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esting,
Pioneering and Satisfying

 뉴스레터

제목 [2012년 3호]경영자독서모임: 여자를 위한 인생 10강
발간일 2012-10-17 첨부파일 MBS 이미지.jpg

[경영자독서모임]

여자를 위한 인생 10

 

신달자 시인

 

 

이 원고는 2012730일 신달자 시인의 MBS 강의를 바탕으로 산업정책연구원(IPS)에서 작성하였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강연이 경영자들의 독서모임이라고만 듣고 왔습니다. 여기 와서야 어떤 모임인지에 대해 자세히 들었습니다. 들으면서 속으로 아 우리나라가 그렇게 많이 삐걱거리고 부딪치고 때로는 금이 가고 하는 와중에 대한민국이 그래도 뭔가 바로 가는 것은 이런 모임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평생교육원과 같은 기관이 많이 있는데, 저도 밤에 그런 곳에 가서 강의하곤 합니다. 얼마든지 재미있는 일들이 있을 수 있는 시간에 별로 깨끗하지도 않은 대학의 교실에 앉아 강의를 듣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래도 이런 힘 때문에 대한민국이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오늘 꼭 그와 같은 심정입니다. 거기다 강의만 듣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직접 책을 읽고 저자의 강의도 듣는 모임이라니 저로서도 상당히 감격적입니다.

 

