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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영자독서모임으로의 초대30: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
발간일 첨부파일

저자:이보아 (추계예술대 교수)

‘루브르는 프랑스박물관인가’라는 책은 제가 박사학위로 쓴 논문을 판례를 제외하고 대중들이 문화재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문화재란 것은 무엇일까요?
KBS 진품명품에 나오는 것처럼 이것이 도대체 얼마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주로 하시는데, 왜 문화재란 것을 재화적인 가치로만 강조를 하는지, 우리가 문화재 이면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같이 강조를 하면 도굴범들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문화재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조물주에 의해 만들어진 이후의 정신적인 산물로, 문화재의 유형적인 모습 이면에 정신적인 부분의 총체적인 산물을 문화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재화적인 가치나 중요성을 부과를 하여 현대에 와서 문화재를 재평가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문화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박물관은 언제 처음으로 생겼을까요?
고대입니다. 고대의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이 문헌상 밝혀진 박물관의 효시라고 합니다. 박물관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제우스의 수많은 부인들 중에 가장 예술적인 재질을 가지고 있었던 므네모시네와의 사이에서 너무 아름답고 재주가 넘치는 복합문화예술인으로 탄생한 9명의 딸들이 아버지를 즐겁게 하기 위해 한 곳에 모여서 재미있게 아버지에게 효도를 한다는 마음에서 재롱을 피웠는데 그 장소가 바로 Museion입니다. Museion이라는 것은 Muse+ion하여 Museum 의 어원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 이후 중세에 들어 종교에 관련된 여러가지 물건들이 사원에 축적이 되고 귀족들이 해외에 갔다 오면서 챙긴 물품들을 사원에 보관을 하면서 중세의 박물관이 생겨납니다. 그러다가 르네상스 시절이 오면 처음으로 박물관을 목적으로 해서 박물관의 건축이 시작이 됩니다.

이 시기는 초상화들이 유행을 했던 시절로 왕실이나 귀족들이 예술가들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하면서 박물관이 발전하게 됩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몇년 전 한 집 한 그림 걸기를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시작하여 유행이 되었었는데요, 이러한 유행처럼 각 귀족마다 자신의 초상화나 정물화 등을 집안에 장식하고 만족감을 느끼는, 그들의 여가생활을 채워주는 하나의 수단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왕실이나 귀족들이 가지고 있던 이러한 예술작품들이 새롭게 출현한 시민, 대중에게도 전이가 되게 됩니다. 그러면서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이 등이 형성되게 됩니다. 결국은 절대군주제와 예술작품과 이것을 향유하려는 계층 삼자가 피라미드로 만나 역설적인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박물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돈을 가진 기업들이 미술관, 박물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려는 욕구가 커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많은 폐악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르네상스시대만 하더라도 문화재를 수집하려는 열망이 커지게 되면서 도굴도 하게 되고, 박물관 발전과 함께 문화재 약탈이 증가하면서 문화재 반환이 시작되게 됩니다.
