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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영자독서모임으로의 초대19-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내가 꿈꾸는 기업세상
발간일 첨부파일
1995년에 설립된 안철수연구소는 데이터를 보호하는 보안업체로서는 국내 1위 기업이다. 지난 9월 12일 코스닥에 상장하였고 현재 벤처기업 중 시가총액 3-4위 정도이다. 안연구소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오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지금까지 안연구소가 성장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 한국적 상황에서 벤처기업이 생성되는 과정과 고난을 극복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86년 의과대학 졸업 후 전자공학과 컴퓨터를 의학과 접목시킬 수 있는 분야를 고민하다 심장전기생리학 분야를 택했다. 그러던 88년 어느날 컴퓨터 잡지에서 컴퓨터 바이러스에 관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 후 내 컴퓨터 속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컴퓨터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컴퓨터 바이러스란 한마디로 말해 사용자 몰래 실행되는 복사 프로그램이다. 정상적인 컴퓨터 복사프로그램은 내가 명령을 내릴 때에만 1회 복사가 되는데, 컴퓨터 바이러스는 내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저절로 복사가 되는 차이가 있다. 사용자 몰래 저절로 복사가 되다 보니 내 컴퓨터 내에서도 퍼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컴퓨터까지도 복사가 된다. 처음 우연히 내 컴퓨터에서 바이러스를 발견했을 때 너무 신기했다. 하루 밤을 새워 분석하고 원리를 이해하고 나니 생각보다 치료 방법이 쉬웠다. 실력가가 아니면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컴퓨터에서 쓰는 여러 가지 툴과 도구를 이용하여 바이러스 제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컴퓨터 전용 치료프로그램을 만들면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혜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컴퓨터 바이러스를 없애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프로그램의 이름을 ‘백신’이라고 지었다. 문제의 발단은 백신 프로그램을 컴퓨터 잡지에 발표한 것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바이러스에 걸린 컴퓨터를 잡지사에 보냈고 잡지사에서는 그것을 전부 나에게 가지고 왔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타의라 함은 의학이라는 전공이 있는데 사람들이 부탁을 하는 통에 하는 수 없었던 것이고, 자의라 함은 나름대로 재미있고 내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다는 보람이 있었다. 박사과정 학생과 조교 일을 동시에 하고 있었던 터라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은 새벽 뿐이었다. 그 후 7년 동안 새벽 3시에 일어나서 3시간 정도는 컴퓨터에 시간을 썼고 6시부터는 의대 일을 하는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95년에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계속 이중생활을 하다가는 결국 양쪽 다 전문가가 되지 못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 때 오히려 과거의 성공이 현재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과거에 내가 성공을 했던 실패를 했던 그것은 과거사일 뿐이고 지금 중요한 것은 현재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나 자신도 발전하고 타인에게도 도움이 될 것인가의 관점에서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그 동안 일군 의학박사, 대학교수 자리까지도 전부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의사는 나 말고도 많기 때문에 컴퓨터 보안 쪽의 일을 하는 것이 나 자신도 재미있고 보람되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의대 쪽을 포기했다.
안연구소 설립 당시의 나는 실패할 확률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나마 장기적이고 본질에 충실한 마인드로 접근한 것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95년 설립 당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았다. 첫째, 사람 구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대기업에서 제대로 대우 받으면서 일하고 중소기업 사람들은 서로 인력이동도 없는 상황이었다. 두번째, 자본 모을 길이 없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지분투자는 상상도 못하고 담보가 있다고 해도 빌려준 돈을 못 받을까 전전긍긍하던 때이니 자본투자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세번째, 나 자신이 의사출신에다 혼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 출신이므로 조직에 대한 경험도 없고 경영에 대한 감각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실패의 가장 큰 씨앗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안연구소는 기업부설연구소처럼 연구만 하고 마케팅과 세일즈는 한글과 컴퓨터에서 담당하기로 협력을 맺었던 것이었다. 또한 그 당시 시장예측에 따르면 한국에서 시장이 제대로 크려면 최소한 2-3년 후는 되어야 했다. CEO는 능력있는 사람을 영입하든지 아니면 자신이 직접 경영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능력있는 사람을 영입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으나, 당시에는 안철수연구소가 7년 동안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했기 때문에 수익모델이 없었으므로 능력있는 사람을 데리고 오기가 힘들었다. 마케팅 세일즈를 직접 하지 않아도 되고 향후 2년 정도는 시장이 커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회를 이용해서 제대로 경영을 공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여 공부를 결심하였다.