한때는 각 분야에서 전문성이라는 것을 굉장히 요구받았습니다. “의사인지, 변호인지, 시인이냐?” 이런 전문성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기업이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기업의 원리 하나로는 절대로 사람을 다스리지도 못하고 기업 자체도 운영하기가 어려운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윤리를 따르며 오직 순수하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습이 필요한 시대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마 일찍이 그것을 인식하고 이런 경영자독서모임을 만드셨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강의 전에 이 모임의 첫 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결석이 없으신 분이 몇 분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분은 우리 대한민국의 가보 같은 분이라고 제가 농담도 했습니다만 농담이 아니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책을 읽는 일에 한 번도 결석이 없었다는 것은 아마 그분의 이력에서 가장 눈부신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분들뿐만 아니라 이렇게 참여하시는 여러분도 상당히 눈부신 역할을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는 오늘 여기, 이 모임에 대한 성격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여기저기서 부르면 가서 몇 마디 하는 강사 입장에서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르고 갈 때도 있습니다. 여기도 경영자들이 독서 하는가 보다 또 여성 10강을 택했으니 여성들이 굉장히 많이 앉아있겠지 이렇게만 생각하고 왔다가 여러분을 이렇게 마주하니 강의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합니다이 말을 하고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 책에 대한 것은 차차 말씀 드리도록 하겠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가 문자에 이미 굉장히 친근해졌다는 것이고 그것은 상당히 중독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하고 읽는 것을 싫어했고 대학에 들어가서야 문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문학이 읽는 것을 제외하곤 존재할 수 없다고 가르친 분들도 계셨기에 그때부터 세계문학 전집 등을 몇 번씩 읽으며 지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야 석, 박사 공부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내가 운전하는 시간이 아니면 어디를 가도 하물며 화장실에 가더라도 무엇인가를 읽지 않고 있으면 이상하게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그것이 아마 중독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도 몇십 년 독서를 하셨다면 이제 책을 보면 아 저거 나 알아, 저거 그거 아냐?” 이런 식으로 아주 친근해져 있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금은보화가 많지만 이런 문자와의 중독, 또 여러분이 책을 숙제가 아니라 정말 좋고 즐거워서 읽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자녀에게 있어 그보다 더 귀중하고 큰 교육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생에 살아가면서 좋은 일만 있지는 않습니다. 여기도 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이 있으시다 들었는데, 많은 난고가 있었을 것이고 넘어설 언덕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태산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힘은 바로 여러분의 독서에서 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넘겨짚는 것이 아니라 그런 힘이 반드시 여러분 안에 내재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40대 때 여성지의 부탁을 받고 한 대기업 창립자를 인터뷰했습니다. 여성지에서 질문지도 작성해 주었기 때문에 그 질문들을 마친 후 제가 여담으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회장님은 출근해서 사인을 합니다. 그런데 이 사인은 당신 회사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나라 경제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런 결정을 어떻게 내리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여성지에서 준 질문을 했을 때보다 그 분의 얼굴이 더 상기되면서 내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다고 하십니다. “정말 내 사인은 중요합니다. 우리 회사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결정을 내릴 때 내 나름으로도 이것 때문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세계문학 전집이라던가 한국문학전집 등을 읽었던 것이 저에게 내재되어있고 스며들어 있어서, 사인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가장 감동받았던 글은 몸에 저장됩니다. 뇌에 저장되고, 그 저장된 것이 행동화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그때 그분께 그 이야기를 듣고는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 중에 이런 분도 있다고 생각하니 놀라웠고 상당히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 것들이 당장 우리한테 오지 않더라도 여러분이 읽었던 책의 감동이라던가 관여하고 싶은 모든 내용은 결국 여러분들의 몸과 뇌에 저장되어서 여러분이 하는 말, 행동, 아이들한테 하는 말에 녹아 들어있을 것이고, 또 직장에서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거기에도 녹아 들어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흑백논리에 갇혀 어떤 하나를 선택할 때도 지금까지 읽은 글에 그 원동력이 스며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거기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듯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몸과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이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950년도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저희 집에는 제 밑에 갓난아기가 있었고 저는 여덟 살이었습니다. 제가 일곱 살에 학교를 들어갔으니까 그때 초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요즘에야 여덟살 아이가 별로 어리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그때는 상당히 어린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피난길에 제 아버지께서 안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제 밑의 동생을 업고 산길을 가고 있었고 어린 저도 누가 업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덟 살짜리가 키도 작았습니다. 어린아이였으니 엄마에게 나도 업어달라고 했겠죠. 그때 우리 어머니가 한 말을 기억합니다. 막 욕설을 퍼부으면서 저더러 네 아비한테나 가서 업혀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럼 아버지는 어디 갔노?”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바다인가 지랄인가 보고 싶어서 아직 안 돌아왔다하십니다. 저는 아버지가 언제 떠났는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저희 아버지는 등단하지 못한 시인입니다. 아이는 주르륵 낳아놓고는 책임질 줄도 모르고 대구에 번쩍 서울에 번쩍 떠돌이처럼 사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다시 2학년으로 복학할 때 즈음 아버지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경남 산골까지 서울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초췌하고 너무도 형편없는 모습으로 돌아오셔서는 식구들을 전부 앉혀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정말 중요한 전장에서 없어서 너희한테 정말 미안했다. 지금부터 내가 돈을 벌겠다그러자 우리 어머니는 저쪽 옆에서 흥흥거리고 있고 자식들도 누구 하나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실제로 그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굉장히 상술이 좋은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15살에 결혼을 하셨는데 21살 때부터 진주시장에서 훗날 지금의 대기업 창립자가 된 분과 같이 포목장사를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너무 물건을 잘 팔아서 그 창립자가 너는 절대로 내 옆을 떠나지 마라. 내가 지금 큰 꿈을 가지고 있는데 너는 날 절대로 떠나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 20살의 아버지는 장사만 끝나면 진주 기생집에 가 있었습니다. 한편 이 창립자는 그때부터 치약을 구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그분 집에 가면 마당, 마루, 화장실에도 흰 밀가루 같은 것이 그렇게 많이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한테 큰 꿈이 있으니까 너는 절대로 내 곁을 떠나지 마라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한테 여러 번 전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돈을 모은 후 제일 첫 번째로 제재소를 열었습니다. 그 당시는 전쟁 후 집이 다 무너졌으니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제재소를 하였기에 어릴 때 저는 톱밥으로 소꿉장난을 했습니다. 늘 나무 패는 소리가 나는 그런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재소로는 그렇게 크게 돈을 번 것 같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두 번째로 한 사업은 정미소였는데, 많은 사람이 굶고 있었기에 필요한 것이 쌀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정미소로 상당히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큰 창고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언제나 정부미가 가득했습니다. 아버지는 첫 번째, 집을 짓는 일을 하여 살 곳을 만들었고, 두 번째, 먹는 것을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아무리 집이 있고 먹어도 감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술을 먹게 될 것이라고 여긴 아버지께서 만든 세 번째 사업이 도가였습니다. 아버지는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했지만, 이 세 가지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밑에는 남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동생은 정치에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생이 내 돈을 많이 쓸 것이다 생각한 아버지는 그 돈을 동생한테 보이지 않으려 집에 현금으로 보관하였습니다. 한편 저의 작은아버지가 60년대 국회의원을 한 번 했습니다. 그 후 세 번인가 네 번이 떨어지고 또 출마하려고 하니까 아버지는 돈을 전부 가마니로 넣어서 땅속에 묻었는데, 저녁에 시작해서 아침에 동이 터도 그 돈을 다 묻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돈이 많이 생기니까 같이 느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여자였습니다. 저는 배다른 형제가 20명 됩니다. 굉장히 약소하죠? 저는 초등학교 후반부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집에 왜 돈이 없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대학 졸업할 때 아버지 사업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는데 저는 고향에 없었기 때문에 그 이유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판단을 합니다. 아버지는 순전히 좋은 장사꾼 기질 덕에 사업을 잘 할 수 있었지만 결국은 아버지 스스로 감정을 지탱할 힘이 없었습니다. 생활 자체가 너무 산만해진 것입니다. 그 때문에 결국은 아버지의 사업도 무너지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봅니다. 저희 아버지는 본인 스스로 지탱할 수 없는 곳까지 자기를 올려놓고 결국 자기 스스로 밑돌을 뺐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와르르 무너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밑돌은 우리한테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인생과 가족의 밑돌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독서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의 책을 미치광이처럼 읽는 사람을 하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정신적으로 굉장히 탄탄합니다. 지나친 욕심도 안 부립니다. 왜냐하면, 책을 다 읽으면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헛된 꿈을 꾸지 않을 수 있는, 결국은 우리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을 알면서 그때까지 내 인생을 전진하면서 개선하는 방법이 아마 책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책 한군데에 있는 것은 아니고 전체를 읽다 보면 그런 것이 우리 인생에 밑돌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일기장을 훔쳐본 적이 있었습니다. 더 는 기다릴 것도, 가질 것도, 꿈꿀 것도 아무것도 없는 모두를 가진 그런 남자, 완벽한 남자로 느껴졌던 아버지의 일기를 보고는 어릴 때이지만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기장에는 첫 줄부터 오늘도 외로웠다로 시작해서 울었다이런 것들이 쓰여 있습니다. 지금 기억하는 구절 중의 하나는 왜 사람에게는 날개가 없을까? 날개가 있다면 멀리멀리 날아가고 싶다입니다. 자기의 상술로서는 엄청난 돈을 벌었는데 그걸 지탱할 수 있는 감정적인 밑돌, 자기 자신을 좌우할 수 있는 밑돌이 빠졌던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기의 어떤 소질을 키우는 데 노력하고, 자기 인생의 감정적인 것을 고르게 펼 수 있는 의지를 길렀더라면, 자기를 관찰할 수 있는 눈을 길렀더라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라는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늘 안 되겠다, 못살겠다하며 그 나이에서는 쓸모 없는 감정적인 것에 너무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진 많은 것들을 감당하지 못했고, 사람도 거느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돈이 없어지면서 아버지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결국 그 상황을 견디지 못했고 우울증에 빠진 채 살았습니다. 저는 인생이 어떻게 하면 무너지는가에 대한 교본으로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딸로서 아버지가 마지막 돌아가시는 비참한 모습도 봤기 때문에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저는 그의 일곱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여성에 대해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일곱째 딸로 태어났고 여자 중학교에 다니고, 여고에 다니고, 여자대학을 다니고, 결혼해서 딸만 셋을 낳았기 때문에 여자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 여자입니다. 그렇게 고생은 안 했지만 결혼하기 전에는 그야말로 여름에 날파리가 하나 지나가도 잡아줄 사람이 옆에 주르륵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는 집안에 쥐가 한 마리 들어오면 내가 잡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순간이 왔습니다. 그것이 제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운명은 바뀌는 것이죠. 그런데 그때는 운명이란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변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고 거기에 제 실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닮은 감정이 저에게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유산입니다. 정말 별로 반갑지 않은 그런 것이 저한테도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살면서 어머니가 겪은 여러 가지 이야기는 소설로 써도 20권은 쓸 것입니다. 어머니가 살았으면 아마 지금 107, 108세 정도 되었겠습니다만, 어머니는 15살에 아버지와 결혼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아야 하는 장손한테 시집을 와서 딸을 일곱 명 낳으면서 여러 가지 치욕을 겪었고, 이때 어머니는 또 다른 여성으로 거듭났습니다. 때로 행복한 것은 어떤 것을 중지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행은 때때로 인간을 굉장히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 지상에 전쟁이 없었더라면 이 세계는 발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그렇습니다. 어려운 일을 극복해내는 힘이 있을 때 그 힘을 어디까지 끌고 가느냐에 따라서 그 인간은 굉장히 달라집니다. 우리가 대게 그런 표현을 할 때 온실에서 자란 화초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비단 온실이 아니라도 별로 비바람 안타고 온순하게 자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별로 감동이 없습니다. 그런데 굴곡이 많고 극복해낸 사람들, 손 매듭이 굵고 얼굴은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감정 자체가 굵고 매듭이 있는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서 그래도 할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인생의 굴곡을 굳이 사서 할 필요가 없으니까 인생에 굴곡이 많지 않다면 그때 바로 책이 대신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읽는 사람은 세상을 전부 섭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책을 통해 여러 가지 인생을 살아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모릅니다. 책이 만약에 없었다면 우리는 굉장히 좁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대학을 여러 군데를 다닐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만큼 저는 이렇게 책을 읽는 경영인들, 이 모임에 굉장히 혹했습니다.

