경제문제를 보는 직관적인 이해 능력이 굉장히 떨어진다. 어떻게 하면 비전공자나 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생들 가운데, 막 시작하는 초보자들에게 이 학문 자체에 대한 흥미를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끝에 쓴 책이다. 의도했던 바 보다 어렵게 쓰여져서 불만이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경제학적 분석 틀 또는 경제학을 배움으로써 얻게 되는 직관적인 통찰력들을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문제에 적용, 투영시켜보자는 의미에서 썼고, 매매춘, 도박, 로또 열풍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었는데, 그 중에서 정치 부분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정치와 경제의 교집합 : 비생산적인 우리 정치 나는 우리 국민들이 생산적인 정치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생산적인 정치란 무엇인지 물으면 사람들의 대답은 제각각이다. 신문에서 비생산적인 정치라 비판하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생산적인 정치인지 봤을 때, 나는 자유로운 시장이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한 Performance를 만들어 내는 것이 생산적인 정치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시장에서 각자의 취향과 경제적 여건 등에 맞추어 자동차를 살 수 있게끔 다양한 상품이 출고된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여러 가지 상품이 시장에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 정치는 이른바 “All or Nothing Game”이다. 국민들 사이에 이러저러한 요구가 있을 때, 그러한 요구를 반영해줄 수 있는 정치가 좋은 정치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는 그런 것을 공급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또 왜 사람들은 정치를 지탄할까. 정치인이나 정당들이 국민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정치환경은 정치인이나 정당들이 국민의 요구에 민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유지될 수 있게 되어 있다. 전형적인 과점시장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 보면 소위 마켓리더라 할 수 있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시장점유율이 100%에 가까운 과점시장이다. 15년 전 6월 항쟁 이후 첫 자유선거에서 4당체제가 나타났던 적이 있다. 대구 경북의 민정당, 부산경남의 통일민주당, 호남의 평화민주당, 충청의 신민주공화당 등 이들은 마치 소주시장처럼 지역을 분할하여 배타적으로 각 지역을 지배하였고, 각 지역 출신들의 혼합되어 있는 수도권은 주민들의 출신지역 비율대로 득표를 하게 되어 의석 구성의 구조가 짜여졌다. 4개 정당이 지배하던 독과점시장에서 이제 2개 정당이 지배하고 있다.

이 시장의 주요한 특징은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과거 호남 대 비호남이었던 시장구조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각 나라마다의 정치 생산성을 살펴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유권자의 이동성(mobility)이다. 예컨대, 유권자들의 이동성이 어느 정도 존재하여야만 생산성이 높아진다. 집권당과 야당이 있어, 집권당의 정책에 실망을 느끼고 야당으로 옮겨가는 유권자의 비율이 어느 정도나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만약 유권자의 이동성이 ‘0’이라고 보면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또는 지역적인 이유에서든 유권자들이 모두 어떤 정당을 지지하고 이 것이 어떤 경우에도 바뀌지 않는다면, 이렇게 나뉘어진 정당은 절대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노력을 해도 유권자를 늘릴 수 없고, 말 그대로 먹고 놀아도 유권자를 잃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국민들이 원하는 어떤 요구도 수용되지 않고 정치인들이 공급하고자 하는 것만 나타나는 비생산적인 정치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렇게 유권자 이동성이 매우 낮으면 정치는 비생산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지역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는 이 것의 도덕성을 떠나, 지역 연고는 바꿀 수 없는 우연적이고 원시적인 유대관계이기에 유권자들은 지역적 근거에 의해 특정 정당에 확실히 귀속되어 있으며, 정치인들은 지역연고를 강조하는 것 말고는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지역강조에 매달리게 되고 결국 고착되게 된다. 이른바 지역으로 묶여 있는 유권자들의 이동성이 낮기 때문에 생산적인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유권자 이동성이 너무 높으면, 예컨대 어떤 정책 하나에도 지지정당을 바꾸게 되면, 어떤 정당도 자신의 생존, 장기적 존속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완전히 대중추수적인, 그때그때 유권자들의 정서변화를 좇는 노선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어떤 정당도 자신의 이념적, 정책적 노선을 지키며 나아갈 수 없다.

