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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영자독서모임으로의 초대21-일본에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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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축구는 보편적으로 인기있는 스포츠이지만 축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축구의 발상지는 의외로 중국이다. 요즘 우리 국민들의 커다란 관심사 중 하나는 우리 나라 대표팀이 16강에 올라가느냐 못 가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와 같은 조에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이 속해 있다. 폴란드는 FIFA 랭킹 6위이고 우리 나라는 41위이다. 우리 나라를 포함한 4개 나라가 각각 3번씩 경기를 치러서 16강 진출을 가리게 된다. 우리 나라는 6월 4일 부산에서 폴란드와, 6월 10일 대구에서 미국과, 6월 14일 인천에서 포르투갈과 경기를 앞두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 선수의 실격 이후 반미감정이 매우 고조되어 있다.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한 주한미국대사는 요즘 ‘월드컵에서 미국이 16강에 진출하고 한국은 16강에 진출하지 못하는 악몽을 꾼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은 불편한 관계
“Open Superiority Complex, Hidden Inferiority Complex”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당시 <기업과 정부관계>라는 주제로 논문을 썼는데, 소재는 일본의 자동차산업에 관한 것이었다. 이 논문을 쓴 이유는 일본 경제가 성공한 이유가 일본 정부의 경제정책 때문이라는 명제를 분석해보려는 의도였다. 논문을 쓰다 보니 일본과 우리 나라의 경제정책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비슷한 일을 겪어왔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혼다가 자동차를 생산하려고 할 때 일본정부가 적극적으로 만류한 일, 여러 개의 자동차 회사를 하나의 회사로 합치려고 통폐합 시도를 주도한 일을 비롯하여 국제화시대의 외국기업 합작문제도 그렇다. 이에 논문을 쓰며 정부가 왜 그런 분석을 했고 왜 그렇게 대응했는가에 대하여 분석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2년 전 일본경제신문사에서 책 출간을 권유받아 1년 반에 걸쳐서 책을 냈다. <일본에 말한다>는 그 책을 번역해서 한국에서 출간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일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일본과 우리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관계이고 내버려두면 하루 아침에 악화될 수도 있는 관계이며, 바람직한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 관료들에게만 한일관계를 맡기면 악화되기 쉽다고 생각된다.
우리 나라의 고령층은 일본에 대해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 있으나, 젊은 세대들은 일본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한마디로 ‘서로 불편한 관계(Mutual complex relationship)’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던지는 첫번째 질문은 ‘한국인 개인의 능력은 일본보다 뛰어난데 집단으로 볼 때 왜 일본보다 가난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반대로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가지는 생각은 ‘일본은 분명히 세계 경제 대국인데 한국은 왜 일본을 존경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인데 일본을 존경하기는커녕 왜 무시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도 나름대로 그 의문에 답을 찾아본다고 한다. 찾다 보면 그럴듯한 대답을 발견하게 되고 ‘한국이 이래서 우리를 존경하지 않는구나’하고 나름대로 생각하는 Hidden inferiority complex가 있다. 이렇게 양쪽이 서로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예전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공부할 당시 읽었던 기사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일본인들이 전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라가 어디인가’라는 설문이었는데 첫번째가 스위스, 두번째가 프랑스였다. 그 다음 질문은 ‘일본이 전세계에서 싫어하는 나라가 어디인가’였는데 첫번째가 소련, 두번째가 북한, 세번째가 한국이었다.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을 싫어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첫째 대답은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배은망덕한 나라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식민지 기간 중에 고속도로와 철도를 건설해 주는 등 대만보다 한국에 더 많은 것을 해주었는데도 대만은 2차 대전 이후 친일정책을 펴고, 우리는 이승만 정권이 대대적인 반일 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일본이 6세기에 야마토문화를 거쳐 국가로 형성되었는데, 그 야마토문화가 한국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고 한다.

일본,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전세계적으로 200여 개의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어 있는데, 우리 나라는 자유무역협정을 하나도 체결하지 않은 드문 나라이다. 한국과 일본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일본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대일 무역적자는 늘어나지만 전체적인 무역수지는 개선될 수 있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일본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보다 중국과 먼저 맺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중국경제와 한국경제와의 상호보완적 측면이 일본과 한국에 비해 크다고 주장한다. 물론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경우 농수산물 시장에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국제 무대에서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하는데 이런 점들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 기업에 있어서나 국가에 있어서나 경영은 대안을 넓혀가는 과정이다. 국가의 장래와 안전을 생각한다면 대안을 넓힐 필요가 있고 일본 및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보수적인 일본의 정치와 외교

프랑스의 쉬라크 대통령이 FIFA 임원을 초대해서 점심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2002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한국-일본의 관계가 독일-프랑스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나까소네 수상이 내건 슬로건 중 하나가 “2차 대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자(Comprehensive settlement of post war account)”였다. 키신저박사는 유럽은 21세기에 접어들었는데, 아시아는 아직 19세기, 20세기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유럽은 European Union이 성공적으로 출범하여 의회와 행정부를 형성하고 화폐도 통일했는데, 아시아지역은 아직도 지역패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후 50년이 지난 1995년에 유럽에서는 소련의 옐친, 미국의 클린턴, 유럽 각국의 대표들이 모여 큰 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1942년 진주만 습격사건 50년 후인 1992년에 미국이 추모행사를 추진하였는데 일본은 이를 반대하였다. 일본 외교는 국내 정치에 포함되어 있어서 일본은 외교적 사항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정치가 보수화되는 이유는 지방자치제도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지방자치가 활성화될수록 중앙정치가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의 유치와 그 의미

축구협회회장에 취임하고 나서 축구협회 간부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대답은 ‘월드컵을 유치하시면 됩니다’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까?’하고 되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였다. 그럼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물었더니 FIFA 부회장에 출마하라고 이야기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FIFA 부회장에 내가 당선되었고 그 후 잘하면 월드컵을 유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뛰었다. 그 때 일본은 이미 월드컵유치위원회를 조직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우리도 월드컵유치위원회를 만들려고 했으나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축구협회에 출입하는 기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다짜고짜 “월드컵유치위원회 초대위원장 이홍구 박사 취임”이라고 써 붙였고, 이것은 사실 법적인 효과가 전혀 없는 일이었지만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월드컵유치위원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월드컵유치가 정치적인 사안이 되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일본과의 공동개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힘들게 시작한 월드컵 유치는 FIFA의 역학관계마저 극복하고 이루어낸 쾌거이다.
이번 월드컵은 반드시 새로운 한국과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드는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한국과 일본은 ‘Korea vs Japan’의 역사였지만 이것을 ‘Korea with Japan’ 혹은 ‘Korea and Japan together’의 관계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둔 한일 양국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좋은 의미에서의 라이벌이며 파트너로서 협력해야 치열한 국제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월드컵은 세계 여러 나라에 우리를 알릴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우리가 세계 여러 나라를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16강 진출과 우리와 같은 조에 속한 세 나라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우리 나라에 오는 다른 많은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세계로 눈을 넓혀야 할 것이다.

*이 원고는 지난 4월29일 경영자독서모임에서 진행되었던 정몽준 회장(대한축구협회)의 강의을 바탕으로 IPS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윤지영 선임연구원 jyyun@ip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