 

다시 저희 어머니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저희 아버지의 정치하는 동생은 인물도 참 잘생겼습니다. 제가 70년을 살고도 작은아버지 같은 얼굴을 본 적이 없을 만큼 잘 생겼습니다. 그분이 그때 당시 기차를 타고 가는데 한번은 한국에서 이름만 말하면 다들 잘 아는 미인이 작은아버지한테 반해 부산까지 따라갔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1961년에 제가 대학을 다닐 당시 그 작은아버지가 국회의원이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무궁화가 그려져 있는 국회의원 지프차로 제가 다니던 대학 앞에 저를 내려주고 가면 아이들이 저를 완전 공주 대접 했습니다. 그랬던 그 작은아버지의 부인, 저의 숙모님은 경북여고를 졸업했습니다. 얼굴도 굉장히 잘생겼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어땠겠습니까? 우리 어머니는 무식해서 기역도 모르는데 숙모는 경북여고를 졸업한 근사한 모습이었습니다. 숙모의 경대 옆에는 경북여고 교복인 세라복 입은 사진이 붙어 있었습니다. 완전히 기를 죽이는 겁니다. 우리 어머니가 우리 숙모한테 치명적으로 당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슬하에 딸 일곱 명에 아들이 하나였는데 숙모는 아들 일곱 명에 딸이 하나였습니다. 그러니까 숙모는 시어른들의 모든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무식했고 남편은 바람잡이에 어디 마음을 둘 데가 없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제사도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집안의 완전 종, 노예였습니다. 투정 한번 못 부리고 모든 일을 한 것입니다. 제사상을 딱 차려놓으면 숙모가 분홍 치마를 예쁘게 입고 부엌에 와서 나물을 집어먹으며  형님 이거 너무 짜다이럽니다. 시어머니보다 더 얄밉습니다. 여자분들께서는 아마 그게 어떤 심정인지 아실 겁니다. 딸 일곱 명에서 제일 미인은 셋째 딸입니다. 원래 미인을 보면 성질이 좀 더럽습니다. 그랬던 저희 셋째 언니가 그 숙모한테 대들었습니다. “엄마가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데 어떻게 숙모는 와서 이렇게 하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숙모한테 대든다는 일은 우리 집안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집안이 난리가 나서 아버지는 딸의 뺨을 때리는 것으로 어느 정도 수습을 했고 그날 밤 어머니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날 새벽녘에 어머니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 인생의 개선 법을 생각한 것입니다. 아무리 무식한 여자였지만 자꾸 이렇게 당하니까 이건 아니다, 뭔가 나도 새로운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일이 바로 셋째 딸이 중학교 3학년을 졸업할 때였습니다. 1955년 전쟁 끝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입니다. 굶는 사람 많았고 나무껍질 벗겨 먹고 흙을 집어 먹는 아이들이 있을 이 시절에 어머니는 돈을 모아서 그 셋째 딸을 마산여고에 보냈습니다. 그 시절 고등학교 때부터 유학을 보낸다는 것은 우리 고향에서는 전례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넷째 딸을 마산여고에 보냈습니다. 딸들을 근사하게 길러보겠다고 작심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엄마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셋째 딸은 너무 미인이어서 그 당시 방학 때 언니가 집에 올 때면 딸을 달라고 대문 앞에 남자가 서너 명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습니다. 그 셋째 언니는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일단 숙모를 눌러야 했습니다. 이제 고등학교 졸업 가지고는 안되고 대학도 졸업하고 그 시절 어디서 들었는지 박사도 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잘하는 넷째 딸을 서울대 음대에 보내기로 합니다. 그래서 담임하고도 다 이야기를 끝냈고, 그해 가을에 학교 축제가 있었습니다. 노래를 잘하니까 넷째는 무대에 서게 됩니다. 그때 심사위원이 바로 현인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젊은 현인이었겠죠? 그 언니가 그때 산장의 여인이라는 옛날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무도 나를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이렇게 나가는 50년도 노래입니다. 기억나세요? 그 언니는 소름이 쫙쫙 끼치는 그런 음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인 씨가 반해서 서울로 가지 않고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가수를 시키겠다고 하니 우리 아버지가 안 된다고 반대했고, 그 소식을 작은아버지가 듣고 자기는 정치에 꿈이 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조카가 만약에 가수가 되면 집안 망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작은아버지가 직접 현인을 쫓아서 서울로 보냈습니다. 넷째 언니도 가수 시키겠다고 현인이 집에 찾아오고 그러니까 바람이 났습니다. 바로 연애해서 결혼했습니다. 성적 다 내놓고 서울대 음대도 못 갔습니다. 넷째 딸은 꼭 성악가를 시켜야 했다고 어머니가 그 부분을 가장 아쉬워했습니다. 우리 어머니, 그 무식한 여자가 성악가가 뭔지 알고 그걸 시키려고 했는지 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이제 다음 제 차례입니다.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자를 위한 인생 10을 쓸 때 지금 여성들과 어머니가 살았던 그 시대의 여성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주제로 쓰려고 했었습니다. 책을 쓰기 전에 제 초등학교 후배이자 대학병원 원장인 아는 동생에게 담당 교수에게 인간의 수명에 대해서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에게 두 달 만에 메일이 왔습니다. 기사에는 간단하게 여자가 남자보다 더 오래 산다고 나오지만, 저에게 온 데이터를 보니 현재 30세까지는 110세로, 10대와 어린 아이들은 130세 까지도 평균 기대 수명이 가능하다고 되어있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수명이 굉장히 길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50, 60, 70세 역시 인생이 곧 끝나는 게 아니기에 모두에게 새로운 인생을 위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할 일이 별로 없을 때에는 10년도 굉장히 깁니다. 여성을 위한 인생 10강이지만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내가 제대로 못살고 있으면 남편도 괴로운 것이고, 여자가 뭔가 계획된 인생을 잘 살면 남자도 함께 그렇게 사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에 여자를 위한 10강이지만 여자에게만 국한되는 책은 아닙니다. 요즘 여자들 팔자 좋을 때 태어나지 않았냐는 말을 많이 합니다. 유독 학교에서는 더 합니다. 그렇다면 여성이 정말 좋은 시대에 태어났는가? 큰소리 마음대로 칠 수 있고 집에서는 남자에게 마음대로 자기 요구를 하며 남자는 약해지고 여자가 강해진 이런 시대에 사는 여성들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쓰기 전에 20 70대를 제외하고 30~60대를 만났습니다. 결혼한 사람, 안 한 사람, 이혼한 사람 그리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 전업주부, 서울하고는 좀 다를까 해서 지방까지 가서도 만났습니다. 만나면 처음에는 먼저 점심을 같이 합니다. 세 번 만난 팀도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니까 이야기가 잘 안 나옵니다. 그래서 이제 두 번째 방법으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도 뚝뚝 끊어집니다. 이를테면 내가 이 말을 해도 되나?” 술을 먹어도 상대방을 못 믿는 것입니다. 부부도 그렇고, 자녀를 기를 때도 그렇고 제자들 등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싶으면 일단 상대방에게 무엇을 묻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나를 털어놓아야 합니다. 지금 나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어느 시기에 가면 서로 말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그걸 자꾸 꼬집고 물면서 질문이 많으면 안됩니다. 