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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영자독서모임으로의 초대23: 나는 TV에서 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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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나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원래 국어교사출신이다. 첫 직업으로 중학교 교사를 1년 정도 하고, 고등학교 교사를 1년 반 정도 했다. 그 후 군대를 갔다 오고, 다시 복직을 하려고 했으나,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서 MBC 입사시험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PD라는 직업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방송이라면, 아나운서나 기자를 생각했는데, 도저히 기자는 할 수가 없었고, 또한 아나운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은 것은 PD였는데 다행히 시험과목이 국어, 영어, 상식, 작문이어서 운 좋게 필기시험에 합격하여 83년 초부터 MBC PD 생활을 시작해 2000년 2월 15일날 사표를 냈다. 많은 사람들은 내게 지금도 ‘왜 PD를 하다가 교수직으로 갔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PD가 좋은가, 교수가 좋은가?’ 를 질문하곤 한다.
‘왜 교수직을 가게 되었는가 ?’ 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타의에 의한 것으로 내게는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나 스스로를 자격, 함양 모두 미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방송을 지망하는 학생이 참으로 많은데, 너무 이론에 치우쳤다. 실무경험이 있는 사람이 와서 가르치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들이 있어, 여러 현역PD중에서 적당한 사람을 찾다가 내가 글을 많이 써서 알려진 결과로 된 것이다. ‘나는 TV에서 너를 보았다’ 라는 책도 7번째 책인데, 이 책들도 마음먹고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주문생산식으로 신문사나 잡지사에서 원고청탁을 할 때마다, 내가 생각나는 것, 경험한 것, 쓰고 싶은 것, 기록에 남기고 싶은 것, 이러한 것들을 모았더니 어느 새 7권의 책이 된 것이다.
그래서 아마 그 책들을 읽고 ‘이 사람이 어떨까?’ 하고 프로포즈하게 된 것이 1999년도의 일이었다. 99년 여름부터 교수들이 나의 의향을 살펴보았는데, 그 당시에는 솔직하게 ‘나를 교수로 불러 준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감히 자신도 없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PD라는 직업을 생애에 가장 어울리는 직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떠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분들이 ‘PD의 정년은 58세이고 교수의 정년은 65세’ 라는 현실적인 이야기와, PD라는 직업의 특성상 40대 중반 이후부터는 관리자로 활동하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실제로 나는 그 당시 MBC의 편성기획부장을 맡고 있었기에 ‘당신은 지금 현역PD도 아니고, 당신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해 준다면, 커다란 의미가 있고, 당신이 학교에 온다면 하고 싶은 PD의 일을 계속 할 수 있다.’ 는 획기적인 제안을 받게 되었다. 당시 대한민국 방송의 큰 흐름은 PD들이 독립을 하는 추세로 메이저급의 MBC, KBS, SBS 같은 방송사에서 경험을 쌓은 PD들이 그들의 이름을 걸고 프로덕션을 차려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하고 싶은 프로그램 제작도 하는 이런 현실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를 그만두기가 아쉬웠는데, 용단(勇斷)을 내려서 2000년 3월부터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에서 방송영상, 그 중에서도 ‘TV제작’ 에 대해서 가르치는 교수로 변신을 하게 되었다.

TV 그리고, 방송
내가 원래 관심 있는 분야는 텔레비전이다. 고등학교 1학년, 1971년에 우리 집에 처음 텔레비전이 생겨서 개인적으로 나는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무척 좋아했다. 그 시기는 ‘아침이슬’ 이라는 노래가 나올 때로 MBC 라디오의 박원홍의 ‘팝스 클럽’ 이 조직되어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공연을 빠지지 않고 다니다가 거기서 아마추어 가수지망생인 양희은을 보게 된 일도 있다. ‘새노야’ 와 ‘7송이의 수선화’ 를 들었는데 지금껏 그렇게 내 마음을 뒤흔든 노래는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노래듣기를 좋아하고 음악을 공부한 적이 없는데도 항상 머리 속에 음악이 흐르고 있어서 중학교 때부터 노래를 많이 만들어본 경험도 있다. MBC에 입사하고 나서도 그 실력을 발휘해서 어린이 프로그램 ‘모여라 꿈동산’ 과 ‘퀴즈 아카데미’의 음악도 만들게 되었다. 지금도 대중음악을 열심히 들으면서, 젊은 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듣고, 가사를 보면서 ‘요즘 젊은이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구나’ 라고 짐작을 해 보기도 한다. 또한 개인적으로 나이가 많이 들어 현역에서 은퇴하면, 청소년 카운셀러(counselor)로 상담원 역할을 하려고 한다.