95년 3월에 회사를 설립하고 6개월 동안 어느 정도 사람들을 셋업한 후 9월에 펜실베니아대학 와튼스쿨의 테크노MBA 프로그램에 입학했다. 경영도 배우고 기술면에서도 이론적인 백그라운드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처음에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경영학 용어조차도 생소한데다가 회사경영까지 해야 하니 시간을 쪼개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당시부터 인터넷이 자리를 잡으면서 이메일로 경영이 가능해졌던 점이다. 95년, 96년 사이 조금씩 경영에 대해 알게되면서 매출이 2배 성장하였고 회사도 문제없이 굴러갈 수 있게 되었다. 공부가 끝날 즈음 한글과 컴퓨터가 마이크로 소프트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바람에 우리 회사의 마케팅과 세일즈를 한글과 컴퓨터에서 맡기가 어려워졌다. 그 계기를 통해 나름대로 독자적인 생존을 모색하기 시작하였고 97년 초반에 자체적인 마케팅 세일즈를 가진 하나의 정식회사로 출범하게 된다. 그 전까지만 해도 기업부설연구소의 형식에 불과했지만 97년부터는 작기는 해도 본격적인 단일 회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안연구소는 96년까지 개인용 컴퓨터용 백신만을 만들었다. 97년에 들어서자 인터넷, 네트웍, 서버가 발달하여 전산환경이 복잡해졌고 그에 따라 바이러스가 들어올 수 있는 틈새가 매우 다양화되었다. 그러니 개인용 컴퓨터 백신 뿐 아니라 네트웍이나 인터넷용 백신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안연구소는 세계 일류회사에 비해 1년 정도 기술이 뒤져 있었다. 그 격차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과연 안연구소가 98년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97년 말 IMF 환경이 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우리에게 IMF는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그 때부터 인력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핵심 프로그래머들을 영입할 수 있었고 임대료 등 고정비용이 떨어져 회사운영에 있어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덤핑공세와 차입경영을 하던 경쟁사들이 쓰러져서 경쟁관계도 훨씬 편해진데다 외국지사들이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IMF는 우리에게는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되었다. 또한 차입경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자비용이 없어서 IMF는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98년 한해 경영환경은 어려웠지만 이때야 말로 외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여 R&D에 집중하고 회사 내의 인프라를 구축했다. 97년까지는 CEO가 CFO의 역할까지 했었는데 98년에는 CFO와 인사담당자도 뽑았다. 또한 작은 회사는 채널들이 영업을 도와주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여러 인센티브 정책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경영학 공부를 한 후 가장 크게 배웠던 것은 내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가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95년에 경영 공부를 시작할 때는 의사나 프로그래머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사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97년에 경영학 석사를 받은 후에는 경영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모자라는 것이 많은지 알게 되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것이 2년 동안 테크노MBA를 하면서 얻었던 가장 큰 교훈이다.
언젠가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98년 한해 동안 회사 셋업과 연구개발에 투자했는데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 99년 4월 26일 CIH바이러스 대란이 일어나 전국적으로 30만대의 컴퓨터를 못쓰게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컴퓨터 한 대당 손실비용이 최소 100만원 정도이고 전국적으로는 300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그 사건을 거치면서 시장규모가 4배로 커졌지만 그 때도 역시 위기라고 판단했다. 일반적으로 시장이 20-30% 커지면 1,2위가 바뀌는 것이 매우 힘들지만 시장 크기가 4배가 커지면 그 전까지 1,2위는 전혀 반영이 되지 않는다. 경쟁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상태에서는 이전의 1,2위는 의미가 없고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게임이다. 누가 얼마나 그 큰 시장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1,2위를 결정짓는 상황이었다. 나름대로의 위기감을 가지고 그 시기에 정말 열심히 노력한 결과, 99년 말 시장은 4배 커졌는데 안연구소의 시장점유율은 5배 성장하였다. 일반적으로 시장이 커지면 1위 업체는 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안연구소는 98년 한해 동안 준비했던 덕분에 400% 성장이라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99년 말에서 2000년에 걸쳐 몇 가지 주목할만한 일이 있었다. 안철수연구소는 99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여 국내 최초로 보안분야 매출액 100억을 돌파했다. 전체 산업 규모로 보면 그리 크지 않지만 매출 115억에 이익 70억이 되었다. 소프트웨어산업은 영화산업과 비슷해서 원자재도 들지 않고 재고관리의 위험이 없기 때문에 히트치면 손익구조가 엄청나게 달라진다. 또한 99년 말 벤처열풍으로 99년 11월에는 코스닥지수가 150이 넘었고 2000년 초반에는 280에 육박했다. 그런 상황으로 보아서는 안주할 수도 있지만 나는 또다시 위기상황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왜냐하면 원천적으로 IT산업 자체가 안주할 수 있는 분야가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IT산업 분야는 2년마다 50%씩 바뀐다고 한다. 아무리 전세계적인 석학일지라도 1-2년 공부를 게을리하면 일반인과 똑같은 수준이 되어버리는 분야이다. 모든 제품은 라이프사이클이 있기 마련인데 그 제품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제품의 라이프사이클과 기업의 라이프사이클이 같은 궤적을 그릴 수 밖에 없다.