아이를 키울 때에도 그렇습니다. 질문이 많으면 안 됩니다. 그 아이가 바로 말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엄마들의 가장 잘못된 점이 초등학생 아이 손을 잡고 담임 선생님한테 가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을 만나면 아이는 속으로 아 이제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하고 말해야지하는 순간 안녕하셨냐고 물어봐야지하고 엄마가 먼저 말합니다. 헤어질 때도 아이가 안녕히 계시라고 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안녕히 계시라고 해야지그러면 아이는 계속 엄마에 의존해서 자기의 개인적인 의사를 죽이게 됩니다. 그런 논법은 부부간에도 그렇고 자녀를 키울 때도, 밖에 나가서도 회사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사람들은 대게 성질이 급해서 자꾸만 자기가 먼저 말합니다. 욕망이 아이를 그르치게 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사실은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모두 문제가 있는 대화법입니다. 그래서 여성들에게 저부터 털어 놨습니다. 20대는 이렇게 살았고, 30대는 이렇고, 40대와 우리 남편은 이렇다 하고요. 대게 이렇게 열이 오르면 여성들이 이제 남편을 그 인간이라고 표현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여자들 모두 결국 남편을 감싸안습니다. 그 심리가 참 묘합니다. 그러면 제가 자꾸 남편을 욕해봅니다. “아유 그 남자 안 되겠네, 그 남자하고 어떻게 살았어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아내들이 못 참습니다. ‘그렇지만은 않아요라며 남편을 감싸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로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사회가 알고 있는 것만큼 여자들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고, 여자들은 자기 소망을 다 이루는 것 같이 보이고, 집에서 남편에게 큰소리치고, 자녀는 자기 마음대로 막 키우는 것 같고, 여성 대통령까지 나온다고 요즘 여자들이 되게 좋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실질적으로 여자들에게 물어보면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제가 놀랍게 생각한 것은 40대 부부인데도 섹스도 없는 부부들이 많았습니다. 보기에는 굉장히 그럴듯하고 잘 사는데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너무 많이 참고 사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무언가를 알면 아내에게 할 대화가 많습니다. 대화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독서모임을 통해 이번에 읽은 책은 이런 거야라는 대화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왜 부부 사이가 안 좋은가 생각해보면 꼭 집안 이야기만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부부가 모이면 이런 제 3의 이야기도 필요합니다. 집안 이야기는 꼭 필요한 것이지만 매일 하는 것은 조금 아니지 않습니까? 3의 이야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화도 조금 가라앉히게 되고, 남의 사정도 알게 되고, 나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남을 배려하라고 책 안에 쓰여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소설을 보거나, 에세이를 보거나, 시를 보거나 경제학책을 보면 모든 책의 지식의 원리라는 것은 인간을 키워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 삶의 철학이 녹아있는 것입니다. 재미만 있다고 해서 책을 읽는 것은 아니고 그 이유 때문에 책을 읽는 것입니다. 재미로만 온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책모임이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여성들을 만나면서 열 가지로 책을 한번 써봐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여성들을 만나보니 여성들에게 가장 부족한 점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믿음이 없으니 남을 따라가게 됩니다. 가령 어디 여성들의 모임에 만약 신달자가 강의한다고 하면, 그 소식을 듣고 어떤 A라는 여성이 아침에 친구 세 명에게 전화를 합니다. “강의한다는데 너 갈 거야 안 갈 거야?”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고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당일이 되었는데 한 친구한테서 전화가 온 겁니다. “나 갑자기 시어머니가 와서 못 가그러면 가려고 했던 이 여자도 아주 손쉽게 포기를 합니다. 혼자는 안 가는 것입니다. 셋이 가려고 했는데 둘이 못 간다니까 그냥 포기하는 것입니다. 집단의식이 굉장히 강합니다. 혼자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깨뜨리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혼자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번 해보라고 말입니다. 남성분들도 마찬가지지만 50살까지는 여성들이 참 바쁘게 살았습니다. 50살까지는 학교 다녀야 하죠, 결혼했죠, 애 낳아야 해, 살림 장만해, 집 장만해, 시댁 왔다갔다해, 그러고 50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앞으로 50년은 자기가 혼자 해결하고 혼자 입고 하는 날이 시간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럼 그 혼자의 50년을 당신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이 책이 그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택배나 퀵서비스 등 물건을 배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한테는 그런 배달이 많이 오는데 어느 날 벨이 울려서 나갔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보기에 한 70세 정도 되신 깔끔한 할아버지였습니다. 모습이 아주 깨끗합니다. 그런데 종이가방을 하나 들고 아무개냐 묻길래 받았습니다. 그분이 저를 알아보더라고요. 시 쓰는 분이냐고 해서 그렇다고 대답하고, 선생님은 어떻게 이걸 여기까지 가져 오셨냐고 힘드시지 않느냐 물었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중학교 교장을 지냈다고 합니다. 교장을 하고 집에서 쉬는 데 가만히 있으니까 일부러 운동할 시간을 내기도 힘들고 해서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돈도 벌고 지하철은 전부 공짜니 걸어 다니며 운동도 하고 배달을 하기 위해서는 집도 찾으니 머리도 쓰고 해서 아주 여러 가지로 좋다고 합니다. 한 달에 버는 돈은 십 만 원이 될 때도 있고 7만 원이 될 때도 있고 그렇다는 겁니다. 미국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하향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놀랍니다. 직업 하향의식은 굉장히 졸렬한 데가 있습니다. ‘내가 옛날에 과장을 했는데 그딴 걸 해?’라면서 말입니다. 그러면 가만히 있으면 그것이 유지될까요?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럼 내가 과장을 했고 총장을 했고 뭘 했는데 그럼 집에서 놀면 그것이 연장됩니까?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분은 자신이 이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며느리도 내가 가끔 나오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고 그냥 하는 것이 아니고 돈도 받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것은 본인한테 주지 않고 회사에서 종이가방, 서류 이런 것들만 시킨다면서 즐겁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주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하철에서는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저에게 들고 있던 문고판 노자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것 이 참 좋아 보입니다.

