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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영자독서모임으로의 초대 8 - 안녕하십니까 전성철입니다
발간일 첨부파일
이 원고는 지난 99년10월25일 전성철 변호사( 부드러운 사회 연구원장 / MBC-TV '경제를 푼다' 진행자 )의 강의를 바탕으로 산업정책연구원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부드러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나름대로 도달하고자 하는 각양각색의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 수많은 목표 중에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두 가지 사항이 있는데 그 하나는 넉넉하게 살고 싶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드럽게 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40년 동안 넉넉하게 살자는 목표에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여 살아왔다. 그것이 상당히 성과를 거둔 결과 현재 넉넉하게 살게 되었지만, 한쪽으로만 너무 치중한 탓에 부드럽게 사는 쪽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지난 40년 동안 넉넉하게 살자는 목표를 향해서 온 나라와 민족이 에너지를 모았던 것의 포커스를 조금 옮겨, 사회를 부드럽게 만드는 쪽으로 역점을 두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잘 살아 보자는 그 꿈을 향해서 모두가 매진했었던 그 때, 사회에는 지금과 같은 혼란은 커녕 오히려 그 꿈으로 일치단결하여 사회가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고 그 꿈이 매력을 잃어 가면서 우리 나라는 꿈이 없는 사회로 표류해가고 있다. 지금이 바로, 다시 한번 꿈을 정립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이제는 그 꿈을 잘 살아 보자는 것에서부터 부드러운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곳으로 전환하여 다시 한번 일치단결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두 가지 사람의 목표, '넉넉하고 부드럽게 살자'는 그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데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IMF 사태가 도래하게 된 원인
우리 모두는 지난 40년 동안 한가지 목표를 향하여 매진한 결과 실로 많은 것들을 이룩할 수 있었는데 이것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처음으로 우리 3천만 민족이 모두 합의하는 통일된 꿈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지내던 중 IMF라는 걸림돌에 봉착하게 되었고 이것은 성공으로 매진하던 우리 국민에게 커다란 쇼크로 다가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IMF가 왜 왔는지에 대한 해답을 내려주지 않아, 또 다시 이런 위기가 도래하는 것을 막거나 위기가 닥쳤을 때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를 포함한 모두가, 아무 문제없다고 장담한 상황하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는 한구석 혹시 그 재앙이 다시 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내재해 있다. 그리고 지금 이런 불안을 떠안고 21세기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사소한 화재 하나까지 원인을 꼭 밝혀 다시는 같은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하는 반면, 우리는 국가적 차원에서 온 국민을 재난 속에 퍼트린 엄청난 일을 당하고서도 어느 누구 과학적, 객관적, 양심적으로 그 원인을 파악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넉넉하게 사는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우선 이 IMF의 제반사항에 대하여 불가피하게 짚어보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IMF를 보는 시각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우연설이고 다른 하나는 필연설이다. 전자는 외환관리 등의 일시적인 miss management나 동남아시아 등 다른 나라의 태풍이 불어닥쳤기 때문에 IMF가 왔다는 것이고, 후자는 시기적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겪을 수 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정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IMF가 온 근본적 원인은 우리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1년에 총 생산하는 GNP가 4천억불 남짓한 반면, 하루에 클릭하나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돈은 무려 1조불에 달한다. 또한 전세계의 투자물을 향해서 돌아다니는 돈은 자그만치 25조불이다. 미국 한 나라만 하더라도 무려 12조 불에 달하는 돈이 투자 대상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 그 25조불 중에서 단 1%만 있었더라도 우리는 외환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에 있는 12조불 중에서 약 8조불 정도는 pension펀드이고 약 4조불 정도는 뮤추얼펀드이다. 