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esting,
Pioneering and Satisfying

 뉴스레터

제목 [2012년 4호]경영자독서모임: 통섭의 식탁
발간일 2013-01-15 첨부파일 사진11. 최재천.jpg

[경영자독서모임]

 

통섭의 식탁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

 

이 원고는 201212 03일 최재천 교수의 MBS 강의를 바탕으로 산업정책연구원(IPS)에서 작성하였습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이 곳에서 강의를 몇 번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에 온 것 같기도 하고 편안합니다. 오늘은 통섭의 식탁에 대해서 강의를 하라고는 했지만 말씀 들으신 대로 그 책은 서평집입니다. 그 책에 나온 책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식의 강의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제가 여러 해 전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진 통섭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통섭의 개념에 대해서 다짜고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두루두루 이야기 하며 설명 드려보겠습니다.

 

대선이 코 앞에 다가왔습니다. 미국의 대선 때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당선 된 다는 것이 불투명했을 당시, 참모들이 이 말을 만들어 낸 후부터 승기를 잡았다고 들었습니다.‘바보들아, 결국은 경제 아니냐?’결국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확실히 부각시켜서 정권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클린턴은 임기를 두 번 하는 동안 지퍼를 잘못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고생을 조금 하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최근에는 미국 역대 대통령들 중에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입니다. 미국 경제를 확실하게 살려놓은 것으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경제가 중요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왜 갑자기경제 민주화라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는지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경제 민주화라는 것은 사실 경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야기 들어보자면 경제보다는 오히려 복지에 관한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제 강의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제 동료들은 가끔 저를 순수 과학자라고 부릅니다. 자기들은 더러운 과학을 하는지, 하여간 저보고 순수 과학을 한다고 합니다. 그 것은 참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순수 과학자는 연구비가 없는 과학자라는 뜻 입니다. 그러니까 별로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꽤나 알려진 사람인데 제 인지도에 비하면 연구비는 너무 없어서 고생을 합니다. 정부가 지나치게 돈이 되는 연구에만 투자를 하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연구비 신청을 하면 잘 되지 않고 계속 떨어집니다. 요즘은 경합제로 마지막에 남은 두 세 팀이 재단에 직접 가서 마지막 설명을 하고 브리핑도 합니다. 그런데 브리핑 다 하고 나면 심사위원 선생님들이 거의 노골적으로마음 같으면 최 교수님 연구 도와주고 싶은데……’이렇게 이야기 하면서 끝냅니다. 그러면 저는 또 떨어진 것을 알고 집에 가게 되는데, 이런 것들이 참 힘듭니다.

 