이렇게 내가 TV와 대중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들도 이러한 종류의 글이다. ‘나는 TV에서 너를 보았다’ 중 TV프로그램에 대해서 쓴 것은 2000년 4월부터 현재까지 중앙일보에 쓴 ‘TV읽기’ 라는 글이 모여서 책에 수록되어 있다. 글을 본격적으로 쓴 것은 한겨레신문의 ‘노래세상’ 에서 매주 한 편씩 대중가요를 분석하여 ‘노랫말과 그 속에 나타난 창조자의 생각,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그 노래를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를 본 것이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세상을 향하여 꿈을 불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나고 싶은 친구 집 앞에서 그 친구의 이름을 부른다고 가정해 보자. ‘영수야’ 하고 부른 후 대답이 없으면, 다시 ‘영수야, 영수야!’. 그러면 누군가가 ‘영수 없다’ 라고 말하거나, 또는 영수가 나올 것이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에서 그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듣고 가슴에 무엇인가 품었던 한이 해소될 것이다.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의 가사와 마지막 부분의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는 상당히 은유적인 심상이다. 나는 그러한 노래를 불렀던 시기의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 소유와 상실, 그러한 것들이 노래에 녹아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노랫말중에서 ‘밤’ 이라는 시간, ‘이별한다’ 는 의미, 그것이 세대별, 시간의 이동에 따라 상당히 의미가 변했다고 본다. 60년대 ‘동백아가씨’ 에 나타난 이별과 밤, 70년대 김민기의 ‘아침이슬’ 에 나타난 것, 80년대의 산울림의 ‘어머니와 고등어’ 에서 나타난 ‘한밤중에 목이 마르다’ 는 것을 살펴보자.
젊은이들이 ‘한밤중에 목이 마르다’ 는 것과 그 이유를 살펴보고, 냉장고를 열었을 때 기대했던 것과 달리 고등어가 있어 너무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나를 위해서 고등어를 구워주시기 위해 소금에 절여 놓고 편안히 주무신다.’ 는 해석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아, 난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 좋을 걸.’이라는 노래로 마무리된다.
90년대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중에서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날 떠나 버려야 한다는…’ 라는 가사가 있다. 나는 이러한 노랫말을 만들고 세상에 띄운 그 사람은 어떤 꿈과 어떤 좌절을 겪었는지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추측을 해 본다.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 에서 어떤 사람이 꿈에서 뱀을 보았다고 할 때에는 ‘억눌린 성욕’ 이라고 보지만, 그것은 해석의 일부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꿈을 꾸는 사람은 그것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고, 꿈에 대한 해석은 각자가 다른 것이다. 가장 그럴듯한 해석이 그 사람의 마음에 와 닿으면 되는 것이지, 정답은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이 처한 정황이나 세태에 따라 종합적으로 원형이 되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교육과 방송
17년 동안 PD생활을 하면서 TV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숲’ 이라는 노래의 일부인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인다’ 라는 말처럼, 숲 안에 있으면 나무는 볼 수 있지만, 숲을 볼 수는 없다. 숲의 밖에서는 숲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수 있고 그러므로, 나름대로 예측, 진단, 조언할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교육과 방송이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결국은 ‘인간을 즐겁게 해 주는 일’ 로서 교육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아니다. 현재는 ‘시간이 없고 가르치는 학생이 많으며, 세상이 보는 시선이 따뜻하지 않다’ 는 선생님들의 생각으로 인해 어렵기는 하다. 그러나 교실 내에서도 TV에서처럼 때로는 시청률조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통의 경우 학교에서 학생들이 떠들면, ‘조용히 해’ 라고만 말하고, 선생님의 수업을 재미있게 듣는 경우는 20~25%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TV 프로그램 역시 보지 않는 프로그램과 사람들이 많이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TV 프로그램의 제작자와 시청자는 사이가 나쁠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다. 기본적으로 MBC의 ‘만나면 좋은 친구’, KBS의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SBS는 ‘기쁨주고 사랑 받는 SBS’ 라는 표어를 만족시키면 성공하는 것이다. 특히 MBC의 경우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시청자를 사랑해야 하고, 기쁨과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는 ‘재미를 준다’ 라는 정도로 되어 있다.
‘재미’ 는 스펙트럼이 넓다. 나의 좌우명인 ‘재미있게 살고, 의미 있게 죽자.’ 에서도 재미가 나온다. 축제나 파티가 끝나도 허무하지 않은 재미에는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내게 재미는 첫 번째로 ‘세상에 대해서 화를 내지 않고 친절한 것’ 이다. 분노한다는 것은 낭비이다. 두 번째는 ‘방송과 교육의 연계, 미디어 교육’ 이다.