 

우리 모두가 영원히 눈을 감을 때까지 인생의 은퇴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일의 은퇴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은퇴 후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대한 은퇴의식이 우리에게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고민이 곧 다가옵니다. 내 직업과 관계있는 것을 할 수 있고 없는 것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태까지 가보지 못한 곳에 가볼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지금 이 나이까지 울릉도에 못 가봤다. 그럼 언젠가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와 나이가 같은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 부부가 동갑이라 둘 다 일흔입니다. 둘 다 교수를 했었고 정년을 했습니다. 정년 후 일 년은 그냥 갔습니다. 대개 교수하는 사람들을 보니 정년 후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부부끼리의 외국여행입니다. 그런데 해외여행을 그냥 잘하고 오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올 때 꼭 싸우고 돌아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대화법이 일방적이고 그리 좋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모임은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독서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일방적일 수가 없겠죠? 그 부부도 갔다 왔습니다. 대판 싸웠습니다. 서로 안 맞은 것이었습니다. 서로 교수를 하던 전문 과목도 다릅니다. 그 후에 제 친구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을 했다는 것은 기업과는 달리 소견이 좀 좁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부부는 둘이서 협의를 했습니다. 일주일이 칠 일이죠? 삼 일은 우리 서로 어디서 자고 오든 늦게 오든 라고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남자가 어디 가서 자고 와도, 여자가 어디 가서 자고 와도 와도 ? 어디?’ 이런 것은 묻지 않습니다. 여태껏 서로 직장에 다니면서 방학도 빨리빨리 보내기에 바빴지, 어디에 가보고 한 일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프리하게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삼 일은 그렇게 보내고 사 일을 뭘 하느냐? 자기들은 헬스클럽 등에도 다니지 않기 때문에 생각해낸 것이 운동화를 신고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역에 내려서 대형 서점에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세 시간 정도를 보냅니다. 여기서도 철칙을 만들었습니다. 제 친구는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인데, 심리학은 버렸습니다. 영문이나 정치 등 다른 것을 보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대학에 들어간 것처럼 다른 것을 공부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3시간 정도 책을 읽고는 인사동으로 걸어가서 인사동 갤러리 같은 곳도 구경하고 적어도 만 오천 원 정도의 밥을 먹습니다. 그럼 3만원이 날아갔습니다. 밥을 먹고는 한참을 걸어서 삼청동으로 갑니다. 삼청동에 가서도 이것저것 구경도 좀 하고 커피 한잔을 하면 4만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걸어서 안국역까지 다시 와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갑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고 싶을 때만 하고 반드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서로 노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면 자연스럽게 쉬면 됩니다. 그렇게 그 나흘을 서로 챙기는 것입니다. 그 나흘 동안 아침밥은 누가 하느냐? 둘이 딱 반으로 갈라서 이틀은 여자가 하고 이틀은 남자가 한다고 합니다. 좀 싸워야 젊은 기분도 날 텐데 싸울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앞서 저희 어머님 이야기에서 말씀 드렸습니다만 내 인생의 새로운 개선법이라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나가는가에 대해 굉장히 주력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이대로 쭉 가는 것이 자신한테 마음에 들고 괜찮으면 되는데 부부한테는 어떤지, 자녀한테는 어떤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은 혼자 지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혼자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필요합니다. 영화도 혼자 보고 밥도 혼자 좀 먹어봐야 합니다. 여성이 그런 집단의식을 가진다는 데에는 놀랍게도 상당한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제 대학 친구들 모임에서 몇 년 전 펀드가 유행했습니다. 그런데 펀드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1,000만 원 넣으면 600만 원이 되어있고, 500만 원이 되어있고 돈 많이 넣은 제 친구는 1억을 넣었는데 몇천만 원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첫 토요일마다 저희가 만나는데 제 친구들은 펀드로 돈을 다 날려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별로 불안한 얼굴들이 아니었습니다. 농담처럼 얼마 날아갔다면서 이야기하는 광경이었습니다. 저는 왜 그런 것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내 돈이 없어진 것은 똑같은 현실이지만 같이 당했다는 것이 이렇게 위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애들은 다 오르고 나만 내리면 나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큰 상실감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같이 당하니까 상실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장난처럼 넌 얼마니?”라고 대화를 나눴지만 면밀히 관찰해 보면 돈이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 우리는 자기 인생을 살짝 속일 수도, 속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내 인생의 개선법으로 이런 일을 어떻게 운영해 나가느냐는 것이 인생의 은퇴법 하고도 굉장히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여성들 혹은 그것이 곧 남성의 개선법이기도 한 여성의 개선법을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내용을 책에 담았습니다. 우리 어머니한테 늘 듣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 시대에는 24시간 중의 21시간을 일했다고 합니다. 21시간 일하고 세 시간은 제대로 잤느냐? 어떨 때는 시아버지 두루마기를 이유로 잠도 못 자고 꾸벅꾸벅 졸며 바느질하다 손 다 찔리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24시간 늘 일한 것처럼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번에 갤럽조사를 보니 현재 여성들이 집안일 하는 시간은 제일 긴 사람이 다섯 시간이고 보통은 세 시간이었습니다. 만약에 다섯 시간이라고 쳐도 옛날과 19시간이라는 차이가 납니다. 저는 여성들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 시간을 무엇으로 보내느냐고 말입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당신 인생의 질이 결정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곱셈도 안 되고 뺄셈도 안 되고 덧셈도 안 되는 것입니다. 순금보다 좋은 것은 지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은 현재 내가 무얼 하고 있는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오늘 대단히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고 여러분 또한 지금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냥 우두커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머리는 복잡한데 하나도 실현하지 못하고 그렇게 우두커니 보내는 시간이 우리한테는 매우 많습니다.

 

