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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영자독서모임으로의 초대14-노키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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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사우나의 나라 핀란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3국의 하나로서 울창한 삼림과 6만개 이상의 호수 그리고 3만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핀란드의 정식 명칭은 수오멘 타사발타(Suomen Tasavalta)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자신들을 수오미(Suomi, 호수의 나라)라고 부른다. 필자는 헬싱키에서 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핀란드의 제2도시 투르크(Turku, 헬싱키가 수도가 되기 전까지 핀란드의 수도였으며 Abo라고도 한다)를 방문, 그 곳에 있는 노키아의 소규모 공장을 취재한 뒤 - 한국에서 태권도를 배워서 지금은 그 곳에서 꽤 규모가 큰 태권도장을 하는 - 미코(Mikko)라는 핀란드인 집에서 하루를 묵은 적이 있다.
긴 겨울 외롭고 손님이 귀한 핀란드 마을에서는 손님과 사우나를 같이하는 것이 큰 대접이다. 주택 본체와는 20m쯤 떨어진 곳에 따로 지은 전통적 핀란드 사우나에서 필자는 통나무를 태워 사우나 내부를 데우고, 땀이 나면 물에 적신 자작나무 묶음으로 온 몸을 탁탁 쳐가며 즐겼다.


바이킹과 불루투스 그리고 뉴노매드

바이킹 원정에는 북유럽 지역이 모두 참가하였는데, 지리적 조건 때문에 스웨덴-핀란드계 바이킹들은 주로 동쪽으로 원정하였다. 반면 현재 덴마크와 노르웨이에 속하는 지역과 스웨덴의 남서부 지방에 살던 민족들은 대체로 서쪽과 남서부 방향으로 진출하였다.
바이킹 역사상 가장 용맹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고 덴마크의 초대 국왕인 동시에 최초의 가톨릭 교도였던 사람이 하랄 블로탄(Harald Blatand, 910-985)인데, 그의 영어식 이름이 해롤드 불루투스(Harold Bluetooth)이다. 그리고 바이킹 시대의 종말에 이르러 북유럽에는 경계가 확정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 핀란드 등 3개의 국가가 탄생하였다.
오늘날을 진정 새로운 유목사회(new nomad society), 다시 말해 이동정보사회(mobile information society)라고 규정짓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물품들, 예를 들면 손목시계·비행기·자가 건강진단기·워크맨·랩탑 컴퓨터·휴대용 무선전화기·휴대용 팩시밀리 등을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J. Attali, 전 EBRD 총재)는 총체적으로 유목물품이라고 명명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휴대가능하고 또한 쉽게 이동가능한 물품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개인에게 사적인 자율성·기동성·정보수집 및 처리능력을 부여하지만, 반면에 국가의 각종 제도와 규정 그리고 관료제도를 약화시킨다.

산업혁명의 확산과 노키아의 탄생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었다. 이 시대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자 은행이었다. 1825년 영국이 기계수출 금지조치를 풀자, 전문 기술자들도 각국으로 흘러 들어가 산업혁명은 각국에 차례로 전파되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유럽대륙과 러시아에서 산업화가 진행되는 도중에 산업별로 시차를 두고 산업혁명이 진행되었다. 1865년 이런 와중에 프레드릭 이데스탐은 노키아 공장을 세웠다.
노키아그룹의 출발은 일반적인 회사의 창업 과정과는 달리 다소 복잡하고, 또한 처음부터 하나의 회사로서 출발한 것도 아니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약 150㎞쯤 올라가면 핀란드 제3의 도시 탐페레(Tampere)가 있는데, 거기서 또 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이름도 없고 사람도 별로 살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광산기사 프레드릭 이데스탐(Fredrik Idestam, 1838∼1916)은 조그만 목재 펄프공장을 설립했다. 그는 회사이름을 - 미국이나 다른 유럽의 경우 창업자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하는 것과 달리 - 그냥 부르기 좋게 노키아(Nokia)로 결정했다.