재미란 무엇인가?
책의 화두인 ‘재미’는 4C로 나타낼 수 있다. 우선 그 대상인 Character(성격)가 재미가 있어야 한다. 과거 MBC의 ‘테마게임’ 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김국진, 서경석, 김효진 등의 Character(성격)가 재미있었다. 요즈음의 인기 있는 MBC의 일일연속극 ‘인어아가씨’ 에서 살펴보면, 장서희, 한혜숙, 우희진, 고두심등의 Character(성격)가 모두 착하기만 하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미국에 1년 정도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내가 있던 곳은 위스콘신의 메디슨 이라는 곳이었는데, 너무 평화로워서 졸릴 정도였다. 그 당시의 글을 보면 내 인생에서는 결코 등장하지 않을 ‘물끄러미’, ‘우두커니’ 등의 단어가 사용되는 등 삶의 재미가 없는 시절이었다. 당시의 한 유학생은 ‘메디슨은 재미없는 천국이고 서울은 재미있는 지옥’ 이라고까지 말했다.

이렇게 Character(성격)들이 서로 사이 좋게 지내기만 하다면, 재미가 없다. 다투고 충돌해야 한다. 이것이 재미의 두 번째 요소인 Conflict(갈등)이다.
다음은 어떠한 목표에 대한 도전. 바로 Challenge(도전)이다. 그 예로서 2002년 8월 19일 MBC 임성훈씨가 진행하는 토크 쇼에 누드모델 부부가 출연했다. 진행자가 출연자에게 애로사항에 대해서 질문을 하니, 부부가 매우 솔직하게 답변했다. 이것은 TV의 수위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보수적인 사람들은 분노를 느낄 수도 있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것이다. 99년, 방송가의 가수들의 복장규제도 이와 같았다. 이렇게 금기시 되는 것에 대한 도전이 Challenge(도전)이다. 현재 KBS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출발, 드림팀’에서 어떠한 목표를 주고 도전하게 하는 것이나, 드라마 ‘허준’ 에서 주인공의 도전, ‘명랑소녀 성공기’ 에서 주인공인 장나라의 도전이 있기에 사람들은 재미를 느낀다.
마지막으로 4C는 Curiosity(호기심)이다. 궁금한 것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요소가 된다.

이러한 재미적 요소 역시 그것을 알지 못하면 느낄 수 없다. 이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에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겁다’ 라는 말과 같다. 바둑을 즐기거나 골프를 즐기는 것과 같다. 알아야 즐거움을 갖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제작자는 시청자에게 재미를 알릴 필요가 있다.