남성을 위한 인생 10이라는 것도 이제 앞으로 누군가가 쓸 수도 있겠고 남성에 대한 책도 많이 나와 있지만, 제가 남성을 위한 인생 10강을 쓴다면 여성을 위한 인생 10강과 별로 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같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미국 국무부 밑에 가보면 실패 연구소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새마을 연구소에 성공사례 연구소가 있습니다. 이것은 같은 말입니다. 이쪽에는 성공사례 연구소가 있고 저쪽에는 실패 연구소가 있는데 사실 똑같은 말이지 않습니까? 성공을 잘 분석하여 실패를 줄일 것인지, 아니면 실패를 잘 분석하여 실패를 줄일 것인지 어느 쪽이 맞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실패 쪽입니다. 성공하는 것에는 운 등 여러 가지 요건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패는 한 가지 일 수 있습니다. 왜 실패했는가를 따져보면 성공 쪽으로 가는 것이 조금 더 빠를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래서 미국 국무부 밑에는 실패 연구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서 자신이 하는 기업 같은 것은 빼고,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것 중에 왜 실패를 했었는지 한번 적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교 들어오면 1학년들한테 두 가지를 시킵니다. 남학생들한테는 아버지에 대해서 쓰라고 하고, 여자들은 어머니에 대해서 쓰라고 하고, 또 하나는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 쓰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 두 개의 과제를 냅니다. 1학년 여학생들은 대개 비슷합니다. 엄마와의 갈등이 많습니다. 올가을에 나올 제 책이 하나 있는데 제목이 엄마와 딸입니다. 엄마와 딸의 관계가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친구라고는 합니다. 친구이지만 그러나 친구가 아닌 친구. 그런데 아버지에 대해서 말하라 하면 가슴이 먹먹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 비방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 아유 우리 아버지 말도 하지 마세요. 나는 아버지가 싫습니다고 합니다. 그럼 왜 아버지를 싫어할까요? 말하자면, 아버지가 이렇게 해하는 식으로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아빠라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실수한 것이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을 앞세워서, 너무 욕망이 커서 내 자식은 이렇게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 때문에 우리가 슬퍼했던 일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각자 아버지를 싫어한다고 이야기를 하던 도중 어떤 아이가 일어나서는 선생님 저도 역시 아버지가 싫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미워서 아버지가 집에 있으면 안 들어가고 집에 가도 아버지가 마루에 있으면 방에 들어가고 방에 들어오면 마루로 나가고 그렇게 싫습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아이가 재수를 세 번이나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가 자기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될 줄 알았어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잘 압니다. 아버지는 너무 슬펐을 것입니다. 억울하고, 내 자식마저 왜 그런 것일까? 아버지도 아마 실패를 많이 경험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실패가 없는 아버지는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실패를 많이 하고 억울한 점도 많고 이 세상에 한도 많은 사람일수록 자식한테 그렇게 말합니다. 자기는 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어디로 혼자 이민을 갈까 이렇게도 생각을 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이 학생은 딸도 없는 외동아들이었습니다. 엄마는 생계로 화장품 장사를 하니 아들이 밤에 아버지 옆에서 자며 간병해야 될 일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미워 죽겠던 상황이기에 아이가 이렇게 생각을 했답니다. 아버지가 죽는 것보다 오늘 밤 함께 있는 것이 더 괴롭다고 말입니다. 아버지는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을 하고 정신이 돌아온 이틀 후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잡으면서 아들아 미안했다한마디 하시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셨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엄마가 세 살 때 죽었어. 그러고 또 새엄마가 들어왔는데 내가 여섯 살 때 그 새 엄마가 또 죽었어. 그래서 엄마가 여러 번 바뀌었지. 나중에 네 번짼가 들어온 여자가 아이를 세 명 낳았는데 그 아이들을 내가 다 업어 키웠다인생의 죄가 너무 많은 남자가 있었나 봅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 자신은 죽어도 결혼을 안 하려고 했는데 군대 가는 버스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게 되었고 지금 이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하나 낳고는 절대 죽어도 안 낳았습니다. 내가 또 아이를 낳을까 봐 이 아이 엄마 몰래 수술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자기의 고통이 담긴 속을 아들에게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너한테 잘해주려고 늘 결심을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이 안 나왔는지 모른다. 나는 그런 사랑한다는 말의 표현을 영원히 할 수 없는 아버지였다. 미안했다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버지는 나중에 좋아졌습니다. 훗날 이 아이는 아버지를 제일 존경한다고 했고, 제가 그 학생 A+ 학점을 줬습니다. 다시 말해 가족을 알아가는 것은 어떤 기업을 성공시키는 것보다 좋은 일입니다. 결국 그 아이는 실수 안 합니다. 자기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가장 나쁜 것은 할 수 있는 사람이 최선을 안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그렇고 자식도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는 아직도 많은 최선이 있습니다. 왜 글을 읽느냐, 왜 독서모임을 하느냐? 그것은 내가 이끌어 내지 못한 내 안에 최선을 끌어내기 위한 어떤 행동이라고 해석합니다. 그 아이는 그 이후에 굉장히 좋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방이지만 기자 시험을 쳐서 기자가 되었고 나중에 결혼할 때도 제가 주례를 섰습니다. 너무 대견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아버지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되었는데 저는 그런 일이 참 감격스럽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 누구보다도 건전한 인간으로 변해가는 것에 저는 굉장히 감동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실을 안다고 해서 제가 제 딸을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은 내 안에 어떤 최선이 있다는 사실만 안다면 그것을 끄집어내고 행동화시켜서 주변 사람에게 배려하고 무언가를 새롭게 일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독서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성을 위한 인생 10강의 최선의 방향은 우리에게 시간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어떤 방법으로 살아왔든지 조금 바꾸고, 앞으로 남은 50년은 우리한테 전혀 다른 시간이니 그 시간에 내 방식대로 요리하고, 땀을 얼마나 흘릴지, 얼마나 절제를 할지를 결정하여 남은 시간에 대해서 나 자신도 그것 덕분에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손에 쥐는 것은 결국 다 두고 갈 것이기 때문에 꼭 손에 많이 쥐어야 행복한 것은 아닐 테고 어떤 것이 가장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인지를 터득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인생 10강에서 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학생들에게 너희가 가진 것을 한번 써보라고 말하면 처음에는 아이들이 무슨 말인지를 잘 모릅니다. 가진 것이라니, 돈 얼마, 동전 몇 개? 저는 그것뿐 아니라 무엇이든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적으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두 줄 써냅니다. 결국에는 보이지 않는 자기 자산을 이야기합니다. “고향이 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있다. 추억이 있다. 나한테는 친구가 있다. 나는 그래도 아직까지 친구를 사랑할 여력이 있다이런 것까지 나오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자산의 이야기입니다. 말하자면 우리한테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고 냄새도 맡아지지 않는 자원이 무궁하게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태어났고, 누가 옆에 있었고, 어떻게 했고, 앞으로 어떻게 가고, 내 주변에 누가 있고, 무슨 일을 해서 밥을 먹고, 이런 기록 할 수 없는 것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것을 모두 인식하면 결국 가장 큰 부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자신감을 아이들한테도 심어주고 제 주변 사람들한테도 심어줄 수 있는 것, 아마 그것도 글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훨씬 적극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한테 몇 개월이 남았고 몇 년이 남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굉장한 큰 시간입니다. 그것은 선물입니다. 우리한테 40, 50년이 있다면 그것은 굉장한 큰 선물입니다. 옛날 같으면 나이 70이면 모든 것을 포기할 때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꿈이 많습니다. 꿈을 가지고 가다가 언제 내려놓아야 할지는 내가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아직 시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60살이 되었을 때는 10년만 더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좀 우스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 스승은 지금 86세이십니다. 책을 내서 60세에 파티를 했는데 조그만 곳에서 했습니다. 스승이 돈도 많으셨기에 선생님, 이럴 때에는 본인이 돈을 좀 더 내서 좀 더 크게 하세요.” 했더니 “70살에 하지 뭐하셨습니다. 그런데 70세가 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번에도 호텔 같은 좋은 곳에서 하시라고 했더니 또 “80살에 하지 뭐이러십니다. 80세가 되시고 또 조그만 곳에서 잔치를 했습니다. 이번에도 제가 옆에서 한마디 했습니다. “선생님, 이번에야말로 정말 근사한 곳에서 하시죠하니 “90살에 하지 뭐그러셨습니다. 그러나 90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자기 인생의 시간을 100세로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늙지도 않습니다. 그것도 옆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좀 곤욕스럽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건강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이 먼저 건강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한테 많은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육체적인 건강도 재생시켜 주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은 우리가 배울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꾸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 옛날의 저도 그랬습니다. 내가 무얼 할 줄 알겠어? 이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것을 360도로 확 바꾸어 , 나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니까 결국은 에너지가 좀 더 생기는 것 같습니다. 여기 이렇게 우리가 모여 책도 읽고 이야기도 듣습니다. 끝나고 약주도 안 하시고 가신다 들었는데, 그렇다면 집에 가서 맨정신으로 오늘 있었던 일을 스스로 곱씹을 것 같습니다. 노트를 굵은 것으로 몇 개 사놓고 적어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아마 근사한 작품들이 나올 것입니다. 그날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자기식으로 한번 써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번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것도 내가 말하는 인생 10강 중 하나의 주제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11, 12, 20, 50강까지 될 것입니다. 오늘 있었던 일을 한번 적어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자서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옛날 동화를 읽으면 대개 그리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며 끝이 납니다. 자기가 그렇게 해피엔딩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남들이 너 행복하지 않잖아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자기 의지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행복했다고 하면 그 누구도 그르치지 못합니다. 행복한 것은 냉담한 사람에게는 가지 않습니다. 동의하는 사람한테 갑니다. “너 행복해?” “, 나 지금 즐겁고 행복해그때 우리에게는 편견이 있습니다. “너 집도 없고, 빚도 있잖아?” 그러나 그런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면 우리는 저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고 판단해버립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한 것입니다.