저는 오늘 선생님들 앞에서 고백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저도 돈이 좋습니다. 다른 뜻은 아니고 돈이 없으니 정말 연구도 못 하겠습니다. 연구비를 얻기 위해 저도 참 많은 시간을 돌아다닙니다. 정부가 안 주니까 기업에 가서도 돈을 받고 다시 기업에 무언가 기여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아서 연구실을 꾸려 나갑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드린 이유는 클린턴 대통령이 말씀 하신 대로 솔직히 경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평소에 문화가 어쩌느니 학문이 어쩌느니 하며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도 다 일단 경제가 살아야 가능한 일 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경제를 확실하게 살리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경제학 공부를 한 사람은 아닙니다. 대학시절에는 오히려 경제학과에 다니는 친구들을 사석에서 윽박지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상아탑에 와서도 돈 버는 공부나 하고 앉아 있네?’하면서 말입니다. 괜히 경제학 같은 것은 하면 안 되는 것 같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제가 미국에 가서 진화생물학을 전공하다 보니 뜻 밖에도 진화생물학의 모든 논리가 경제학적으로 설명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Cost, Benefit, Analysis로 다 이야기가 됩니다. Cost가 너무 심한 형질은 진화될 수 없습니다. Benefit이 많아야 진화 하는 것 입니다. 모든 논리가 경제학으로 설명이 되는데도 버티다가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 하던 시절, 어느 날부터 드디어 경제학과 건물을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경제학을 모르고는 도저히 제 분야 공부도 못 하겠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제가 굉장히 흥미를 느낀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전에렉 메이팅(Lek mating)’이라는 번식구조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레크(Lek)라는 말은 스웨덴 말로 ‘Play’라는 뜻인데, 새들의 약 20여종에서 보이는 아주 흥미로운 번식구조입니다. 해마다 넓은 평원에는 번식기가 되면 이 새들이 모입니다. 수컷들이 먼저 날아와서 자기네끼리 툭탁거리고 싸움을 하고는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이 자리라는 것이 그렇게 큰 영역은 아닙니다. 저 안에 먹이가 있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우리에게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자리가 좋다고 서로 싸움질을 해서 차지합니다. 그러다가 며칠 후 암컷들이 날아들면 난리가 납니다. 점잖게 앉아있던 이 친구들이 갑자기 꼬리털을 펴고 괴성을 지르면서 춤을 추기도 합니다. 그러면 암컷들은 그 앞에 와서 지켜봅니다. 그러다가 맘에 안 들면이러고 다음 수컷 앞으로 가고 또 그 수컷은 마구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굉장히 재미있는 것은 수컷들이 절대로 암컷을 붙들지는 않습니다.‘내가 이렇게 열심히 춤추고 있는데 당신 어디 가는 거야?’이러지는 않고 암컷들에게 완벽한 자유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암컷들은 수컷들을 다 관찰하고 돌아다닙니다. 신기한 것은 어떤 암컷은 하루 종일 그 수컷들을 다 보고는 그냥 갑니다. 그러고는 다음 날 또 옵니다. 어떤 암컷은 일주일을 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수컷이 마음에 들면 그 수컷과 짝짓기를 하고 혼자 날아가서 어딘가에서 혼자서 둥지를 틀고 혼자서 새끼를 키웁니다. 그러니까 여기 모여있는 이 수컷들은 저 난리를 치지만 자기 자식이 어디서 태어나고 크는 지는 전혀 모릅니다. 다만 여기 모여서 자기 정자를 암컷들에게 넣기 위해서 모이는 것 입니다. 시즌이 끝나고 나서 보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한 레크에서 그저 두 세 마리의 수컷이 모든 암컷을 다 상대한 것으로 밝혀집니다. 여기에서 질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수컷들은 도대체 무엇 하러 이 곳에 와서 이렇게 애를 썼을까요? 결국은 아무 암컷도 하나 얻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이기 때문에 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여기에 덤벼들어 가설을 세워놓고 누구의 가설이 어쩌고 저쩌고 말이 많습니다. 저도 제 나름대로 가설을 하나 세워놓고 논문을 쓰기 위해서 궁리를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광교에는 양복점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부친께서는 그 중에서도 늘 한 집만을 고집하셨습니다. 왜 그 집만 가시냐고 여쭈었더니 , 이 놈들은 양복 못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따라다니면서 보니 다른 분들은 다른 집으로 들어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저희 부친이 가는 양복점만 양복을 잘 만들고 나머지는 양복 다 못 만든다면 나머지들은 왜 그 옆에 붙어있었을까요? 이 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똑같이 적용해 보자면, 왜 나머지 별 볼일 없는 수컷들은 여기 들러붙어 있을까요? 인터넷에서 뒤지다가 광교 양복점 사진은 기어코 찾지 못하여 비슷한 것으로 가구거리 사진을 가져왔습니다.‘저 가구점들 중에 하나가 정말 가구를 잘 만든다면 그 옆에 와서 영업하는 가구점들은 뭐 하는 것일까?’이 것이 제가 품은 궁금증이었습니다.

 