결론은 유권자의 이동성이 적당한 정도가 가장 좋다는 것인데, 우리의 정치시장은 유권자의 이동성이 너무 낮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보았겠지만, 경남출신의 노무현 후보가 진영읍 외 모든 영남지역에서 압도적으로 패하였는데 반해 호남에서는 외지인들을 제외한 거의 100%가 노후보를 지지했다고 볼 수 있다. 영남지방도 마찬가지여서 외지인구를 제외한 거의 모두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이는 아주 극단적인 상황이다. 노무현과 이회창의 대북정책이 아무리 차이가 나도 표가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인 곳은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인데, 이 보수적인 지역에서 노무현은 정책으로 지지를 얻어냈다. 충청권에서는 수도이전이라는 공약으로, 젊은 세대들에게는 문화적인 코드가 맞았기에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들을 제외하면 거의 100% 가까이 지역에 의해 투표가 이루어졌으며, 이렇게 되는 한 정치는 발전할 길이없다. 이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비판하지만, 유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투표 기준에 대해 여론 조사를 해보면 후보의 정당, 공약, 인품, 경력 순으로 출신지역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5%도 안 된다. 인지적 불일치라는 말 그대로 실제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 다시 말해 옳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역에 따라 표를 행사하고, 지지한 후보의 노선이 설득력 있다고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계속 유지되는 것은 바로 진입장벽 때문이다. 어떤 독점시장에서도 단독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있다 하더라도 마음대로 소비자를 착취할 수는 없다. 신규 진입자들을 막기 위해 적정한 이윤을 보장하는 가격수준을 유지해야 하므로, 아무리 독과점이라 할지라도 진입장벽이 없다면 신규 기업이 계속적으로 진입하고 그 안에서 경쟁이 이루어지게 되어 시간이 가면 실질적으로 독과점 시장이 소멸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아주 높은 진입장벽이 있는 경우에는 함구적으로 독점기업체제가 유지되기 때문에 그 독점기업은 소비자이익에 무관하게 아주 높은 이윤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을 정치에 적용시켜 보면, 우리 정치의 진입장벽은 선거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 행동양식 때문에 지역주의적인 투표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유권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렇게 움직일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요인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진입장벽은 첫째, 교섭단체라는 것이 있다. 정당이 국회에서 교섭단체를 이루지 못하면 국고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다.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나누는 기준은 우선 지원금을 반으로 나누어 교섭단체를 가진 정당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고, 최근 선거의 득표율에 따라 나누고, 그 다음에 국회의원 숫자에 따라 배분하게 된다. 교섭단체가 되지 않으면 국회의 의사일정조정에도 참여할 수가 없고 당의 재정적 기반 또한 확실해지지 않는다. 이 교섭단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20석이 필요하다. 과거 92년 선거에서 3김 세력에 대항하여 꼬마민주당이 나타나 전국 평균 두자리 수의 득표율 기록했으나, 교섭단체를 만들지 못해 곧 사라진 바 있다. 이는 다시 말해, 교섭단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20명의 의원을 당선시켜야 하고, 이를 실패하면 전국적으로 아무리 높은 지지율을 확보한다고 해도 당을 유지시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둘째, 우리는 소선거구제이기에 득표율이 가장 높은 의원 한명만이 당선되고, 전국적으로 20%씩 지지를 얻은 당은 단 한명도 당선시킬 수 없게 된다. 득표율이 20%라는 것은 대단한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선투표도 없이 단순 다수결로 소선거구제 투표가 진행된다. 이 구조 안에서는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보다는 특정 선거구에서 집중된 표를 얻은 정당이 유리하다. 그렇기에 유권자들은 당선가능성이 있는 후보들 중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사표가 되기 때문이다. 선거라는 것은 맞춤복이 없이 기성복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와 있는 브랜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는 것인데, 다수결에 의해 자기가 원하는 브랜드가 출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가장 출시가능성이 가장 높은 브랜드를 지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정치로 돌아가 보면, 이러한 상황에서 신생정당이 출범하더라도 진입을 할 수 없다. 