공장을 가동한 직후부터 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핀란드와 유럽에서 일반 종이와 포장용 판지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노키아 공장은 증설에 증설을 거듭했고, 당연히 공장 근로자와 그 가족들이 늘어났으며, 이름도 없던 마을은 소도시로 번창했고 노키아는 1915년 자사 주식을 헬싱키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핀란드 고무회사와 핀란드 전선회사

핀란드 고무회사(Finnish Rubber Works, FRW)는 1898년 헬싱키 부근에 설립된 회사였다. 핀란드는 겨울이 길고 당연히 눈이 많아 길이 질척거렸다. 이런 지리적·기후적 여건을 감안, FRW는 주로 고무장화를 만들어 핀란드 사람들에게 팔았다. 어느날 FRW의 두 임원이 우연히 노키아 마을을 지나가다가 노키아 마을이 아름답고 또한 수력발전을 이용할 수 있음을 알고는 고무공장을 노키아 공장 옆으로 이전했다. 1920년경부터는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의 상표를 Nokia로 결정했다.
1912년 핀란드 전선회사(Finnish Cable Works, FCW)가 헬싱키 도심에서 설립되었다. 핀란드 전선회사는 처음에는 종업원 몇명으로 출발했으나 회사는 곧 대기업으로 성장했는데, 그 당시 전선(cable)은 전력의 송신뿐만 아니라 전보(telegraph)와 전화(telephone)의 가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곧 호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의 황제는 속국 핀란드인에게 전화회사 설립을 쉽게 허용하게 된다.
1930년대 핀란드에는 넓은 국토에 비해 소단위로 흩어져 사는 국민들을 서로 연락하기 쉽도록 해주는 전화회사가 무려 815개에 달했다. 그에 따라 핀란드의 전화회사들은 경쟁과 협력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일찍이 터득하게 되었다. 기업 합병이 진행되면서 지금은 결국 2개 회사만 살아 남았는데, 부분적인 민영화를 단행한 Sonera社와 헬싱키 전화회사 등 2개 회사가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다각화를 추진, 위기에 빠진 노키아

1922년 FRW의 주주는 FCW의 주식 대부분을 매입했고 노키아, FRW, 그리고 FCW 세 회사들의 소유권은 동일한 주주들의 손으로 서서히 넘어갔다. 1967년 드디어 세 회사는 노키아 그룹(Nokia Group)으로 통합이 완료되었다. 노키아 그룹으로 통합한 후 노키아는 사업을 급속히 다양화하고 다른 업종의 기업을 매수·합병했다. 그 결과 1970년대 초 노키아는 2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핀란드 최대의 그룹이 되었다. 그러나 노키아는 서로 관련 없는 분야로 확장을 거듭한 탓에 계열사간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으며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1980년대 말 노키아는 본격적으로 경영위기에 몰렸다. 120여년의 노키아 역사상 최악의 위기였다.
이런 위기에서 노키아를 구출해낸 것은 북유럽의 잭 웰치로 불리는 요르마 오릴라(Jorma Ollila)회장을 비롯한 노키아의 이사회를 구성한 최고경영자들이었다. 오릴라는 취임과 함께 - GE의 웰치와 마찬가지로 - 업계 1위가 아니거나 1위가 될 가능성이 없는 사업은 과감히 포기했다. 고무, 제지, 펄프, 타이어, 가전제품, PC 등을 모두 정리하고 이동전화 단말기와 정보통신 인프라 부문에 사활을 걸었다.