매 방송 편성회의 때마다 ‘왜 장애인,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나 국악프로그램은 없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실제로 방송을 편성하고 나면, 사람들은 시청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전파낭비 이다.
이러한 논의는 제작자의 이중성과 시청자의 이중성으로 말할 수 있다. 제작자의 이중성은 ‘우리는 대중문화의 기수이다. 공영성을 살려야 한다.’ 와 다른 한편으로는 ‘시청률을 올리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로 드러난다. 시청자의 이중성은 ‘좋은 프로그램이다’ 와 ‘그러나 나는 보지 않을 것이다.’로 대비된다. 시청률 조사와 여론조사는 차이가 크다. 사람들은 좋은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은 ‘재미있다’ 라는 사실을 어린 시절에 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판소리나 국악을 가르쳐 준다면 그들은 성장하면서 이러한 음악을 좋아할 것이다. 따라서 방송은 교육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방송에서 재미가 시청률경쟁으로 억압 받으면,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과거 드라마 ‘모래시계’ 가 히트할 시기에 MBC에서는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까레이스키’를,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아들의 여자’ 를 방영했었다. 처음에는 ‘아들의 여자’ 가 시청률이 좋았으나, ‘모래시계’가 이를 박차고 올라오자, 갑자기 ‘아들의 여자’ 에서 주인공인 채시라가 반라의 모습으로 30초의 분량으로 충분한 장면을 5분 여간 춤을 춘 결과, 시청률이 올라간 일이 있다. 선정성과 폭력성이 재미있는 이유는 금기에 대한 도전, Challenge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싸우지 말아야 할 것’ 과 성적인 것에 대한 금기가 억압되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도전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이다. 개그맨 전유성의 저서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폭력과 선정성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도박, 마약, 알코올, 섹스, 폭력 등은 중독성으로 인해서 다른 즐거움으로 이전되지 못하게 한다. TV는 이러한 것들의 방조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제작자는 경계해야 한다.
TV의 ‘연예인 괴롭히기’ 라는 것이 있는데, 번지점프 형식으로 높은 곳에서 연예인을 떨어뜨리게 해서 겁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폭력이다. 폭력은 점차 강도가 높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상당히 경계해야 한다.

재미 그리고, 감동
재미라는 것을 중간에 두고 타락하면, 중독이 되지만, 승화하면 ‘감동’ 이 된다. 모든 예술작품의 제작자, 창작자는 감동을 목표로 한다. 감동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다. 감동은 영화 ‘집으로’ 의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나, TV로는 코미디 프로그램인 ‘이경규가 간다’ 에서 처음으로 횡단보도의 신호등을 지켜 ‘양심냉장고’를 받은 1급 장애인 부부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로는 KBS 미국 뉴욕 브룩클린의 최연소 부장검사인 ‘정범진’ 씨에 관한 내용이다. 36세의 정범진씨는 하반신마비 임에도 불구하고 삶의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 외에도 ‘오체불만족’ 의 저자인 오토다케 라는 청년은 두 팔과 두 다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파스칼에 의하면, ‘인간은 신과 동물의 중간자적 존재’이다. 혹은 인간은 신과 기계의 중간자라고 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중요한 가치들을 하나 둘씩 버리고 산다. 그러나 어느 순간 누군가가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주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잊고 살았던 가치가 환기되었을 때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위에서 장애인 부부의 이야기 역시, 일반인들이 약속을 어겼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인간이 만든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다는 것으로 그들이 진정 인간(人間)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비인간(非人間)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작위적 감동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웃음거리가 된다.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한다. 안성기나 김혜자 같은 연기자들의 연기는 매우 자연스럽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들을 스타로 만드는 힘의 원천이 된다.