문화재 반환이라는 본론으로 돌아와서, 1993년부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 등이 신문에 나면서 문화재 반환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화재 반환이라는 것은 박물관의 형성과 함께 나왔던 것은 아니며, 1960년도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해서 새롭게 시작한 신생독립국가나 피정복지였던 국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발견될 수 있는 사회문화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문화재 반환을 보고 문화전쟁, 제 3차 전쟁이라고 합니다. 인류학자인 Keith Nicklin(1979)는 이러한 문화재 약탈행위를 영어의 "rape"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감정, 정서적인 것에 호소하여 설명하였고, Kifle Jote(1994)는 한 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일련의 약탈행위는 단지 문화재의 물리적인 이동만이 아니라 문화재 이면의 역사나 정치적인 가치도 약탈하는 행위이고 영국이나 프랑스가 문화재 반화를 요청을 받으며 거절하는 이유는 문화제국주의의 잔재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역사인는 문화를 창조했지만 침략자는 문화재를 약탈을 해왔습니다. 서양의 문화재 반환에 대한 역사와 국제법 형성에 대해 잠시 살펴보면, 문화재 약탈의 루트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식민지 정복, 다른 하나는 전쟁 그리고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것은 문화재의 불법유출(도난, 도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언제부터 문화재가 약탈이 되었는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로마 (BC 4C)의 집정관 키케로가 공공성이 강한 사원문화재 등을 전쟁에서 약탈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구 열강은 오만과 편견에서 싹튼 민족문화우월주의를 주장을 하면서 어떤 나라를 정복하게 되면 하드웨어측면에서는 영토와 정치적인 권력을 손에 쥐게 되고,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교육, 정신적인 것, 문화재들을 조직적으로 해외로 유출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지배조직과 피지배조직이라는 계층분화가 생기는 상황에서는, 한 예로 당시에는 그리스가 정치적으로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 국민들의 원래 마음과는 상관없이 문화재가 유출되게 됩니다. 일단, 식민 상황에서 문화재가 유출이 되게 되면 가지고 간 나라의 문화재로 등록이 되게 됩니다. 문화재는 국제법보다 국내법이 우선되기 때문에 문화재를 국내법에서 폐기 처분해서 반환을 요청받기를 원하는 나라에 주기 이전에는 가져올 수 없게 됩니다.
고대의 알렉산더 대왕 시절에도 ‘승자에게 모든 전리품이’라는 구호가 유행할 만큼 그 병사들이나 군사들이 점령한 지역의 전리품이나 문화재를 가져오는 것은 적법한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중세가 지나고 르네상스 시절이 오면서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 싹트게 되면서 원산국으로 문화재를 돌려주는 현상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그 동안에 있던 유적지나 문화유산이 약탈을 당하고 도굴을 당하고 파괴가 되면서 민중에서부터 이러한 것들을 보호를 해야 한다는 개념이 싹트게 되었고, 사실 문화재라는 개념은 근대의 보호정책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대에 들어 여러 법학자들이 무언가의 법적조치를 제도적으로 마련하여 보호를 하여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폴레옹 시대에도 문화재 약탈을 불법으로 정하였음에도 많은 국가들이 약탈을 하였고, 그 이후에는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돌려주는 이런 악행이 답습되고 있습니다.
어이했든 문화재의 약탈이 진행되면서 박물관은 성장을 하게 됩니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해도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취지아래 제한된 인원만 한정된 전시관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문화재의 불법약탈이 피크를 이루게 되 때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입니다.
당시 나치, 히틀러는 미대지망생이었습니다. 미대를 두 번이나 낙방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 속에 자신이 권력을 가지면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박물관을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스트리아 린치에 세계 총통의 박물관을 세우려는 야욕을 가지게 됩니다. 히틀러에게는 ERR이라는 전리품 특수부대를 조직을 하여 단순히 군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베를린에 산재해있는 큐레이터 와 사학자들이 참여를 하게 됩니다. 나치의 이러한 무분별한 문화재 의 파괴행위는 히틀러(Adolf Hitler)와 헤르만 빌헬름 괴링(Hermann Wilheim Goering)에 의해서 고안되었으며, 로젠베르크(Alfred P. Rosenberg)는 이러한 문화파괴 및 탈취행위를 위해 알잔츠타(Elnsatzstab)라는 전리품 수집특수부대를 만들어 문화재의 약탈을 국가적으로 기구화하였습니다. ERR이라고 불리는 당시 박물관, 미술관, 개인소장의 많은 미술예술 작품 등을 한 곳에 모아두게 됩니다. 맨 처음 약탈시엔 수량이 적어 히틀러나 괴링의 별장에 보관을 하였는데, 갈수록 양이 늘어나니까 큐레이터들이 머리를 모아 소금갱도에다 보관을 하면 습도, 온도, 조명(광선)이 차단되고 자연적인 보존환경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일치하게 됩니다. 히틀러가 좋아하는 것은 히틀러의 성에다, 괴링이 좋아하는 것은 괴링의 별장에 보내고 그 이외의 것들은 갱도에다 보관을 하게 됩니다.

