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esting,
Pioneering and Satisfying

 뉴스레터

제목 경영자독서모임으로의 초대20-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발간일 첨부파일
사람들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골인한 선수가 깃발을 들고 운동장을 도는 것을 보고 환호하지만 나는 거부감을 느낀다. 골인지점에 들어왔을 때 온 힘을 다 소진해서 쓰러져야 하는데 운동장을 돌 힘이 남아 있다면 좀 더 스피드를 높여서 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나는 1997년 2월까지 4년 동안 대우전자부품 대표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배순훈 대우전자 회장으로부터 대우전자가 삼성과 LG를 이기고 1등을 할 수 없을까 하는 질문을 받았다. 그 질문에 3년만 주면 1위를 할 수 있다고 대답하자 97년 2월부터 대우전자의 국내영업부문 사장을 맡게 되었다. 먼저 사고의 전환이 필요했다. 영업현장을 살펴보니 삼성제품은 삼성전자 대리점에, LG제품은 LG전자 대리점에, 대우제품은 대우전자 대리점에서 각각 맡고 있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고객을 생각하지 않은 발상이다. 고객이 한자리에 와서 각 회사의 제품을 모두 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현재의 하이마트를 만들었다. 그렇게 97년 2월 이후 10개월 동안 열심히 뛰고 있는데 뜻밖에 한국전기초자의 사장으로 지목되어 3년 예정이던 대우전자 사장직을 접고 그 곳에 취임하게 되었다.
한국전기초자는 전혀 근접해 보지도 않은 회사였다. 임시주주총회가 97년 12월 말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너무나 궁금해서 그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공장만이라도 둘러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그 날로 와이셔츠 한장과 양말 두켤레를 챙겨 밤기차에 올랐다. 3교대로 돌아가는 공장에서 관리감독자가 없는 새벽의 모습이 가장 정확하므로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 다음날 임원들을 모아 놓고 이달 말 임시주총에서 임원으로 승인될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우리가 잘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보러왔다며 아직은 취임 전이니 무엇이든지 솔직히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주 실망스러운 5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첫째, TV사업은 이미 성장, 성숙단계를 넘어 쇠퇴기에 들어서서 더 이상 TV를 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제품이 팔리지 않아서 창고는 물론 주차장에까지 재고가 쌓여 있다고 하였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임 경영자는 판단을 잘못해서 성숙시장 말기에 2공장을 증설하고 3공장까지 신설했다. 영업이익도 나지 않는 상황에서 증설된 자금을 온통 차입금으로 충당했기 때문에 그 이자를 감당할 수가 없다. 내가 취임하던 시기에는 벌써 IMF 관리체제로 들어선 상황이었다. 단기자금을 중심으로 비싼 이자돈을 쓰고 있었는데 IMF 체제가 되면서 이자 상한선이 없어졌다. 셋째, 브라운관이나 모니터용 유리를 만드는 기술을 가져오기 위해 미국 테크네글라스社에 매출액의 1.5%를 로열티로 지불해야 했다. 게다가 90년대 들어 가전제품이 대형화됨에 따라 대형 브라운관과 모니터를 제조해야 하는데 그 기술은 매출액의 3%를 로열티로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넷째, PC 모니터 시장은 97년 현재 성숙단계였다. PC 모니터 기술은 전세계에서 코닝, 아사히, NEG 3개사만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이 독과점으로 전세계 수요공급을 조절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기술을 살 수도 없었다. 다섯째, 이 회사는 97년 7~9월 석달 동안 파업을 했다. 97년 들어 재고가 자꾸 쌓이자 6개로 중 1기의 불을 껐다. 거기 매달려 먹고 살던 사람들이 일거리가 없어지니 불안한 마음에 헛소문만 흉흉했다. 노조위원장은 고용보장각서에 싸인을 요구했지만 회사로서는 들어줄 수 없었다. 