CEO의 역할은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을 때 수년 후를 내다보고 앞으로의 성장을 준비하는 것이다. 내 목표는 앞으로 100년 이상 같은 철학을 가지고 영속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CEO는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2000년 초반에 4대 변화의 모티브를 잡고 본격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백신회사에서 보안회사로의 변화이다. 아이템 자체가 라이프싸이클에 따라서 하향곡선을 긋기 전에 나름대로 현재 가지고 있는 기술력, 마케팅 노하우, 영업채널을 재활용할 수 있는 분야로 연구개발을 집중하여 차세대를 만드는 것이다. 한글과 컴퓨터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래아한글은 어쩌면 MS워드와 기능 면에서 경쟁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제품인데, 문제는 전쟁의 패러다임이다. 워드프로세서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오피스라는 통합 솔루션과의 싸움으로 변한 패러다임에서 여전히 소총으로 탱크를 대적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안연구소는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더욱 차세대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두번째, 로컬기업에서 글로벌기업으로의 변화이다. 아마도 3년 이내에 외국기업과 본격적으로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한국을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450개의 보안회사가 있고, 세계 450개 기업과 별개로 우리나라에만 200개가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제품력 뿐만 아니라 회사 내부의 매니지먼트, 자본력, 마케팅 노하우 등 모든 것들이 글로벌기업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내에서만 보더라도 결국은 외국업체와 충돌하게 될 것이고 지금부터 나가서 그들의 노하우도 얻고 본격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서 미래에 생존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이다.
세번째, 작은 조직에서 큰 조직으로의 변화이다. 백신에서 머무르지 않고 보안으로 영역을 넓히고 로컬기업에서 글로벌기업으로 변화하려면 능력있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큰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모든 사람들이 가치관을 공유하고 회사의 가치관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자본주의적이기는 하지만 내부에서 우선적으로 평가시스템, 보상시스템, 조직관리시스템을 확립하여 순차적으로 발전을 뒷받침할 조직을 만드는 것이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큰 변화이다.
네번째, 비상장업체에서 상장업체로, 코스닥 등록법인으로의 변화이다. 위에 언급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펀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안연구소의 경우 국내 백신회사로서는 펀딩이 필요없는 조직이었다. 수익율이 높다보니 충분히 영업이익만으로 모든 마케팅비용, 운용비용, 투자비용까지도 커버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해외시장에서 제품을 런칭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다. 비용이 많이 필요하다고 갑작스럽게 펀딩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여러 가지 경험도 쌓고 내부적으로 IR체제와 공시체제를 정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되어 상장업체로, 코스닥 등록법인으로의 변화를 추진하고자 한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네가지 변화는 어떻게 보면 리스크 팩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다가온 변화가 아니라 스스로 만든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쉽지 않고, 하나라도 삐끗하면 회사에 큰 타격이 될 수도 있는 중대한 변화이다. 반면 4가지 변화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글로벌 보안기업으로서 비약적으로 성장할 좋은 모티브가 될 것이다.