종전이 가까워 오면서 아이젠하워장군이 특별 훈령을 내리게 됩니다. 1. 독일에 들어가서 무언가 다른 것들이 숨겨져 있는 것을 찾아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2. 그리고 그것들을 너희 개인 소유로 하여서는 안된다. 3. 너희들이 폭격을 할때는 서부유럽국가의 유명한 성이나 건축물은 폭격의 대상에서 제외하여라. 라는 것이 3가지 특명이었습니다. 아까 히틀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MFA의 경우도 큐레이터, 미술사가들이 같이 참여를 하게 됩니다. 이들은 메르카스 소금 갱도를 찾게 되고 당시에는 예술작품 외에도 서부유럽에서 유통되는 현금, 금등이 함께 소장이 되어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거의 90%이상을 연합군이 회수하게 되며, 그들은그 방대한 양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술작품 외에도 개인 소장품등도 많이 있었는데, 죽은 자들의 금니들도 모아져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젠하워가 직접 소금갱도를 방문하여 점검을 하게 되고 미국의경우 이것을 운송을 해가려는 야욕이 있었으나 실제 그렇게는 하지 못했습니다. 
문화재를 돌려받으려는 국가와 돌려주지 않으려고 하는 국가들이나 한 가지 생각은 똑같습니다. 문화재는 원형그대로 잘 보전해서 후대에 잘 전수해 주어야 한다는 데에는 칭찬과 격려는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화재 반환이 자신의 일이 되면 인색해지게 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문화재를 받으려는 나라를 ART rich nation이라고 합니다. 문화유산이 풍부한 국가입니다. 사실 원래 그렇게 풍부한 것은 아닌데 많이 빼앗겼기 때문에 학자들이 풍부하다고 지칭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우리나라, 멕시코 등으로 한 번쯤은 전쟁에 휘말렸거나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들입니다. 반면에 ART poor nation이라는 국가도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예술작품이 빈곤한 국가라고 하는데, 실제적으로 부족한 것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난 부족해’라고 생각을 하고 자신의 문화 곳간을 빼곡히 채우는 국가로 영국, 프랑스, 독일의 국가입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많이 가지고 오기도 했으면서 많이 빼앗긴 국가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어느 나라에 속할까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문화는 역사가 짧고 인디언 문화가 시초문화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재를 받으려는 국가는 문화 민족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고,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국가는 문화 국제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를 단적으로 표현해서 대영박물관에 있는 엘긴 마블스를 들 수 있습니다. 현재 영국에 있고 그리스가 원산지인 이 것을 그리스가 돌려달라는 데에 대한 영국측의 주장은 그리스는 스모그도 심하고 전쟁으로고 박살이 났는데, 우리가 아니었으면 보존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구제론입니다. 대부분의 신생독립국가나 제3국가의 경우 문화재를 보존할만한 과학적인 보존 시설을 확충하고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설령 확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제표준기준에는 미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 민족주의적 시각에서는 여태까지 보존을 해준 것에는 고마우나, 하지만 이제는 경제문화적으로 수준이 발전했고, 박물관 미술관 수준도 높아졌으므로 우리도 잘 보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엘긴 마블스라는 것은 처음에는 파르페논 마블스라고 불리웠습니다. 그러다가 터키주재 대사인 엘긴 경이 자신의 정원을 장식하기 위해서 파르페논 신전의 주조들을 똑같이 만들어서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모습과 차이가 나자 터키의 공관에게 돈을 주면서 아예 띄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엘긴 경이 말년에 20년 정도 어린 부인을 얻게 되었는데, 어느 날 이 부인이 다른 남자와 집의 재산을 다 가지고 도망을 가게 됩니다. 그 이후 생계를 위해 엘긴 경이 그리스 조각품인 엘긴 마블스를 대영박물관에 팔게 되고 그 과정에서 구입 경위를 대영박물관에 이야기를 하게 되어, 처음엔 구입 경로가 부당하여 구입을 꺼려했으나 마지막엔 예술품에 매료되어 구입을 하게 됩니다. 미술관은 불법적인 예술품은 수집해선 안 된다는 것이 윤리 강령이며, 대영박물관에서는 소유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발표한 것과는 반대로 엘긴 마블스를 구입하게 됩니다.