결국 노조는 파업을 선언하고, 회사도 즉각 응사해서 회사문을 닫았다. 9월말에 파업이 끝나고 10월부터 작업을 다시 시작했지만 교섭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파업과정에서 노사간 충돌뿐 아니라 노노 간에도 서로 충돌해서 작업장에서도 서로 말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나는 그 때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흔히 사양산업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과연 사양산업이 어디 있는가. 산업은 사양하거나 쇠퇴하지 않는다. 다만 그 속에 있는 개별기업이 쇠퇴하고 사양할 뿐이다. 사실 나이키 같은 신발업, 이태리의 섬유회사들은 세계 기업랭킹 수위를 달리고 있다. 사양산업은 없다는 것을 내가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IT(정보기술), BT(생명공학기술) 등 T자가 붙은 것을 해야지 굴뚝산업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업종과 업종 간의 평균수익률의 격차보다는 동일한 업종에서 1위 기업과 꼴찌 기업과의 격차가 훨씬 크다. 어느 업종이나 1위가 되었을 때는 당당할 수 있다. 21세기 우리 사회의 문제는 실업문제인데, 이 문제는 제조업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제조업도 얼마든지 으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노사관계가 불안정하고 잘못되었기 때문에 입는 손해가 엄청나다. 거기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강한 노사관계에 대한 노하우를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는 해외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서구적인 경영기법과 사고를 도입하는데 내 경험과 체험으로는 그렇지 않다. 한국적인 특수한 기질과 체질이 있기 때문에 한국적인 경영과 관리를 해야 하고, 그런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는 지론이 있었다.
결국 기업은 사람과 일의 문제이다. 어떻게 사람의 잠재능력을 발휘하게 만드는가가 으뜸이다. 사실 유명한 기업과 조직이 되는 것은 두 가지 조건에 달려있다. 조직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일처리 능력이 뛰어날 것과, 그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의욕이 솟구칠 것이다. 그렇다면 실력과 의욕을 갖추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사람은 서구사람과 차이가 있다. 우선 지혜롭고 창의력이 있다. 나는 대우전자부품에서 전세계 5개국의 8개 회사를 4년 동안 경영하면서 한국사람이 가장 지혜롭고 성실하고 독창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 독창성을 잘 결집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 안되는 것이다. 한국인은 리더를 잘못 만났기 때문에 고전하고 지배당했지만 나중에 구국한 것은 민초들이었다. 우리 민족의 저력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기업을 하는데 있어 풍부한 자원, 충분한 자본, 축적된 기술의 3대 요소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위의 3대 요소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지혜, 부지런함, 성실함의 3대 요소로 그것을 극복하는 민족이다. 다만 리더가 시원치 않아서 제대로 인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조직 안에 있는 인원들이 일하고자 하는 의욕에 불탈 때에는 이미 지혜와 기본 실력이 있는 것이고 그것을 발휘하게만 만들면 된다. 또한 한국인은 정을 베풀고자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리더는 조직원들이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틀 속에 가두어서 심지어 표창할 때도 ‘맡은바 임무에 충실하였기에 표창함’이라고 한다. 한국사람은 일방지시형이다. 그러다 보니 직장이 내 생활의 터전이며, 많은 정을 베풀면서 모든 잠재능력을 다 발휘하고자 했던 생각이 싹 가신다. 결국 직장은 시키는대로만 하고 봉급만 받아가는 봉급수령처로 전락했다. 그런 조직치고 잘 되는 조직은 없다. 우리 리더들은 팀장, 과장만 되도 시키는 일에 아주 능숙하다. 시키는 대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일의 한복판에서, 일의 부지런한 주인이 되게 해야 한다. 주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영의 모든 정보를 다 공유해야 한다.