소로스 같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헤지펀드는 약 4천억불 정도 되지만 이 헤지펀드 1이 움직일 때 다른 펀드 10이 함께 이동하기 때문에, 이 4천억불의 돈은 4조불의 위력을 발휘하여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요즘 우후죽순 생겨나는 뮤추얼 펀드는 한나라만 해도 무려 만개가 넘으며 거기에는 각각의 펀드매니저들이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단 0.01%라도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에 대해 밤낮 고민하는 사람들로서, 세계는 지금 이처럼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펀드 매니저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이다. 그 수많은 펀드매니저들이 투자대상을 찾아 전세계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제는 우리도 그들이 주시하는 것을 밝혀 그 시각에 맞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우리 나라 지도층에서는 IMF가 누구의 음모에 의한 것이니 하며 현실을, 세계를 모르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를 보는 두 가지 방법 -- 미시 vs 거시
한 나라에 경제 위기가 왔다면 그 전에 적어도 경제가 어렵다는 식의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있었어야 하는데 우리는 IMF가 오기 3주전만 해도 경제 펀드멘탈이 좋다고 경제총수가 자신있게 말했던 상황이었다. 여기에는 납득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갑자기 위기가 몰아 닥쳤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경제를 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거시를 보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미시를 보는 방법이다. 거시라는 것은 숲을 보는 것이며, 미시는 나무를 보는 것이다. 그 당시 우리의 경제총수가 우리 경제의 펀드멘탈이 튼튼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근거는 경제를 거시적 측면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즉, 나무가 아닌 숲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숲은 분명히 괜찮았다. 완전고용에 달하는 취업률에, 6-7% 경제 성장을 보였고, 국제수지도 급격한 성장을 이루고 있었으며 물가도 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시라는 각 개별 나무들, 즉 경제의 주체들인 기업, 은행, 정부, 소비자와 같은 모든 경제 주체들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 된 상태였다. 그리고 외국의 투자가들은 바로 이 미시적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란 - '실용주의·계몽 주의'에서부터 '성장과 개발'까지
그렇다면 우리 경제가 미시적 관점에서 엉망진창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 기준이 바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이며, 그때 세계의 투자가들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을 기준으로 우리를 판단하고 평가한 결과 외환위기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글로벌 스탠다드는 윤리규범도 도덕규범도 아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떡을 크게 키우는 것으로 앞서 언급한, 사회를 넉넉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두 가지 목표의 실용적 규범이다. 많은 사람들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97년 동남아시아에 위기가 오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이것은 무려 300-400년 전부터 전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스탠다드는 17-8세기의 실용주의·계몽주의가 그 처음 모습이었고 그 후 인류 역사와 함께 여러 모습으로 발전하여 오고 있다. '실용주의', '계몽주의'는 바로 '떡을 빨리 키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17-8세기 당시, 아시아에서는 이 실용주의·계몽주의라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받아들이기 거부하였고 그 결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모든 나라들이 망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도 예외 없이 정약용이 실사구시의 실용주의, 계몽주의라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제시했지만 북학파에 의해 무시되었고 그 결과 망국의 치욕을 겪어야만 했다. 글로벌 스탠다드는 모든 사람이 옳다고 인정하면 상식이 되어 그것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고, 그 뒤를 잇는 다른 형식으로 새롭게 생겨나게 된다. 실제로 19세기 말에 이르러 실용주의·계몽주의를 부인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없게 되자, 그것은 더 이상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하지 못하게 되었고, 20세기초에 '성장과 개방'이라는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가 탄생하였다. 20세기에는 이 '성장과 개방'이라는 것 외에 다른 한가지 '분배와 폐쇄'라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존재했었는데 이 두 사상은 한 세기 동안 실로 피나는 싸움을 하였다. 하나는 '떡을 키우고 문을 열자'는 '성장과 개방'의 자본주의 이론이었고, 다른 하나는 '떡을 키우기 전에 제대로 갈라 먹자'는 '분배와 패쇄'의 공산주의 이론이었다.