그리스가 엘긴 마블스에 대해 대영박물관에 반환을 요청하자 윈스턴 처질은 전쟁 후 돌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 후 윈스턴 처질은 마음이 바뀌어 반환을 철회합니다. 그리스의 멜르니 메르끄리가 영화배우 출신으로 문화부 장관으로 역임을 하여 본격적으로 엘긴 마블스 반환을 추진합니다. 토니 블레어도 선거 당시에는 엘긴 마블스를 돌려준다고 하였으나 총리가 된 후에는 반환을 거부합니다. 엘긴 마블스는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리스의 경우 대영박물관이 구제론을 근거로 반대한 것을 대비하여 메르꾸리의 남편 줄 라쎙을 주측으로 문화재 반환을 위한 메르꾸리 재단을 만들어 어린이의 십원에서 기업의 기부금까지 수많은 돈이 모이게 됩니다. 내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개관을 하게 됩니다. 이 곳에 엘긴 마블스가 놓일 장소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전부다 유리로 처리하여 엘긴 마블스의 빈자리가 다 보이게 됩니다. 국제올림픽 때 올 외신기자들을 통해 엘긴 마블스 반환을 추진하여 대영박물관이 안주면 안되게끔 마련한 책략인 것입니다. 한편 대영박물관의 경우 일반상설전시의 경우 입장료가 없고, 기획전시나 특별전의 경우만 고가의 입장료를 지불하는데 이 박물관이 무료로 운영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대영박물관 Friends라는 후원회의 덕이 큽니다. 사실 대영박물관이 전세계 3대 박물관에 속하나 적자가 1년에 100억달러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에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영국에서 소유권의 이전을 못하겠으면 일단 돌려주어 아테네에서 올림픽시 개최를 하게 해주면 이와 유사한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히트를 칠 수 있는 좋은 유물들을 빌려주어 대영박물관의 적자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하여 현재 새로 부임한 대영박물관 관장이 고민 중에 있다고 합니다.
엘긴 마블스의 반환 운동은 두 정부가 굉장히 대립된 상태였는데 1998년 가을쯤 하나의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윌리엄 세인트라는 저술가가 하나의 양심선언을 하게 됩니다. 전시실에 돈을 대었던 듀빈 경이 문화적인 소양이 낮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엘긴 마블스의 때를 지우기 위해 락스 성분의 화학 약품을 붓고 쇠수세미로 밀어 보니 방금 만든 것처럼 너무 하얗게 되어 구두 약으로 왁스를 다시 칠하여 현재의 보존 상태가 미비한 엘긴 마블스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국 정부와 대영박물관은 이것을 사후처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다가 타임지 및 여러 잡지에 파르테논 신전이 붕괴 위험이 있다고 글을 실으라는 압력을 넣어 엘긴 마블스를 반환하기에는 파르테논 신전의 붕괴 위험 수위가 높다는 맞불작전을 폈다고 합니다. 

반환 요청을 하는 국가들은 그 때 너희가 가져 간 것은 불법이다라는 것을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현소유권에 대한 정당성과 적법성은 굉장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적법적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을 지 무엇은 불법이고 무엇은 불법이 아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의 호레스 알렌의 경우 그 당시 문화재 보호법이 없었으며 고종이 하사를 한 것이므로 반환을 받으려고 한 경우에는 기증을 요청을 해야지 반환을 요청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두 번째의 경우, 한미주둔협정의 보호막을 피해서 나간 것이므로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가 없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면책 특권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의 경우, 헨더슨의 경우 할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호법은 1962년도에 만들어졌는데, 1960년에 절반을 가지고 나왔고 1963년 이후에 남은 반을 가지고 나왔다고 했으므로 1962년 이전에 나간 것은 반환을 요청을 할 수가 없지만 1962년 이후에 나간 것은 반환을 요청을 하면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이것들은 하버드 대학이랑 보스턴 박물관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분산되어 있어 박물관 대 박물관으로 협력을 해서 문화교류 차원에서 요청을 한다면 받을 가능성이 있는 물품들입니다. 문화재가 법적으로 어떻게 유효하게 다른 나라로 넘어갔는지 불법적으로 넘어갔는지가 가장 큰 관건인데, 이런 경우 불법적으로 유출되었다는 증빙서류가 마련이 되어야 하는데 이런 문서작업들이 잘 준비되어 있지 않아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매우 열악한 상황입니다. 문화재의 도난, 유출 등은 마약밀수 다음으로 인터폴에서도 두번째로 랭킹되어 있는 국제사범입니다. 예술품 도난센타에서도 매달 2000여건이 발생할 정도로 빈도수가 높고 이런 이유는 마피아들이 돈세탁의 방법으로 사용하면서 점차적으로 경매에서 가격이 폭등이 하게 합니다. 가격이 폭등될수록 불법 유출이나 도난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잦아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짚을 내용은 학술적 접근의 용이성과 학술적 미학적 완성성입니다.