지역적으로 집중된 표를 얻는 정당이 유리하고, 이렇게 센 정당에 점점 더 표가 집중되는 선거구조인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정치를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으로 만드는 요인인 것이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독일 또한 우리나라와 같은 선거제도를 가진다면 양당체제로 변화할 것이다. 지역구에 의석을 가진 정당은 보수 기민련과 진보 사민당 두 정당뿐으로, 녹색당이 20년 역사에 처음으로 지역구 당선자를 한명 냈으며, 자민당은 한명도 없다. 그러나 연방의회의 구성은 사민당, 기민련이 큰 축을 이루는 가운데 녹색당 8%, 자민당 7% 순이다. 의석수가 600개이기 때문에 8%이 득표율이라면, 사표를 제외하고 거의 60석 정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지금의 4당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제도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국회의 구성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때로는 보수 기민련과 진보 사민당의 대연정이 등장하거나 기민련과 자민당의 중도 우파연합이 나오기도 하고 자민당과 녹색당의 중도 좌파연합이 나오기도 하는 등 시기적절하게 유권자들의 의지에 따라 다양한 연합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에 비하면 훨씬 다양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아무리 소수당이라 하더라도 연정을 형성하면서 녹생당처럼 유권자들이 원하는 환경 사안들이 집권 연정의 협약서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유권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다양한 방법으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일의 제도이다. 그리고 독일의 의석구성비는 정확하게 1인2표제에 의해 정해지는데, 후보자를 선택하는 표는 지역구 당선자를 가리는데만 사용되고 나머지 정당을 선택하는 표에 의해 의석수가 나누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민주적인 독일의 정치도 우리의 제도를 도입한다면 양당체제로 변화하여, 끊임없이 서로의 권력을 다투게 될 것이다. 정치 생산성의 요건 : 유권자의 이동성(mobility) 지금 우리의 정치가 비생산적이라는 것은 모든 정치인들도 알고 있다. 이번 특검법 공포과정에서 노대통령이 “내가 먼저 신뢰를 보여야 상대방이 나를 믿어준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지금 우리 정치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서로 팽팽히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핑계만 생기면 서로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서로 다치고, 국회는 싸움터로 변할 수 밖에 없다. 이른바 상생의 정치를 하자는 것은 상대방이 먼저 총을 내리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상대방에게 책임을 서로 떠넘겼던 것이다. 자기 자신이 충분한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잘못을 자기 정당화의 명분으로 삼는 정치다. 상대방의 오류가 나의 오류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치라는 것은 반복게임이기 때문에, 전단계에서 학습한 것은 다음단계에 반드시 반영이 되게 되어 있다. 이번 경우 한나라당이 특검범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특히 야당과 대통령과의 관계가 결정될 것이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 높은 진입장벽과 선거제도 오류로 인해 끊임없이 거대한 두 당이 서로 견제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토론이 자리잡을 곳이 없다. 이 것이 내가 진단한 한국정치의 문제점이며,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유권자들이 이동성(mobility)를 가져 주는 것이다. 정책에 따라 지지 정당을 바꾸는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10%만 되더라도 정당들은 유권자들을 끌어내기 위해 서로 정책경쟁, 혁신 때로는 모방경쟁 등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선거제도의 변경이야말로 앞으로 한국정치의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신생정당의 출현 및 의회 진출을 가능케 하고, 유효한 경쟁을 정치권에서 작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국회를 배타적을 점하고 있는 두 거대정당은 과거 높은 진입장벽과 지역주의 정치를 기반으로 지금의 지배력을 획득했기에 필요한 개혁을 실행하는데 주저하고 있다. 한가지 예로써 지금의 국회의원 선거법은 위헌판결이 난지 벌써 일년이 넘었다.