우리 역사상에도 이 두 가지 이론을 놓고 엄청난 고민에 빠졌던 시기가 있었다.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로서 1960년 말부터 그는 과연 나라의 기조를 어느 쪽으로 잡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노심초사하였다. 그는 분배라는 것은 우선 갈라 먹을 떡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서 결국 먼저 문을 열고 선진국과 교류하여 새로운 신기술을 받아들이고, 떡을 키우자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였다. 이때 박대통령이 '성장과 개방'이라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택함으로써 북한과 한국이 지금과 같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에 영원할 것만 같았던 소련마저 무너지면서 이제는 어느 누구도 '성장과 개방'이라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해서 부인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성장과 개방'이라는 이론은 글로벌 스탠다드로서의 자격을 상실해 버렸고, 그것을 뒤 이어 새롭게 대두된 글로벌 스탠다드는 바로 '시장성과 투명성'이다.

투명성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글로벌 스탠다드'는 선·악에 대한 윤리적인 지침이 아니라, 떡을 빨리 키우고 사회를 더욱 부드럽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지침이다. 그렇다면 20세기말, 21세기로 넘어가는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가 '시장성과 투명성'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가 숙지하고 있듯이 이제는 지구상의 어느 기업, 국가, 단체도 자국 내에서만 활동해서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나보다 발전된 외국과 기술, 자본, 사업 그리고 경영과 제휴해야만 기업이 제대로 커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외국과 이러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바로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의 기술, 자본, 사업, 경영 등은 투명하지 않은 상대와는 절대 교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7년 우리 나라의 기업들은 어떠했던가? 높은 수익을 올렸다고 해서 보면 장부가 분식되어 있었고, 전망이 밝다고 해서 주식을 사면 어느 사이에 계열사에 지급보증해서 빈껍데기를 만들어 놓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처럼 투명성이 없는 기업이나 조직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못 받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97년 내내 외국 투자가들이 물밀 듯이 빠져나간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미시적 관점에서 나무를 보고 투자하는 외국 투자가들의 시각에서 그 당시 우리 나라 기업들은 형편없이 썩어 가는 나무였던 것이다.

시장성
나머지 글로벌 스탠다드인 '시장성'을 살펴보자. 실제로 '시장'은 인류가 지난 수세기를 살아 오면서 발명한 가장 좋은 최상의 제도이다. 이 '시장'이라는 제도가 좋은 이유는 다섯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시장은 굉장히 민주적인 제도로서 독불장군을 허용하지 않는다. 즉, 시장은 한 사람이 좌지우지 할 수 없는 것으로, 내가 아무리 비싸게 팔고 싶어도 나보다 싸게 파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할 수 없는 지극히 민주적인 제도이다. 둘째로 시장은 굉장히 공정한 제도이다. 즉, 먼저 온 사람이 먼저 가져가고 더 열심히 일하 고 일 잘 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이 바로 시장이다. 셋째로 시장은 잘 사는 사회로 만들어 준다. 진정으로 잘 사는 나라란 그 구성원에게 많은 선택을 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LG 브랜드 하나 밖에 없는 TV가게를 가진 사회와 LG, 삼성, 필립스, 소니, GE 등 온갖 브랜드들이 진열된 가게를 가진 사회를 비교하였을 때 당연히 후자가 잘 사는 나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을 많이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시장이다. 또한 시장은 사회를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시장에 가보면 어느 누구도 '이리로 가라', '이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는 가벼운 흥분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시장이다. 마지막으로 시장은 떡을 크게 만드는 최고의 제도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장에서는 모두가 자기 이익만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한다. 즉, 자기 이기심을 마음대로 발휘할 수 있어 모든 사람이 열심히 일하므로 떡을 빨리 키울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 본 5가지 이유만 보아도 인류를 아름답고 잘 살게 만들기 위해서는 시장이라는 제도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현 시대의 글로벌 스탠다드인 '시장성과 투명성'은, 마치 과거의 '실용·계몽 주의', 그 다음에 '성장과 개방'이라는 글로벌 스탠다드처럼, 이것을 어느 민족이 빨리 받아들이는가에 의해 한 나라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100년 전 '실용·계몽주의'를 받아들이는데 실패하여 나라를 잃고 온갖 수모를 겪었지만, 다행히 박정희 대통령이 '성장과 개방'이라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늦게라도 받아들여 현재와 같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시장성과 투명성'이라는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가 도래한 것을 또 다시 모르고 IMF 사태라는 치욕적이 과오를 범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한국이라는 배급제 사회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은 '배급제 사회에서 시장성 사회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발전된 사회일수록 시장성을 택하고 있다. 