우리나라에서 600만 관람객이 볼 수 있고 우리가 최고의 큐레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연구하는 것이 당연하고 한편으로는 문화재라는 것은 인류공동의 유산이므로 누구나 보호하고 연구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문화 국제주의적인 접근입니다. 반면에 머리는 대형박물관에 가슴은 그리스 아테네에 따로 떨어져 있으면 미학적인 완결성을 볼수가 없고 학술적인 연구에도 걸림돌이 되므로 원상 복귀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 문화 민족주의적인 견해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례를 잠깐만 설명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자선당의 경우 경복궁에 있던 누각들을 16-27원에 일본 귀족들에게 판매를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사람들이 솔선수범하여 참여를 하여 당시의 오끄라라고 하는 사람이 자선당을 뜯어가서 자신의 집을 장식을 하였다가 나중에 조선관이라는 현판을 붙이고  미술관을 하다가 결국엔 관동 지진에 의해 소해가 됩니다. 사실은 삼성문화재단이 중요한 역할을 하여 돌아오기는 돌아왔는데 몇 톤에 불과한 까맣게 탄 주축돌 몇 개만 돌아와서 강영전과 함께 경복궁 복원 사업에서 복원되고 있습니다.

끝으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이 문화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문화재나 예술품도 시장의 경제논리에 따라 유통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목소리가 큽니다. 반면 신생독립국가들은 이것은 우리국민에게 있어 문명의 산실이면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하여 반환을 추진합니다.
그렇다고 문화민족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 자국의 모든 문화재를 돌려받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적절한 판단기준도 있는데, 한 예로 아이슬랜드에서 고서본을 돌려받았는데 그 때에도 과연 누가 이 필사본을 썼는지의 즉, 자연인 기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외규장각의 경우 등가교환한 것으로 귀결이 나서 더 이상 손써볼 여지가 없어 아쉬움이 남지만, 사실은 득보다는 실이 많았던 협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첫번째 문화재 반환 협상으로 전세계에 알려졌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선례가 된다면 등록된 것만 해외에 7,500여점이 있는데, 해외 우라나라의 문화재가 얼마나 있고, 이들의 불법유출경위가 어떻게 되며, 원소유주가 누구인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된 다음에 문화재에 대한 반환 선례를 연구를 한 다음에나 우리가 문화재의 반환에 대해 지식을 가지고 협상태도를 가지고 있는데, 그냥 받고 보자, 물리적으로 위치만 옮겨보자고 생각한 것이 정부의 실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환은 물리적 위치와 함께 소유권이 함께 넘어와야 반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여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경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 우리도 이렇게 중요한 문화재를 반환받아 유지를 하려면 그만큼 박물관과 미술관의 무화적 성숙을 하고 정부의 지원과 함께 좋은 보존 환경도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얼마만큼 산재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어떤 것들이 어디에 산재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해외 유출 현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문화를 통해 잠재적인 고개을 확충할 시대입니다. 여러분이 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박물관을 마케팅 툴로 활용을 하여 잠재적인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펴서 모든 대중들이 지식과 부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예정 연구원 yjlee@ip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