장거리 통신산업 진출과 디지털 기술

노키아의 장거리통신부문(Telecommunication Sector)은 1960년 FCW의 전선공장에 전자부
(Electronics Department)를 만들면서부터 출발하였다. 그 당시 FCW의 사장 보른 웨스트룬드(Bjorn Westlund)는 반도체 기술의 잠재력을 간파하고는 전자부(Electornics Department)를 창설했다. 그리고는 커트 빅스테트(Kurt Wikstedt)를 책임자로 임명했는데, 빅스테트는 곧 기대에 부응하여 시장이 요구하는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67년 정식으로 노키아 그룹이 탄생했을 때 전자부는 노키아 그룹 총매출액의 겨우 3%를 차지했고 종업원 또한 460명으로서 소규모 사업단위에 지나지 않았다. 휴대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라디오를 송신하는 전화의 개발은 1963년부터 시작되었고, 그 후 개발된 소위 라디오폰(Radiophone)은 군대, 정부 공공부문, 그리고 긴급 위난시 사용하는 것으로 전문가용 이동식 라디오(Professional Mobile Radio)가 주류였다.
1975년 노키아의 전자부는 3부문으로 분할했는데, 그 하나가 장거리통신 (Telecommunication)부이다.
사카리 살미넨(Sakari Salminen)이 그 부서의 책임을 맡은 직후 급성장했다. 당시 디지털 교환기에 대한 필요성이 크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노키아는 디지털 교환장치(digital exchange device)를 개발했는데, 그것이 노키아 최초의 디지털 교환기 Nokia DX200을 만든 출발점이 되었다. 이 제품을 바탕으로 노키아는 교환기 사업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모토롤라의 제임스 케일 수석부사장은 "노키아가 뜨고 있는 것은 10년 전 디지털 조류(Digital Wave)를 먼저 봤기 때문이다. 당시 수익성이 높은 유선을 포기하고 무선에 뛰어든 노키아의 무모함을 비난하며 유선을 고집했던 기업들은 지금 크게 후회하고 있다"
고 말했다.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

GSM(Global System for Mobile Telecommunication)은 유럽에서 채택하고 있는 디지털 이동전화 방식이다.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부호분할 다중접속 방식)는 주로 미국과 우리 나라에서 채택하는 이동전화 방식으로, 각 채널의 신호에 부호화 처리를 하여 구별할 수 있도록 다원접속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양자는 지금 디지털 이동전화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GSM은 범유럽 표준규격으로 제정된 시분할다중접속(TDMA) 방식을 채용하고, 유럽 17개국을 단일통화권으로 묶은 것이다. 모뎀을 사용하지 않고도 전화 단말기, 팩스, 랩톱 컴퓨터 등에 직접 접속해 이동데이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반해 CDMA는 통화를 원하는 사람마다 부여한 특정 코드만을 골라 음성신호로 재생하는 방식이다. 1987년 유럽 전역이 디지털 GSM기준을 통신기술의 표준으로 채택한 후, 노키아의 오릴라 회장은 GSM에 승부를 걸었다.
노키아의 휴대폰들은 사용자 편리성, 단순성, 스타일을 표현하는 상징이 되었다. 1996년 발매된 노키아 8100시리즈는 우아한 디자인, 경량화, 고품질, 그리고 다기능성을 갖춘 제품군이었다. 1999년 데이터퀘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노키아는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가 되었고, 시장점유율은 26.9%였다.

노키아의 조직과 커넥팅 피플

노키아그룹에는 3개의 제품사업부, 그리고 별도로 2개의 사업부가 있다. 3개의 제품사업부는 노키아 장거리통신사업부(Nokia Telecommunications), 노키아 이동전화사업부(Nokia Mobile Phones), 노키아 통신장비사업부(Nokia Communications Products)이다. 별도로 노키아 벤처사업부(Nokia Ventures Organization), 노키아 연구센터(Nokia Research Center)가 있다. 노키아는 3개의 핵심사업(core business)만 남기고 1995년 전선부문을, 1996년 텔레비전을 포함한 가전부문을 처분했다.
노키아는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 이동성(mobility) 등을 미래 정보통신 시장의 메가트랜드로 인식하고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무선 데이터 솔루션이 음성 위주의 기술과 융합될 것이고, 컴퓨터 환경은 중앙 집중에서 네트워크 시스템 중심으로 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노키아는 '커넥팅 피플(Connecting People)'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노키아의 사업 그 자체다. 모든 사람이 어디서든지 원하는 정보를 즉시 얻을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강한 기업 문화와 환경에 대한 통찰력을 기반으로 핵심역량을 극대화하고 있다. 노키아는 기술적 노하우 및 무선 시장에서의 글로벌 경쟁력을 토대로 품질을 높이고, 고객의 욕구를 신속하게 충족시킴으로써 향후 세계시장에서의 리더십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커넥팅 피플'은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 노키아의 일하는 방식이다.