나는 혁신 1기 1998-2000년을 끝내고 혁신 2기에 도전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경영정보를 모두 공개했다. 정보를 공유한 결과 직원들이 일의 한복판에서 주인이 되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조직이 활성화하고 힘을 발휘하기 위해 그 조직의 리더는 과장, 부장, 임원, 사장을 막론하고 존경받아야 한다. 존경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대접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버리도록 해야 한다. 한국사람은 철저히 평등사상에 길들여져 있다. 인류는 자유와 평등의 두가지 목표를 추구한다. 자유와 평등의 목표가 균형을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이지만 우리 사회의 용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 혹은 평등주의에 기울어진 사람이 많다. 여기서 말하는 평등은 기회의 평등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과의 평등을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철저히 오픈하지 않으면 안된다. 분기마다 재무제표, 원가계산서, 현금흐름을 공개한다고 해서 열린 경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직원이 대접받고 회사 돌아가는 형편을 다 이해해서 일의 주체가 되었을 때 그것이 바로 열린 경영이다. 그래서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직원들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였다. 임원들은 극비사항을 다 공개하면 손실이 더 크다고 만류했다. 그러나 혁신에는 전체 체제화라는 것이 있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불리함과 유리함이 있을 때 유리함이 약간이라도 크면 손실을 감수하고 진행하는 것이 전체 체제화이다. 경영정보가 밖으로 나가서 생기는 손실보다도 전종업원들이 사람 취급 받는다고 느끼고, 한마음이 되어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때 생기는 폭발적인 힘이 훨씬 크다. 한국인은 당위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목숨을 걸기 때문에 철저히 정보를 공유해서 몸을 던질 가치가 있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새벽 3시, 오전 9시, 오후 5시 3차례에 걸쳐 시도 때도 없이 생산현장을 다니며 경영설명을 해댔다. 내 방식에 반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직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임원들은 제발 새벽 3시에는 하지 말자고 만류했지만 나는 그 시간에 직원들의 눈빛이 가장 초롱초롱한 것을 느꼈다.
경영은 교과서 줄 긋기가 아니라 몸을 던져서 부딪쳐 보아야 한다. 나는 직원들에게 모든 경영정보를 공개하면서 위기를 공감하게 하였다. 경영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것이다. 사장을 맡고 있는 사람도 경영이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조차 구조조정을 언제까지 끝내겠다고 말한다. 구조조정이 언제까지 끝나는 한시적인 것인가. 그들의 생각으로는 구조조정은 곧 사람 자르는 것이고, 사업 팔고 자산 처분하고 보유주식 매도해서 부채비율을 낮추면 구조조정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기업경영이란 레일 위를 달리는 기관차이고 자갈밭을 달리는 자전거이다. 자전거를 달리게 하기 위해서는 페달을 목숨 걸고 돌려야 한다. 그 페달의 이름이 구조조정이고, 경영혁신이다. 경영을 끝내는 순간까지 열심히 페달을 돌리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직원들뿐 아니라 직원 가족에게도 경영정보를 공개하기 위해 6개월마다 가족을 초청해서 현장을 둘러보게 하고 함께 식사하며 일의 내용을 설명했다. 또한 직원 가족에게 PC교육을 시켜서 이메일을 보낼 수 있도록 하고 홈페이지에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가족들은 내 홈페이지에 올려진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연히 나의 팬이 되었다. 정보를 공유하고 기업의 위기를 공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비전은 캠페인성 표어가 아니다. 기업경영이란 깜깜한 밤에 방향만 잡고 직접 차를 몰고 가는 것이다. 기업경영은 지나간 과거를 그리워해서도, 현재에 집착해서도 안된다. 경영은 불확실한 미래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므로 경영자는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고 긴장된다. 차를 몰고 한참을 가다 보면 방향이 맞는지, 기름은 충분한지, 약속 시간에 늦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그것이 바로 기업경영이다. 가는 도중 잠깐 스쳐가는 이정표를 훑어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방향을 틀어야 할지, 기름을 더 넣어야 할지, 속도를 더 내야 할지, 쉬어도 될지 다 알게 된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해주는 것이 비전이다. 그러므로 비전은 스쳐가면서 보아도 머리 속에 훤히 남는다. 기업의 비전도 마찬가지다.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나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직원들에게 비전에 대해 철저히 설명을 해댔다. 직원들은 우리 회사의 어려움과 경영상황을 다 안다. 98년에는 적자 안내기, 99년에는 시장점유율에서 우리 바로 앞순위 회사를 따라잡고, 2000년에는 빚을 다 갚는 것이 목표였다. 