제가 하버드대학 경제학과에 가서 겁 없이 노벨상 받은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 분에게 광교 이야기를 해봐야 못 알아들으실 것 같아서 보스턴 다운타운 백화점 옆에 늘어선 구둣가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랬더니 노벨상 받으신 그 교수님이 저한테뭐 이런 놈이 다 와서 내 시간을 낭비하게 하나?’하는 표정으로우리는 기업 M&A같은 것 연구하지 구둣가게 같은 것은 연구 하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몇 분에게서 그런 면박을 받았는데 그 중의 한 분이 저에게 도서관에 가서 공부 좀 하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한 3, 4년을 시간만 나면 하버드 경제학과 건물, 리타우어 센터(Littauar Center) 지하실의 도서관에 가서 이 책 저 책을 읽고 수업도 청강도 하면서 나름대로 경제학에서 힌트를 찾아보았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이렇게 보셔도 됩니다. 싱글즈 바(Single’s Bar)로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생겨나고 있지만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이른 바 싱글들이 모이는 바가 있었습니다. 여기 모이는 이유는 그냥 싱글들이 모여서 그 날 저녁에 서로 눈이 맞으면 잠자리를 같이 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싱글즈 바에 장동건씨와 제가 같이 갔다고 상상을 해보십시오. 그 안에 백 명의 여성들이 있는데 그 백 명의 중에 단 한 분이라도 저를 보는 여성분이 계실까요? 절대로 없습니다. 저희 둘이 이렇게 붙어있어도 저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는 왜 갔을까요? 저는 갈 필요도 없는데 말입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클럽에 가면서 소위물 좋은 곳으로 간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물 좋은 클럽에 갔을 때의 결정적인 약점은 바로 나는 건질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레크 메이팅을 하는 이 새들 중의 수컷들도 시즌 초반에는 레크를 옮겨 다닌다는 것입니다. 여기도 레크가 하나 있고, 2km 떨어진 곳에도 레크가 하나 있고, 500m 떨어진 저기에도 하나 있습니다. 이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시즌이 어느 정도 안정 될 즈음에서 그들의 무게나 크기를 재보면 비슷한 놈들끼리 모여있습니다. 장동건은 장동건끼리 모여 있고 최재천은 최재천끼리 모여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장동건이 모이는 곳에 최재천이 가 있다가는 전혀 가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암컷들이 이렇게 매일같이 와서 보고 또 보고 하는 이유도 비슷한 수컷들간에 서로 구별이 잘 안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수컷들간에 구별이 확실하게 된다면 제일 괜찮은 수컷을 선별하여 빨리 짝짓기하고 가면 됩니다. 일주일 동안 계속 오는 이유는 수컷들이 서로 너무 비슷하기 때문 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Contestable market theory’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은 뉴욕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 양쪽에 겸임 교수로 계시던 보몰(William Baumol)교수가 쓴 책입니다. 이 교수는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노벨 경제학상 후보 단골로 꼽히던 분이었습니다. 결국 상은 못 받으셨지만 2년 전엔가는 미국 경제학회에서 하루 종일윌리엄 보몰데이를 열기도 할 정도의 거물급 인사입니다. 여러 가지 이론들을 많이 냈는데 특히나 벤처사업, entrepreneurship에 대한 이론이 많습니다. 이분이 한동안 밀던 이론이 바로 저것입니다. ‘Contestable market’, 우리말로는 경합 시장입니다. 이는 Comparative market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냥 경쟁시장이 아닌 경합시장은 이른 바 경제학 시장에서 이야기하는 Sunk cost, 매몰비용이 없는 시장입니다. 따라서 진입과 퇴출이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이 분은 비행기 산업을 가지고 이를 설명했습니다. 비행기 사업을 할 때 비행기를 살 필요는 없고 그냥 빌리면 된답니다. 렌트한 비행기를 가지고 공항에 가서 저가로 휴스턴과 댈러스 사이를 다니며 한 동안 돈을 버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회사들도 가격을 낮추게 될 것이고 그러면 경쟁이 너무 치열해져서 버는 게 별로 없게 됩니다. 그러면 그 비행기들 들고 알래스카로 가서 알래스카와 시애틀을 왔다 갔다 한다는 것 입니다. 또 그 시장의 경합이 너무 심해지면 보스턴으로 가져가서 보스턴과 뉴욕을 왔다 갔다 하면 됩니다. 시장의 진입과 퇴출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 입니다.‘비행기? 날아다니네. 새도 날아다니잖아?’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고 둘 다 왔다 갔다 하기가 굉장히 쉬운 것 같다는 발상으로 저 이론을 혼자서 독학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새를 가지고 선생님의 이론을 실험을 해 보고 싶습니다라고 적어 저 분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3일 만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경제학 하신 분들은 실험이라는 것을 해보기가 거의 어려운데 왠 동양 놈이 당신 이론을 새를 가지고 실험을 해 보겠다고 하니 너무 좋아하시는 것 이었습니다. 