텔레비전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
‘TV읽기’ 에서 우리나라 텔레비전이 갖는 문제점과 왜 그러한 문제점이 발생하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TV, 즉 방송의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교육(education)은 ‘끄집어낸다’ 는 뜻으로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본성 중 아름다운 부분을 발굴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나라 교육은 주입식이며, 같은 가치기준에 맞추려 하는 획일화이다. 방송도 마찬가지이다. 시청률경쟁으로 방송을 평가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열등생’ 으로 평가하듯, 방송에서는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의 PD 역시 무시하는 측면이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듯, 방송에서도 PD 들의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방송에서 시청률을 중시하기 때문에 표절이 일어나게 된다. 오락프로그램의 3대 병폐는 ‘벗기기, 베끼기, 겹치기’ 이다. ‘벗기기’는 선정성을, ‘베끼기’는 일본이나 유럽에서 히트한 프로그램을 별 생각 없이 그대로 차용하는 것이다. 베끼는 이유는 쉽게 아이디어를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PD를 두고 ‘시청률의 노예’ 라고 한다. 그러나 노예는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한 종류는 노예다운 노예, 주인에게 잘 보여서 편안하게 살려고 하는 노예근성에 젖은 노예이고, 다른 종류의 노예는 삐딱한 태도로 탈출을 꿈꾸는 노예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노예의 비유와 PD도 마찬가지이다. 시청률만 중시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답답한 상황을 헤쳐나가려 애쓰고 고뇌하는 PD들이 존재하기에 약간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우선 텔레비전의 발전을 위해서는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무조건 비판적 태도보다는 정성을 다해서 인간성을 고양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들을 찾아서 격려해 주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시청자혁명’ 이다. 관련되는 예로서 SBS의 ‘타임머신’ 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는 예전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PD였다. 이는 정통 다큐멘터리를 사람들이 외면하는 현실에 타협한 결과이다. 좋은 프로그램을 발굴해서 격려하는 시청자가 많아질수록, 텔레비전이 건강하고 풍요로워진다.
그러면, 시청자들의 불만중 하나인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떼지어 TV에 나와서 사담을 나누는 모습’ 은 어떠한가? 이에 PD들은 이러한 모습이라도 보여야 시청률이 그나마 유지된다는 항변을 표출한다. 이것은 마치 ‘물고 물리는 관계’ 와 같다.
방송은 정치와 비슷하다. 선거와 시청률은 유권자의 모습과 유사하다. 정치에서 바람직한 정치인을 선출하기를 게을리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TV를 단순한 바보상자로만 치부한다. 유권자의식을 갖고 우리의 권리를 가져야 하듯, TV 역시 그러하다. TV시청은 이미 우리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평균적인 TV 시청시간을 살펴보면, 평일에는 3.5시간, 주말에는 5.5시간을 시청하고 있다. TV는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 세상을 알려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텔레비전의 나쁜 점들을 줄여나가고, 좋은 점들을 키워나간다면, TV가 더 이상 ‘바보상자’ ,’문제아’ 에서 벗어나 삶의 정보와 의미를 부여해 주는 매체로서 자리잡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매주 하나의 프로그램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마치면서
나는 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6남매의 다섯째로서 청상인 고모의 양자로서 형제들과 떨어져서 서울에서 자랐다. 고모는 서울의 돈암동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가, 중3이 되던 해 여인숙을 운영하시는 등, 넉넉치 않은 상황이었으나, 항상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살아라.’는 교훈을 가르쳐 주셨다.

이제 앞으로 남은 삶에서 해야 할 일은 ‘三사’ 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감사이다. 두 번째로서는 찬사이다. 찬사로서는 타인에게 좋은 말만 하고 싶다. 이번 책 발간 이후, 중앙일보에서 ‘스타의 향기’ 란 코너로 스타를 만난 후의 감상을 연재하고 있는데, 혹자는 ‘스타에 관한 좋은 말만 쓴다’ 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해당 연예인을 비판하는 것은 좋은 말로 타이르는 것보다 당사자의 실수나 잘못을 고치게 하는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과감하게 실수를 용서하면서 이야기하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본다.
자녀와 부모의 관계 역시 그러하다. 아버지가 딸에게 자신의 기대치만 이야기하면, 그들의 사이는 더욱 멀어지기만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아버지가 ‘내가 내 딸의 나이일 때에는 그보다 더 못했어.’ 라는 사실만을 기억한다면, 관계는 회복될 것이다. 최근의 부모를 살해한 청년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 아버지가 사랑을 반어적으로 표현하여 기대치만 강요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알 수 있다.
三사의 마지막으로서는 ‘봉사’ 이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일로서는 방송에 관심은 있으나 지방에 있어 그 방법을 잘 모르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봉사를 하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TV와 그 이해’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귀기울여 경청하고 싶다. 또한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과거의 부끄러운 일과 어려움을 나누는 것도 좋은 일이고, 그들의 친구이자 카운셀러가 되고 싶은 생각이다. 더불어 현재의 업인 학생들을 지도하는 현장성을 가진 교수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TV, 대중가요 등의 대중문화에 대한 우호적 시선을 잃지 않고 좋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봉사하고 싶은 바램을 가지고 있다.

*이 원고는 지난 8월19일 경영자독서모임에서 진행되었던 주철환 교수(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의 강의을 바탕으로 IPS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이명미 연구원(교육본부) ymlee@ip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