당시 삼성코닝과 우리 회사는 금액기준으로 봤을 때 2대8 정도였다. 97년 당시 연간매출 2,377억에 차입금 3,480억원과 미지급금 1,200억이 있었다. 6,000억원이 넘는 부채를 2000년 말에는 다 갚는다, “혁신 98, 도약 99, 성공 2000”을 직원들에게 달달 외우게 했다.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이 비전에 가장 거부감이 많은 사람은 임원들이었다. 임원을 철저히 설득해서 임원들이 내 앞잡이가 되어야 모든 것이 가능하다. 사장은 교주, 임원들은 전도사, 종업원들은 광신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힘이 있고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임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원래 한국 사람들은 새로운 안건이나 프로젝트가 나오면 우선 강하게 거부한다.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우리 사회는 비판성 발언을 하는 사람을 똑똑하다고 인정한다. 혁신이란 가죽을 벗기는 것이다. 가죽을 벗기면 피가 나고 아픔이 있다. 철저히 목숨을 걸지 않으면 부채비율 1,114%의 기업이 어떻게 살아 남겠는가. 남이 잠잘 때 깨어있고 남이 놀 때 공부하고 남이 쉴 때 일하는 모습을 갖자고 설득했다. 직원들은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자며 그렇게 큰 목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된다고 생각하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되고 행동하게 되지만 안된다고 좌절하면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세상만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생각이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제발 지금까지 가졌던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 적극적, 활동적인 생각을 가지라고 임원들을 채근했다. 임원들 먼저 바뀌지 않으면 어떻게 직원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임원들을 밤낮없이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에서 퇴사한 임원들도 있다. 우리는 적극적, 능동적, 활동적으로 다가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키는 일에 능숙하면 안되고 일의 한복판에서 함께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리더가 ‘나를 따르라’고 하지 않고 ‘함께 합시다’를 외치며 철저히 비전을 공유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철저히 알게 했다.
‘혁신 98’을 실현하기 위해 현장의 직원들에게 남들과 같이 해서는 남을 앞설 수 없으니 우리는 2시간 일하고 10분 쉬자고 제안했다. 그 뜨거운 용광로에서 1시간 일하고 30분을 쉬어도 진이 다 빠지는데 2시간 일하고 10분 쉬자는 말은 날벼락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더라도 30분 쉬는 것보다 훨씬 쾌적하고 일할 맛 나는 현장으로 만들겠다, 이것을 참고 견디는 것도 가죽을 벗기는 아픔이다’라고 직원들을 이해시켰다. 더러는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믿고 따라오겠다는 직원들이 더 많았다. 바로 위기를 공감한 것이다. 간부들에게도 3년 동안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단 하루도 쉬지 말자고 했다. 또한 복리후생제도도 혁신 1기 3년 동안 보류하였다.
이런 모든 것을 경영자가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고 당위성을 설명해야 한다. 한국인은 당위성을 인정하면 목숨을 걸고 한다. 달라진 세상에서는 변하는 점이 있다. 첫째,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자는 하던 일도 빼앗긴다. 둘째, 게놈프로젝트 등 과학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120살까지 늘었는데 50대에 일자리가 없어지면 70년을 자식에게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 셋째,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가 부를 창출하는 으뜸이 된다. 그 정보는 바로 고객의 정보이다.
맨 처음 부임했을 때 노조위원장이 찾아와 고용보장각서에 싸인을 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고용보장은 사장이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하는 것이다. 고객이 우리 물건을 선택해서 대금이 들어오면 재료비, 제조경비와 인건비가 나온다. 고객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고 우리에게 일을 주는 것이다. 사장에게 100가지 요구사항을 적어 올 것이 아니라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100가지를 적어서 고객에게 싸인을 받으면 그것이 바로 고용보장각서이다.
다가오는 세상의 또 하나의 특성은 트랜스내셔널, 다시 말해 초국적사회이다. 왜 사양산업이라고 하는가. 전 세계를 보면 얼마든지 시장이 있다. 다만 왜 쇠퇴했느냐를 알아야 한다. 신발산업을 사양산업이라 하지만 우리집에만 가도 신발이 엄청나게 많다. 과거에는 소품목 다량생산체제였으므로 생산자 위주의 생각을 가지고 값싸고 품질좋게 만들면 다 팔린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에 앨빈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이제는 다품목 소량생산체제에 익숙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했다.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각각 특성있게 만들어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지 말고 도전하며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한다.