위헌판결의 요지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도농간 인구편차가 4:1에 이르는 것이 평등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시골에서는 만 명당 국회의원을 선출하지만, 도시에서는 4만 명이 모여야 한다. 다시 말해 국회의원 선출에 관해서 시골에서는 한 명당 4배의 투표권을 가진 것이다. 이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재 거대양당이 모두 지역주의 정당이기에 시정을 하지 않는다. 호남과 영남에 지역구가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나는 1인 2표제를 도입하지 않고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곧장 정당에 대한 지지로 해석하여 비례대표를 분할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비례대표가 43석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위헌판결이 난 법이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2003년 4월이 되면 유효기간이 끝나지만, 아직 국회에선 이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고, 앞으로 한달 후면 대한민국은 통합선거법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어째서 이렇게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정치가 고쳐지지 않고 있느냐에 대해 나는 그 이유를 정당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는 정당 설립과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이루어지는 다원주의에 기초를 둔 대의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이 정치주체는 추상적으로 말하면 국민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정당이다. 우리는 정당이 내놓은 후보들 중에 선택할 수 따름이다. 바로 정당이 공급자이다. 그런데 이 공급자들은 수요자들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데는 전혀 무관심하다.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공권력 중에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유일한 권력이 바로 정당권력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왔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정당한 권력이다. 그러나 정당권력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정당은 가장 먼저 지도자가 있다. 김대중, 김영삼, 과거 전두환에 이르기까지 이들 지도자가 정당을 만들고 이들 밑에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각기 모이게 되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을 지구당 조직책으로 임명해서 지역에 내보낸다. 이 조직책이 임명장을 들고, 그 지역에 가서 자신의 지인들 30명 이상을 모아 지구당을 창당한다. 그 중에서 대의원을 지명하고, 이렇게 임명된 대의원들이 모여서 자신을 대의원으로 임명한 지구당 조직책을 지구당 위원장으로 선출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지구당창당대회라는 것이다. 형식상 선거의 절차를 거치긴 하였지만, 북한의 인민위원회와 다를 바가 없다. 중앙당 대표, 총재를 선출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지구당 조직책으로 임명하여 지구당 위원장이 되도록 한 사람을 총재로 선출하기 위해서 그 지구당 위원장이 자기가 임명한 대의원을 데리고 서울에 올라와 정확히 줄을 세워 지지후보에 투표하게끔 만들어야 유능한 지구당 위원장이 된다. 이렇게 전체 프로세스가 정해져 있기에 정당은 국민과는 무관하게 형성된다. 우리 나라 정당에는 당원이 거의 없다. 당비를 납부하는 사람은 더욱 적다. 당비를 납부하는 사람들 또한 당에서 활동하는 위원들이다. 당이 이렇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민주주의도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당원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한다는데 그 어느 누구도 승복하지 않는다. 중앙당에 당원관리규정이 없고, 지구당에서 당원명부를 모두 가지고 있으며, 중앙당은 당 총재의, 지구당은 지구당 위원장의 사당이다. 예를 들어 지구당 위원장이 탈당하면 그 어느 것도 정당에는 남지 않는다. 지구당 사무실 임대에서 시작하여, 지구당 당원들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이 지구당 위원장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정당들에 국고보조금이 연 수백억씩 들어가고 있다. 나는 이것을 공적자금의 횡령이라고 생각한다. 이들 정당은 국회의원 배지를 위해 이해관계를 잠시 함께 하고 있는 집단에 불과하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아 정당의 국회의원들은 정치인들이라기 보다는 정치업자이다. 그리하여, 외부에서 어떤 거센 비판에도 절대 고쳐지지 않고 있다.

어떤 교수가 비유했듯이 밥상의 식사가 도저히 먹을 수 없어, 주방장을 교체해도 해결이 안되자, 부엌에 가보았더니 부엌이 엉망이더라는 말처럼, 맛좋은 밥상을 위해서는 조금 귀찮더라도 부엌을 먼저 청소하고 주방장을 교체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선거 때마다 국회의원을 절반정도 교체하고 있지만, 정치는 변하고 있지 않다. 정당을 바꾸지 않으면, 결코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주장하는 바이며, 그럴 수 없다면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야 했는데, 지난 8월13일 ‘국민후보지키기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지금의 새로운 당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당을 만들 돈은 없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드는 방식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개혁국민정당이다. 한 푼도 없이 초기 멤버가 500만원씩 모아 홈페이지와 함께 시작했고, 공개제안을 통해 2주일 만에 2만 명이 입당하고 지금 4만 명이 되었다. 우리는 한 명의 지구당 조직책도 파견하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가입한 당원들이 지역별로 모여 선관위, 지구당 위원장들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87곳에 지구당을 창당했으며, 4월엔 100여 곳이 넘어갈 것이다. 우리 자신을 신규진입자라고 생각하고 부딪혀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당원들이 대부분 직장인들이라 퇴근시간 이후에 모임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 자신을 개혁국민정당의 삐끼라고 부른다.

 

강의를 마치면서… 내가 오늘 하고자 하는 결론은 한국정치가 엉망이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제적인 이론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권자들이 의식변화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그 의식변화가 정치의 변화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신생 정당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는 정치의 제도의 장벽을 제거하여야 하는데 이를 현 국회의원들에게 맡겨서는 불가능하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제도의 변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금의 제도로도 개혁이 가능할 수 있도록 우리는 2004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된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원희경 연구원(교육본부) hkwon@ip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