나의 목표는 ‘영혼이 있는 기업 만들기’이다. 기업의 존재목적이 이윤추구라고 하지만 돈을 벌겠다는 것이 과연 목적이 될 수 있는가. 돈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이다. 돈을 벌고 싶다고 해서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배양하고 핵심역량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면 그 결과로서 얻어지는 것이 돈이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돈이 기업활동의 목적이기보다는 고유의 핵심역량을 가지고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열심히 일하면 그 결과로서 따라오게 된다. 당장의 이윤추구보다는 가치관의 공유, 판단기준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좀 더 확대해 보면 상장기업의 경우에도 주가가 목적이 아니라 결과라고 생각한다. 좋은 기업을 만들고 핵심역량을 바탕으로 하여 영업이익이 나고 성장률이 높은 기업이 되면 주가는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핵심가치란 일종의 비전이므로 단순히 목표매출액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또 경영자나 창업자가 일방적으로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스스로의 생각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핵심가치를 모든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믿고 있느냐, 그것이 일관성있게 유지되느냐, 또 이러한 가치들이 회사제도에 속속들이 반영이 되느냐가 중요한 키이다.
우리의 존재의미도 중요하다. 만약 우리 회사가 없다면 사회에 허전함이 있을 정도로 우리의 존재의미를 인식하고 그 범위가 넓어야 한다. 안연구소의 존재의미는 컴퓨터 바이러스 퇴치가 아니라 기술력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다. 그러한 존재의미를 가진다면 안연구소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안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에 공헌하도록 스스로 진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기업문화는 핵심가치에 근거한다. 우리의 핵심가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모두는 자신의 발전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한다. 둘째, 우리는 존중과 신뢰로 서로와 회사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한다. 셋째, 우리는 고객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고객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 이런 핵심가치들이 기업문화 내부에도 많이 반영되어 있다. 1999년 말 다른 기업들이 모두 Y2K 바이러스가 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없다고 확신하고 언론에 Y2K 바이러스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적이 있다. 눈 앞에 있는 매출보다는 장기적으로 고객과의 신뢰가 중요하므로 바르지 않은 정보에 대해서는 힘있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했다.
모두들 IT기업은 빨라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다. 기업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장기전에서 이기려면 무조건 빨리 달리기보다는 체력이 충분히 축적되어야 한다. 마치 개구리가 다리를 움츠려야 멀리 뛸 수 있는 것처럼 핵심역량을 키우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조급하다고 해서 그냥 가면 멀리 뛰지 못하고 기어갈 수 밖에 없다. 또한 인간우위의 요소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CEO와 직원들 서로의 동료의식, 서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의식, 신뢰감이 조직의 키이다. 안연구소가 상장한지 한달이 지났지만 직원이 1명도 나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벤처기업들이 상장하면 초기에 많은 직원들이 더 좋은 대우를 찾아 떠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그런 것들이 아마도 서로 믿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시되고 실수 자체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동료의식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안연구소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결과는 하늘이 주시는 것이지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CEO에는 세가지 단계가 있다. 1단계, 기업의 초창기에는 중재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어떤 아이템을 만들고 어떤 사람들을 모아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것이 창업자 머리에서 나오고 어느 정도 회사의 틀을 갖추는 역할이다. 2단계, 회사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실무형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모든 의사 결정에 관여하고 프로세스를 잡아주어야 한다. 3단계, 전략적 리더이다. 회사가 더 성장하여 조직이 커지면 그 때부터는 실무 권한을 이임하고 전체적인 방향을 잡고 비전을 제시하는 전략적인 리더로 변화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불행은 비교에서 나온다. 특히 남과의 비교는 자신 뿐 아니라 회사와 사회에서도 불화를 일으킨다. 진정한 비교의 기준은 남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이다. 회사 내에서는 평등함보다는 공정함이 우선시되어야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진다. 특히 사람의 역할이 중요한 벤처기업에서는 평등하면 오히려 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나갈 수 밖에 없다. 파이를 키우는데 역할을 한 만큼 인정해 주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내 동료와 나를 비교하고, 다른 회사와 우리 회사를 비교하는 불행의 근원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패배주의에 젖어서 한국에서는 교과서적인 것이 도저히 통용되지 않는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한국이 꼭 이론대로 되지 않는 나라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술 한 잔, 답배 한 개피, 골프채도 잡아본 일이 없지만 올해 말이 되면 소프트웨어 매출액 300억에 육박하는 기업이 된다. 우리 사회도 교과서적인 방법이 통용되는 사회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원고는 지난 10월22일 경영자독서모임에서 진행되었던 안철수 사장의 강의을 바탕으로 IPS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윤지영 연구원(교육팀) jyyun@ip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