 

제가 이 책을 쓰면서 풍수 책을 세 권이나 읽었습니다. 책을 딱 덮고 생각한 단어가 정돈이었습니다. 기회 있으시면 여러분도 한번 읽어 보십시오. 첫 번째, 이 풍수라는 것은 좋은 기운입니다. 여기 좋은 기운이 있다고 가정하고 자기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문을 여니까 현관이 어두 컴컴한데다가 짜장면 남긴 그릇, 우산, 여름 신발, 겨울 신발, 신문지가 쌓여있다면 좋은 기운은 절대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풍수지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말끔하고 현관이 밝은 집으로 좋은 기운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제 거실로 갑니다. 거실이 정돈되어 있다고 하면 이 좋은 기운은 거기 있고 싶어합니다. 그러니까 좋은 기운은 정돈된 집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제가 이것을 읽고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 50살에 아직 하나도 정돈되지 않고 뭘 하면 좋을까?’ 하며 돌아다니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자기 계획이 짜여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수정해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자기의 인생에서 앞으로 십 년을 살아도 수정하고 보완하고, 수정하고 보완하며 살아야 합니다. 한번 정했는데 가다가 보니까 아 이거 안 되는 것이구나가 아니라 아 그래? 보완하자해야 합니다. 자동차에 기름이 없으면 넣고 또 가고, 안되면 또 고치고 부속 갈아 넣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는 일곱 살짜리 아이는 태어나서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밥을 한 숟가락도 먹은 적이 없습니다. 내장이 전부 꼬인 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수술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의학이 참 대단합니다. 일곱 가지 장기를 전부 갈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곱 살이 되고 난생처음으로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수술이 성공한 것입니다. 그때 그 의사가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앞으로 췌장이 나빠지면 얼마짜리로 갈아주십시오한마디면 다 갈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름 모를 병도 많이 나오겠지만, 앞으로 우리들의 건강문제는 상당히 호전될 것 같습니다. 육체에 대한 새로운 기능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입니다. 우리들의 정신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그것이 우리 육체에도 오고, 우리 감정적인 것에도 옵니다. 자기의 인생의 분위기에도 미쳐서 결국 자기가 감정을 갔다 가 조절할 수 있는 정신이 있을 때 우리는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서 행복도 불러올 수 있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노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인생의 길을 가지 못합니다. 정돈되지 않은 삶은 언제나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이제 지금쯤은 우리가 자기 인생의 새로운 길을 정돈해야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앞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조금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시인으로 산 세월이 한 50년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의 시인으로서 일류는 아닙니다. 50년을 해도 일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입니까? 제가 수를 놓는다든가, 가마니를 짠다든가 하는 수공업을 50년 했다면 우리나라의 장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50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써놓고도 이게 시가 됐는지 안됐는지도 모르며 지금도 쩔쩔 맵니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시를 62년간 쓰고 86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시를 어떻게 썼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것이 예술입니다. 예술은 완벽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내가 50년을 살았는데 내가 이것 밖에 안 돼? 이런 마음이 아니라 자의식이 필요합니다.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것에 대하여 답변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어른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아마 여러분은 오랫동안 글을 읽으셨기 때문에 그렇게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렇게 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1. 시작() 하실 때와 산문 등 시 이외에 관한 것들을 쓰실 때 작품 구상 세계를 어떻게 넓히시는지, 작품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대개 시인들에게는 대표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50년 동안 써온 시중에 대표작을 열 편 골라 발표를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꼭 넣는 시가 두 편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버지의 빛이라는 것이고 하나는 등잔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등잔이라는 것이 뭔지 잘 모를 것입니다. ‘아버지의 빛부터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1997년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완전히 무일푼이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내가 죽으면 네 아비는 일주일 안에 죽어야 된다, 왜냐하면 돈도 하나도 없는데 배다른 형제들이 얼마나 무시하고 구박하겠느냐며 늘 염려를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안에 안 돌아가셨고 18년을 더 사셨습니다. 처음부터 무일푼도 아니었던 사람이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았고 아버지의 재능도 닮았기 때문에 저는 아버지를 한 번도 나쁘게 대한 적이 없습니다. 시인이었고, 아버지가 시인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제가 처음에 시인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딸이 왕비가 되면 아버지가 큰절을 하던데 나는 너한테 큰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시인을 높이 보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버지를 애석하게 생각했는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무렵에 저도 시에 대해서 무력해지고 인생도 우울했습니다. 사실 저는 결혼해서 여자가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을 몇 년간에 다 느낀 사람입니다. 남편은 24년간 투병하다 죽었고 시어머니는 내 옆방에서 구 년을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와중에 공부한 사람입니다. 내 인생을 개선하면 내 딸한테까지 나 같은 불운을 주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공부하고 교수 되고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에는 저의 인생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산에 가서 아버지를 묻고 내려오는 순간 제 인생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해가 져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온몸이 저려왔습니다. 실제로 온몸이 저렸습니다. 왜 그러는지 모르고 겨우 잘 달래서 집까지는 왔는데, 그날 밤 3시쯤 제가 이런 시를 썼습니다.

 

아버지를 땅에 묻었다.

하늘이던 아버지가 땅이 되었다.

땅은 아버진데 그걸 밟고 내려와서 발 끝까지 저린 내 몸

 

시상이 어느 순간 나한테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아버지의 빛이 대표작 중에 하나라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제가 야간수업을 하고 비 올 때 자동차를 몰고 오면 어느 날은 아버지가 저기 서서 얘야 여기 못 간다, 저 길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길에 꼭 무슨 문제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환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죽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존재는 아니다. 아버지의 빛은 영원히 나에게 남아있다는 뜻으로 아버지의 빛열 편을 연작으로 썼습니다. 사실 그것도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를 묻고 내려오면서 갑자기 두 발이 저렸는데 그 새벽녘에야 그게 왜 갑자기 저렸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 시를 쓰게 된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 등잔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골동품을 좋아해서 비싼 것은 못 사고 인사동에서 가끔 싸구려를 삽니다. 그 중에 백자 등잔 하나가 있었습니다. 집에 갖다 놓고는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고를 청소하다가 어느 날 보니 등잔이 나온 것입니다. 씻어서 보니까 아직도 뽀얗고 도톰한 게 금방 산 것 같았습니다. 그 등잔에다 나 자신을 투영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아직도 살이 뽀얗고 도톰한 아직은 여자인 그 몸이라고 썼습니다. 이런 식으로 어떤 사물과 나를 투합시키는데 시는 상당히 힘이 있습니다. 그런 시일수록 공감대가 큽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사물을 보다 시가 떠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에 산문은 의도적입니다. 산문은 가능한 한 많이 팔리게 씁니다. 그러나 주제를 잘 잡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도 돈 많이 주고 쓸모 없는 책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줄이라도 와 닿고 그것이 나에게 필요하다고 할 때 지갑을 여는 것이지, 절대 그냥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책 앞에 고민이 따라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질문 2. 수필 쓰시는 분들은 시를 쓰시는 분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 책에 적혀있었습니다. 그것이 느낌을 전달하는 데 있어 시가 더 함축적인 의미가 있고 따라서 훨씬 더 많이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인가요?