의욕이 솟구치는 분위기를 만들고 일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어렵고 뜨겁고 무거운 일이기 때문에 사람을 구하기 어렵고 일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결국 그것은 가치관의 문제다. 일을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그것처럼 지겨운 집단이 없을 것이다. 일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나에게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게 하고 남에게 고개 숙이지 않게 하고 남에게 신세지지 않게 하는 가장 고마운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에 대한 가치관을 적립해 주어야 한다. 그것을 바로 기업조직의 사장이 해야 한다. 나는 일에 대한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일이 무엇이냐를 가지고 가장 많은 시간을 토론했다. 공자가 말한 ‘30세 而立’은 학문의 기초를 확실히 세우라는 것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자립도 의미한다. 조직원의 헌신과 몰입이 고성과를 이룬다. 기업조직은 전문경영인, 전문관리인, 전문영업인, 전문기술인, 전문기능인 등 각각의 전문인들이 수평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각 조직원은 모두 프로다. 우리는 고객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한다. 전세계 선진기업의 연구소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앞서가는 노하우다.
우리는 혁신 98에 매출은 전년 2배인 4,842억원, 순이익 305억을 기록했다. 이어서 99년에는 매출 5,717억에 순이익 745억을 냈다. 그러나 99년 말 우리에게 불행한 일이 생겼다. 우리의 지배주주였던 오리온전기와 대우전자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이었다. 우리가 워크아웃 속에서 독야청청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갈밭에서 계속 피와 땀을 흘리면서 페달을 밟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사히글라스가 우리 회사 주식을 52,000원에 사들였다(내가 취임했을 때는 주가가 3,800원에 불과했다). 나는 1년 후에는 무차입이 되는 2조원짜리 회사를 어떻게 4,000억에 넘기느냐고 펄펄 뛰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반대로 일본에서는 아사히글라스가 한국전기초자 주식을 비싸게 샀다고 비난했다. 대우가 경영에 참여했을 때는 10,300원이던 것을 1년 후에 52,000원에 샀으니 말이다. 아사히글라스 임원들은 ‘99년에 한정된 조건에서 5,700억 매출에 745억의 순이익을 냈다는 것은 기적이다. 2000년에도 그렇게 해 줄 수 있겠는가’하고 물었다. 내가 답하기를 ‘기업이란 제품에 대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종업원들에게는 생산성을 높이고 설비에는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인데 어떻게 같아질 수 있느냐. 매출에 500억을 더 붙여서 6,200억 매출에 순이익 1,000억을 내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아사히글라스 임원들이 일본에 돌아가서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결론을 냈다고 한다.
2000년 말 반도체 경기가 떨어지고 PC시장도 얼어붙었는데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전세계가 우리 물건만 쓰겠다고 했다. 우리는 2000년 말 매출액 7,104억에 순이익 1,700억을 기록했다. 우리나라 700개 상장법인 중 영업이익률 37.5%로 1위이다. 2000년보다 2001년 상반기에 순이익이 150억 더 늘었다. 그것은 바로 일에 심취한 결과이다. 취임 당시에는 10년 동안 20가지 기종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3년 동안 100가지 품목을 생산했다. 우리는 그렇게 피와 땀을 흘렸다. 1차 고객인 종업원들에게는 정말 일할 맛나는 최적의 일터라고 생각되고, 고객에게는 정말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당신들을 선택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며, 주주에게는 최고의 배당과 최대의 기업가치를 높여주고, 채권단에는 약속을 확실히 지키며, 국가에는 최고의 세금을 내는 것이 바로 기업가 정신이다. 기업가 정신이란 사장의 정신이 아니라 전직원들이 모두 살 맛나고 뿌듯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 원고는 지난 1월21일 경영자독서모임에서 진행되었던 서두칠 사장의 강의을 바탕으로 IPS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윤지영 연구원 jyyun@ip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