이 교수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한 동안 교신하면서 저는 학위를 마쳤습니다. 그 때 저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프린스턴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미시간 대학의 교수직을 수락을 하고 미시간으로 옮겨가면서 저 분께는 안식년을 얻으면 한 번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고등과학원에 자리를 마련해 볼 테니 오면 안되냐고 재차 제안하셨습니다. 저한테 굉장한 관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미시간 대학에서 교수로서 재직하던 당시 연구실 문에 3가지를 적어놨습니다. 대개 자기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각자 연구실 앞에 한 가지 키워드를 잡아 적어놓는데, 저는 3가지 중 맨 아래에‘Economic biology’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경제 생물학입니다. 동료 교수들이 복도에서 마주치면 경제 생물학이 뭐 하는 거냐고 질문했고 저는 복도에서 일일이 설명을 하곤 했습니다. 이것이 1992, 3년 즈음인 90년대 초반이었는데 그 때는 경제학과 생물학을 연결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거의 없던 시절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제가 그래도 조금 앞서간 편 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저보고 오라는 제안이 들어왔고 고민 끝에 미시간 교수직을 내 놓고 결국 서울대학교로 왔습니다. 오면서 제일 큰 고민 중 하나가 한국에 와서 ‘Contestable market theory’공부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한국에 경제학 박사가 얼마나 많은 데 그런 것을 걱정하냐며 안심시켰고 그 덕에 제가 들어왔습니다. 1994년에 서울대학교 교수로 왔으니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경합이론으로 박사학위 하신 분을 한 분도 못 찾았습니다. 저 이론이 그렇게 웃기는 이론은 아니었습니다. 한 때는 퍽 잘나가는 이론이었는데 한국에는 어쩜 한 분도 안 계셨습니다. 저는 경제학 공부 하시는 분들한테 제일 큰 불만이 너무 다양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비슷한 주제로 전부 비슷비슷한 연구를 하시고 박사학위들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조금 섭섭합니다. 지금 세계 경제학은 생물학과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생물학과 손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선택에 가끔 후회를 합니다.‘돌아오지 않았다면 내가 혹시 지금쯤 Economic biology 분야에서 한 가닥 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최근에 굉장히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2008년 미국 발() 경제학 위기,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를 계기로 미국 경제가 전체가 다 흔들거리게 되었고 세계 경제가 모두 타격을 입었습니다. 설마 경제학자들이 이런 기업과 경제 전체의 구조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타이트하게 연결되어 있을 거라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경제학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었고 경제학자들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내내 경제학이 무엇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자성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미국 발 경제위기에 대한 총평이 나왔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내렸다는 결론이 기껏인간의 탐욕이 불러 일으킨 대재앙이었다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참 말도 안 된다, 경제학은 이런 결론을 낼 자격이 없는 학문이다라고 일갈했습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어떤 학문입니까? 경제의 주체인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벽하게 합리적이라는 전제를 두고 하는 학문입니다. 경제의 주체인 인간이 재래시장에 가서는 쪼그리고 앉아 장사하는 할머니와 콩나물 가격 10원을 가지고 실랑이를 하고는 집에 돌아와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회 환원도 많이 하고 좋은 기업이라며 5천원이나 더 비싼 기업의 상품을 덜컥 사는 행동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경제학이 있는 것인데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행동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의 예측이 계속 빗나가는 이유가 아마 거기 있었을 것입니다.