노키아의 전략, 디자인과 마케팅 그리고 브랜드

세계 정보통신업계는 최근 들어 선진업체간의 전략적 제휴가 확산되고 있는데,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 각 분야의 기술적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들간에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다. 전세계 5만명에 가까운 종업원과 4개국에 R&D 센터를 보유하고 있는 노키아는 해외 시장 매출 비중을 점차 늘려나가고 있다. 전체 매출의 약 95% 이상이 해외 매출인 노키아의 제품은 전세계 130여개국에 판매되고 있다.
노키아는 '목욕탕까지도 갖고 들어가고 싶은' 멋지고 편한 이동단말기를 개발해 전세계로 수출해 엄청난 달러를 벌어들여 노키아 자신뿐만 아니라 핀란드를 불황에서 구했다. 한 기업인의 스마트한 두뇌전략이 금융위기로 부실채권 구덩이로 빠져드는 핀란드를 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핸드폰이나 컴퓨터에서 모티브를 따온 의상이 발표되고 패션상품이 전자제품의 영역을 침범하기도 한다. 제품의 외형은 물론 기능을 봐도 어디까지나 패션이고 어디서부터 전자제품이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싱가포르의 브랜드 전문 조사기관인 인터브랜드사(Interbrand)와 미국의 시티은행이 공동으로 실시한 국제 브랜드가치 조사 결과, 미국 코카콜라가 838억4500만달러로 1위를 오르는 등 미국 기업들이 상위 10개를 모두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키아의 브랜드 가치는 약 207억달러로 11위를 차지했으나, 이것은 미국지역 이외의 기업으로서는 최고 순위이고, 일본의 세계적 기업 소니(18위)와 도요타(20위)를 앞서는 것이었다.

불루투스 SIG

불루투스는 에릭슨, 노키아, IBM, 인텔, 도시바 등 5개 거대업체가 1998년 결성한 「불루투스 스페셜 인터레스트 그룹(SIG)」이 공동 개발한 근거리 무선 네트워킹 기술의 개발 코드명이다. 불루투스(Blue Tooth)는 노트북과 휴대폰, 디지털카메라, PDA(휴대정보단말기) 등을 연결하는 케이블을 없애는 기술인데, 쉽게 말해 휴대폰과 노트북을 케이블로 연결하지 않고 그저 옆에 두기만 해도 휴대폰을 통해 노트북으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컴퓨터와 프린터를 연결하지 않아도 인쇄할 수 있고 퇴근한 뒤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다.
불루투스는 음성부호화 방식인 CVSD(Continuous Variable Slope Delta Modulation)를 채용해 문자 데이터는 물론 음성 데이터도 전송할 수 있다. 에릭슨, 노키아 등 과거 바이킹의 후예들인 북유럽을 기반으로 한 통신업계 맹주들이 그룹을 주도하면서 이같은 이름을 붙였다.

맺는 말, 노키아가 불러일으킨 창업가 정신

지난 15년간 휴대폰은 크기와 무게가 괄목하게 줄어들었고 신제품도 쏟아져 나왔다. 1990년대 핀란드의 휴대폰 사용율은 급속히 증가하였고 가격은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노키아는 일찍부터 휴대폰을 개인용 기술로 인식했다. 그것은 기능적인 도구일 뿐만 아니라 소유자의 취향에도 적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휴대폰 시장에서 노키아 브랜드는 즉각 사용자 편리성, 단순성, 그리고 멋진 스타일의 대명사가 되었다. 오늘날 휴대폰 산업의 몇몇 품질표준은 노키아가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핀란드는 독립 전에는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삼림을 바탕으로 임업, 축산과 낙농, 사료작물 재배 등 농업이 주산업이었다. 핀란드의 임산업은 1960년대에 최고조로 발달해 전체 산업의 69%를 차지할 만큼 주종산업이었으나, 노키아가 주도하는 정보통신산업이 50%를 넘어서면서 핀란드는 임산가공 및 제지산업에서 정보통신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에는 현재 16,000개 이상의 기업이 전체 민간 근로자의 25%를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노키아가 핀란드 국민에게 끼친 영향은 정신적인 측면(mental thing)이 더 중요한데, 핀란드의 문화개조(cultural modification) 역할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표> 1999년 세계 이동전화기 판매 상위업체(단위:100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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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업체 판매대수 전년대비증가율 시장점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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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키아 76.33 97.7 26.9
2 모토로라 47.81 43.3 17.0
3 에릭슨 29.78 15.0 10.0
4 삼성 17.68 27.9 6.2
5 파나소닉 15.58 -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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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283.0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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