 

, 그럴 수 있습니다. 문장의 탄력성이 시인이 훨씬 좋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설가가 산문을 써도 별로 재미없습니다. 소설가분들이 산문도 많이 쓰시는데 굉장히 소설적으로 씁니다. 다시 말해 시인처럼 감정의 세부적인 것까지 이끌어 내는 데에는 시인이 가장 잘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분들은 질문을 잘 안 합니다. 대학생들도 그렇습니다. 저는 일류대학에 있지는 않았지만 , 이제 질문해봐하면 학생들이 가만히 있습니다. “내가 조금 전에 조용히 하라고 했니?” 이렇게 말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서울의 한 명문대에 있는 친구한테 거기 학생들은 질문 잘하는지, 우리 애들은 완전 벙어리라고 이야기했더니 그쪽 역시 마찬가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가정에서 대화가 없다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엄마가 모두 질문합니다. 아이에게 엄마가 질문을 너무 많이 합니다. 아빠도 얼굴 마주치면 뭐 했니?” 이렇게 질문만 합니다. 아이의 대답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문제나 사회문제, 그리고 정치인들을 보면 국가문제 역시 남의 이야기를 절대 안 듣습니다. 우리는 대화법에 대해 굉장히 무지한 데가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공공건물에 대한 것입니다. 집에 있는 것만 내 것이라는 의식을 엄마들이 키워주기 때문에 밖에 나가면 전부다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밖에 있는 이것도, 공원에 있는 조각도 우리 것이라는 의식을 길러줘야 합니다. 그것을 대화로 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우리가 질문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질문도 못 하니 결국은 핸드폰만 가지고 놀고 영상으로 대체하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한국보다 더 심합니다. 일본은 1인용 집, 1인용 음식 들이 유행합니다. 최근에는 죽을 만큼 외로우면 전화하세요라는 직업이 생겼습니다. 혼자 사니까 어떨 때는 자기 마음속을 털어내고 싶어도 자기 속을 뒤집어서 보여줄 상대가 없으니 답답하면 전화를 합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10분에 만 원 정도 합니다. 술 먹고 어쩌다가 두 세시간 하면 굉장히 비싼 돈을 내게 됩니다.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납부되기 때문에 안낼 수도 없는 시스템입니다. 오죽하면 죽을 만큼 외로우면 전화하세요에 전화를 할까요? 우리는 그만큼은 아니니 굉장히 건강하고 좋은 상태입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제일 염려되는 것이 뭐든지 일본을 조금씩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1인 음식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불고기 구워먹는 것, 돼지고기 구워먹는 것, 혼자 가서 구워먹기 참 민망합니다. 그래서 서초동에 각자 칸을 쳐서 혼자 가서도 구워먹을 수 있도록 판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나쁜 영향이죠. “죽을 만큼 외로우면 전화하세요역시 한국에도 곧 생길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릴 때부터 말하는 습관을 길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질문 3. 시인은 순수성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순수함을 유지하려면 현실하고 상당히 괴리감이 있을 텐데 어떻게 그런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요?

 

사실 그것은 인간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시인도 배가 고프기 때문입니다. 배도 고프고, 좋은 집에 살고 싶고, 좋은 차도 사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좋은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원하는 데까지 갈 수 있게 하는 절제력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시인에게 시를 잘 써주면 나라에서 이 좋은 집을 집 주겠다, 이런 조건을 거부하는 일이 참 어렵지 않겠습니까? 순수성을 가지는 것은 자기감정과 자기탐욕의 절제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세상에는 갖는 것보다 못 갖는 것이 더 많으니 시심을 잃게 됩니다. 결국 눈앞에 있는 것부터 먼저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 합니다. 이를테면 저도 살아보면 옷을 많이 사거나 친구들하고 모임이 많았다고 하면 그때 쓴 시는 굉장히 약합니다. 반면 한 달 동안 어디 가서 완전하게 처박혀서 글을 쓴다고 할 때는 훨씬 농도가 좋습니다. 그러나 시인들도 죽을 만큼 외로우니까 그것을 하지 못할 뿐입니다. 정말 원하는 만큼 순수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시인들도 다 타협합니다. 죄송합니다.

 

 

질문 4. 시인이란 순수한 영혼을 가진 분이고 그것을 시라는 정적인 용어로 표출하는 분이십니다. 그런 시인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가 순수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통계적으로 보면 한국이 전 세계에서 시집이 제일 많이 만들어지고 제일 많이 팔리는 나라라고 합니다. 시뿐만 아니라 소설, 물론 시를 다 포함한 국내 문학잡지도 삼 백 종류 이상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시를 포함한 문학작품이 가장 활발한 곳이라고 보여지는데 현재 우리 사회가 순수하지 못하고 굉장히 많이 병들어 있다고 비판하지만, 상대적으로 괜찮은 나라가 아닐까요?

 

정말 민망하기도 하고 좋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인구가 13억이고 그리고 호적에 들지 않은 인구가 3억 정도 된다고 해서 15억으로 보는데, 이처럼 우리나라는 현재 시인이 3,000 , 아무도 모르는 시인도 3,000 명쯤 됩니다. 여자들이 결혼에서 할 일이 없게 되고 나도 이제 시인이나 해볼까 해서 생겨난 엉터리 잡지사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시인을 만들어주고 시인 김아무개 명함까지 만들어 주면서 돈을 받는 곳이 많습니다. 제가 50년을 시단에 있었는데 저조차 모르는 잡지도 많습니다. 엉터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곳에서 나오는 시인일수록 명함을 만들어 아무 데나 뿌리고 아무 데나 가서 시인이라고 합니다. 강남에도 여자 시인들이 많은데 그것을 야유하는 말로 강남에 돌을 던지면 여류 시인이 맞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시인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 제가 하는 말이 그래도 여자들이 시 쓴다고 다니는 것이 화투, 놀음하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고 합니다. 한편 그런 것이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문인들은 다른 나라의 문인들에 비해서 굉장히 행복합니다. 미국, 아니 우선 가까운 일본은 시집 하나 성공하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신달자만 하더라도 시집 하나 내려면 얼마든지 낼 수 있고 인세도 받습니다.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조금은 팔립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00만 부가 팔린 시집이 있습니다. 물론 문단에서 쳐주는 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시가 많고 문인이 많은 것을 보면 다른 나라보다 상당히 문학적인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서점에 시집이 진열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서점에 가보면 이름도 모르는 시집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에서 한국에 사는 문인들은 행복하다고 인지합니다. 시인들이나 문학가들이 사실은 자기 점검이 필요합니다. 치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시인은 문인대접을 받고 정부 관련 재단, 문화부 등지에서 예산도 많이 받습니다. 저희는 못 받습니다만, 젊은 사람 중에서 시집을 낸다고 하면 돈을 주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혜택을 받으니 문인들은 더욱 치열하게 자기 문학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몇 년 동안 고은씨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안 받는다 논란이 많았지만, 아직 못 받고 있습니다. 작년에 시인이 받았기 때문에 과연 올해 10월에도 시인이 받을 수 있을까 낙담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한 대형 재단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도록 초등학생, 중학생을 뽑아서 양성시켜왔습니다. 아직은 못 받았지만 앞으로 노벨상도 받고 국격도 높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치열하고도 순수한 인간으로 돌아와 문학을 해서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시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임기가 2013 3월까지입니다. 요즘 제가 하는 일은 시가 아니고 기업들 회장님들 찾아가서 돈을 구걸하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에 제가 좀 돕겠다하시는 분들은 따로 말씀 좀 해주십시오. 농담 반 진담 반이었습니다.

 

김우희 연구원(whkim@ip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