 

데니얼 카네만(Daniel Kahneman)이라는 심리학자가 10년 전인 2000,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경제학이 드디어 인간의 심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처 공부가 끝나기 전에 미국 발 경제위기가 터져버렸습니다. 드디어 경제학이 경제의 주체인 이 동물, 충동구매하고 괴팍한 행동을 하고 개성 충만한 이 동물의 행동과 본성, 그리고 심리를 이해해야만 되겠다고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경제학자도 아닌 주제에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 경제학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경제학은 경제의 주체인 인간을 기껏해야 입자 정도로 간주하고 숫자만 세왔습니다. 그런 경제학을뉴튼 경제학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뉴튼 경제학의 시대는 확실하게 끝이 났습니다. 경제의 주체인 인간 하나하나가 욕망 덩어리라는 것, 언제 어떤 짓을 할 지 모른다는 것, 돌발행동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한다윈 경제학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의 아버지가 아담 스미스가 아니라 찰스 다윈이라고 하기 시작했습니다.‘생물학자가 저렇게 제 맘대로 질러대도 되는 것인가?’하고 제 이야기를 들으실 것 없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의 스탠포드나 하버드 같은 곳의 신임 교수 몇 명만 찾아보십시오. 거의 행동 경제학, 심리 경제학, 진화 경제학을 하는 분들입니다.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는 8년 전 학교 매거진에우리는 진화 경제학으로 가겠다라고 선포했습니다. 다른 곳에 영향력이 없을까요? 하버드 경제학과가 그렇게 우스운 곳이 아닙니다. 이번 노벨 경제학상 두 분 중 한 분은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이고 한 분은 하버드 대학 교수입니다. 그런 곳에서 진화 경제학, 다윈 경제학으로 가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확실하게 지금, 경제학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저는 우리나라 경제학계가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다 똑 같은 공부 하신 것일까요? 제가 통섭을 꺼내놓고 나서 참 못된 버릇이 생겼습니다. 어디 가서 자꾸 윽박지르는 버릇입니다. 몇 달 전에 경제학 하시는 분들 앞에 가서 강의를 하다가 이런 못된 짓을 했습니다.‘선생님들, 제가 박사학위 논문 다 수거해서 전부 이름을 가리고 섞어 놓으면 자기 논문 못 찾으시죠?’그랬더니 다 웃으십니다. 어쩜 그렇게도 비슷비슷한 연구들을 하셨을까요? 세계 경제학이 지금 확실하게 다윈 경제학으로 방향전환을 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에 다윈 경제학 하는 사람은 한 손 안에 꼽습니다. 제가 다 아는데 다섯 명이 안 됩니다. 경제학이 상당히 뒷걸음질 칠 것 같은 그런 걱정에 불안합니다

 