이것을 토대로 우리 나라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정치에서 확연한 배급제 정치임을 알 수 있다. 위에서 하나씩 떡을 던져주는 바로 배급제 정치의 전형이다. 시장성 정치라면 보스 한 사람의 뜻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서로 일어서기 위해 경쟁하는 사회여야 한다. 우리 교육을 보면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우리의 교육은 수많은 선택을 주는 시장이 아닌 획일화된 배급제 제도를 택하고 있다. 소위 '뺑뺑이'라고 하는 제도가 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한국 사회를 어렵게 만드는 것들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노동시장이다. 노동시장에 유연성이 없어, 정리해고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경영시장의 유연성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IMF가 온 이유로 노동시장 유연성의 부재를 들지만 실제로 그것이 기여한 비율은 10% 밖에 안된다. 오히려 경영시장 유연성의 부재가 IMF를 부채질한 촉매 역할을 하였다. 무려 50% 이상의 문제가 이것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있어 일 못하고 불필요한 사람을 쫒아 낼 수 있듯, 경영시장에도 유연성이 있어 일 못하는 경영자를 쫒아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기업시장의 시장성도 없었다. 기업이라는 것은 그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변신을 필요로 한다. 만약 여러 계열사 중에서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기업이 있다면 빨리 팔아서 변신을 도모해야 한다. 신경 쓸 여력도 없으면서 가지고 있으면 부채만 늘게 되어 언젠가는 결국 모든 계열사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기업을 합치고 자르는 과정은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그 나라 경제까지 건강하게 만드는 작용을 하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이런 것에 익숙하지 못한다. 네 번째로 우리는 금융시장 시장성의 부재를 안고 있다. 돈이라는 것은 가만 나두면 이익이 많이 나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깨고, 여기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배급을 하려고 하였다. 실제로 지금까지 정부가 돈을 작위적으로 배급하다 보니 돈이 돈을 버는 곳으로 가지 못했고, 결국 금융대란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다섯 번째로 행정 기능의 시장성이 없었다. 행정기능 시장성 부재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규제가 시장성보다는 배급제를 도모하는데 더 많은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밖에도 우리에게는 사고의 유연성이 없다. 이것은 아마도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외침을 받아왔기 때문에 생긴 불가피한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외국의 것을 배격하는 등의 사고의 경직성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지양해야 한다.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의 도입
이와 같이, 우리 나라는 현시대의 글로벌 스탠다드인 '투명성과 시장성' 두가지 면에서 모두 낙제점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돈이 우리를 비껴 갈 수 밖에 없었고 IMF라는 재앙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가 배급제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민족성에 특별한 문제가 있기 때문일까? 아니 오히려 우리 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 못지 않게 우수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 한 민족이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그 민족이 가진 가치관에 달려 있다면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굉장히 우수한, 즉 잘 살 수 있는 가치관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우수한 가치관을 가진 우리 민족이 현재와 같은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아마 '우리가 거둔 성공의 희생자(Victims of our all success)'라는 말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급속도로 발전을 하다 보니 금융을 시장에 맡겨 놓을 여유가 없이 배급할 수밖에 없었고, 재벌들이 모든 힘을 동원하여 경제성장에 힘쓰는 댓가로 그들에게 경영권을 영원토록 보장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서 정부가 주도하다 보니 기업시장과 행정시장에 경직성이 생기게 된 것이다.
우리가 좀더 일찍, 세계 글로벌 스탠다드가 '성장과 개방'에서 '투명성과 시장성'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고 함께 바꿔 나갔다면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는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새로운 세기가 오기 전에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인 '투명성과 시장성'을 우리 사회의 각분야인 정치, 경제, 사회, 의료 모든 분야에 불러 일으켜야 할 것이다.

전수미 연구원(교육정보팀) smjun@ip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