아주 우스꽝스러운 연구 결과 하나 말씀 드려 보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파주, 여주에 아울렛 처럼 몰들이 생겼는데 미국의 큰 도시 외곽 지역에 가면 큰 쇼핑몰이 많습니다. 그 쇼핑몰에 남자 소비자와 여자 소비자를 각각 백 명씩 풀어놓고‘GAP이라는 옷 가게에 가서 바지 한 벌을 사와라하는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남자들은 쇼핑 잘 안 가지 않습니까? 하지만 어쨌든 차 몰고 와서 주차하고 몰에 들어갑니다. GAP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 안내판을 봅니다.‘G7이네?’하고 G7에 찾아갑니다. 입어보기도 조금 귀찮아 합니다. 그래서 바지를 그냥 대 봅니다.‘에이. 됐어그러고는 사가지고 갑니다. 다시 차를 몰고 갑니다. 이 전 과정이 평균 6분 걸렸습니다. 똑같은 숙제를 드렸는데 왜 여성들은 3시간 26분이 걸려야 하는가 하는 것일까요? GAP에 가서 청바지 한 벌 사라는데 왜 Macy’s 백화점에 들렸다가, 보석가게를 기웃거리다가 지금 구둣가게에서 구두 신어보고 계십니까? 남성과 여성은 쇼핑 행동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남성들도 쇼핑을 가끔 하긴 합니다. 어느 것 하나를 사야 하면 시간 내서 갑니다. 사고 나서는 돈을 지불하고 몹쓸 곳에 왔다는 표정으로 빨리 그 곳을 빠져나옵니다. 여성들은 어떻게 합니까? 뭐 하나 사러 간 김에 다 둘러보고 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우리는 그리 머지않은 옛날에 수렵채집활동을 하던 동물입니다. 지금은 이런 기계 문명을 일으켜놓고 살고 있지만 우리의 유전자는 남성들에게는 대충 벌거벗고 창이나 활 들고 동물 쫓아다니라고 만들어 졌습니다. 만날 그 짓 하다가 빈손으로 돌아올 남정네들을 생각해서 집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채집해서 저녁상을 차리는 일은 여성들의 일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서 우리의 유전자는 사실 변한 게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에 적합하게 진화한 유전자인데 우리는 그 동안 우리의 환경을 능동적으로 바꿔놓고는 끼워 맞춰서 살고 있습니다. 사실 굉장히 불편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수렵, 채집 생활이라는 것을 할 때 수렵은 남성이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냥이라는 것은 근육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는 별로 효율적이지 못 했습니다. 낚시만 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빈 손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습니다. 지금도 수렵, 채집 생활을 하는 오지의 민족들을 관찰하러 가면 저녁식탁의 모습은 다 똑같습니다. 남자는 말이 없습니다. 저녁식탁에 기여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석에서 조용히 먹습니다. 엄마가 다 장만한 것이기 때문에 엄마는 할 이야기도 다 하고 아이들한테 시킬 것도 다 시킵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내일 사냥 갈 거냐고 묻습니다. 요즘은 잘 잡히지도 않아서 안 나간다고 하면잘됐네. 그럼 내일은 집에서 지붕도 조금 고쳐주고 저것도 조금 해줘. 알았지?’라고 이야기합니다. 남자는 알았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에 성공하면 그 동물 가지고 와서 굽고 잘라주면서 고 단백질을 제공합니다. 그 날 한번, 그 한 두 시간 어깨 펴는 것입니다. 맛있냐고 확인 해 가면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빈 손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농후한 남편들을 생각해서 집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구하러 나간 것이 여성입니다. 어르신들 중에는 은퇴하고 집에 있으면서 사모님께서 자꾸 돌아다니신다고 화내는 분들 참 많으십니다.‘여자가 어딜 밖을 그렇게 쏘다니고 말이야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여성은 쏘다녀야 합니다. 냉이를 한 바구니 캐 가지고 . 다 했다하고는 집으로 쏙 들어오는 여성은 좋은 여성이 아닙니다. 냉이 한 바구니 캐 가고 마실 다녀와야 진짜로 훌륭한 여성입니다. 왜냐하면 마실을 돌면서 이웃 여자를 만나게 될 것이고 만나면어이구. 어디서 그렇게 냉이를 많이 캤어요?’‘저쪽 언덕에 지천이에요’‘지금 어디서 달래가 이렇게 많아’‘, 요 앞에서 다 캔 건데이런 식으로 정보 교환을 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무엇이, 그리고 언제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늘 있기는 하지만 그게 항상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올라오는 때가 있고 익는 시기가 있습니다. 마실 돌면서 그 사실들을 모두 관찰하는 것입니다.‘감이 언제 익으려나. 밤도 떨어질 때가 되었는데……’이를 모두 관찰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야 훌륭한 여성입니다. 그냥 남성처럼 목표지향적으로 사는 것만이 훌륭한 게 아닙니다. 남성은 사슴 잡으러 가야 합니다. 사슴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운 좋게 한 마리 잡으면 그걸 등에 짊어지고 옵니다. 그 때 마실 다닐 일 있을까요? 빨리 집에 가서 잘라야 합니다. 그러니까 남성들은 목표지향적으로 살았고 반면 여성들은 조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버릇을 못 고치셔서 지금도 몰에 풀어놓으면 그렇게 마실을 다니시는 겁니다. 남녀는 이렇게 다릅니다. 만일 마케팅 전략을 세우시는 분이 이런 사실에 대해서 전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면 그냥소비자라고 뭉뚱그려 전략을 세울 것입니다. 그런데 몰이라는 상황에서도 남성 소비자의 행동, 여성 소비자의 행동의 차이를 이해하고 나면 그 만큼 세련된 마케팅 전략이 나온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생물학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진화 심리학, 인지 과학, 뇌 과학 이런 분야가 지금 분명히 GAP에 가서 청바지 사야 되는데하면서도 구둣가게에서 구두 신어보고 계시는 여성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나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이런 학문이 발달하기 전에는 오랫동안 인간의 뇌란 그저 모든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는 하나의 종합 컴퓨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큰 칼로 회도 치고 과일도 깎는 것이 아니라 스위스 아미 나이프와 같다는 것입니다. 기능에 따라서 다 달리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CT MRI 등의 뇌 영상기법을 통해 어떤 것을 담당하고 있는 부위가 어디인지 전부 찾아내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모듈(module)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모듈들이 어떻게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경영학, 경제학이 뇌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얼마나 세련되어 지겠습니까? 지금 세계 경제학은 생물학 등 자연 과학과 손을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학이 아니라 이제는 경제과학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판도가 변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작년 8월 중순에 굉장히 흥미로운 동영상이 유투브에 올랐습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자동차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거기에 전시되어 있던 현대의 i30를 폭스바겐 회장님이 와서 올라타고 호통을 치는 모습을 누군가가 찍어 올린 것입니다. 유럽의 경차 시장은 폭스바겐 골프가 대충 점령하고 있는데 현대 i30가 슬슬 잠식해 들어오니 한국에서 도대체 차를 어떻게 만들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확인하러 오신 것입니다. 오시더니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를 돌려보고는 벌컥 하시는 이야기가우리 차는 이렇게 하면 쿵쿵 소리가 난다. BMW를 해봐도 소리가 나던데 이 현대차는 소리가 안 나잖아?’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는 것입니다. 옆에 지사장이 왔는데 여기 와이퍼 보이나? 우리 차는 여기 와이퍼가 튀어 나왔는데 현대차는 이렇게 쏙 들어가서 시야가 좋은 거 아냐?’하고 또 소리를 버럭 지릅니다. 나중에 제가 안 사실인데 이 분 주 특기가 자기 줄자 가지고 이 세상 모든 것을 재러 다니는 것 이랍니다.

 

줄자를 찾아 들고 백미러 등 사이 사이를 재고 하더니 이제는 줄자 건네주면서 저기 좀 재보라고 시킵니다. 어디를 재야 되는지 몰라서 버벅대고 있으니까 또 신경질 냈습니다. 4 20초짜리 동영상이었는데 아래 댓글이 장난 아니게 붙었습니다. 제가 몇 개 읽어봤는데 거의 비슷합니다. 조금 거친 표현인데,‘경쟁사를 이렇게 띄워주는 회장 놈. 물러나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서 호통을 치셨어야 되는데 현장에서 치다가 그 모습을 누가 찍어올린 겁니다. 저는 현대자동차 광고 역사 상 이렇게 기가 막힌 광고를 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1원 한 장 들이지 않고 말입니다. 그 이후 현대 자동차는 유럽에서 더 잘 팔리게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차들을 보면 왜 이렇게 뿌듯한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70년대 말 미국 유학을 가니까 미국에 코미디언들은 차 이야기할 때 티코를 가지고 코미디를 하곤 했습니다. 밟으면 찌그러질 것 같다고 이야기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차를 만들던 우리가 어느덧 모양도 예쁘고 성능 또한 훌륭한 차를 만들어냅니다. 경쟁사 회장님이 핏대를 세울 정도면 굉장히 알아주는 수준 인 것입니다.‘자동차를 잘 만들어봐라라는 숙제가 내려오면 우리는 제법 잘 합니다. 어디 꺼내어 놓고 견줄 수 있을 만큼 제법 잘 만듭니다. 반도체 역시 제법 잘 만듭니다. 배도 잘 만듭니다. 심지어 배는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우리가 제법 잘하는 숙제들이 있는데 여전히 우리가 잘 못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출제입니다. 출제와 숙제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우리가 출제를 하고 세상으로 하여금 숙제를 하도록 했던 것이 뭐가 있는 지 자꾸 생각 해보지만 그렇게 뚜렷한 무언가가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이 분 돌아 가신 지도 꽤 흘렀습니다. 살아 생전에 까만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꼭 잊을 만 하면 또 새로운 모델 만들어 가지고 나와서 그냥 팔지도 않고 꼭 설명회를 하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입니다. 새 상품 들고나와서 거짓말을 하며 한번 보여주면 세계가 자지러집니다. 참고로 제가 인간 심리 중에 가장 이해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아이폰 새 모델이 나왔다고 하면 밤새 애플 매장 앞에서 줄을 서고 있다가 가게 문 열면 뛰어 들어가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3일 후에 사도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저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비슷한 기계 만들어 놓고 구시렁거립니다.‘속도는 우리가 더 빠르지. 해상도는 우리가 더 낫지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식의 소리를 백날 하면 뭐 합니까? 우리는 저 양반이 출제하고 난 다음에 굉장히 열심히 숙제를 하는 모범생일 뿐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처음 들고나와서 했던 퍼포먼스 기억하십니까? 실제로 그 때 보신 분도 계시겠지요? 전화기 하나 팔아먹으려고 나와서 꼭 저런 짓까지 해야 되는 건가 싶었습니다. 무대 한 가운데 실제로 저런 이정표를 만들어 놓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자기 아이폰은 technology, 과학기술과 Liberal arts, 인문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했다고 합니다. 저 그것 듣다가구라가 저 정도되면 신의 수준이다. 조그만 전화기 하나 들고 무슨 놈의 구라가 저렇게 세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구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저 양반의 말로는 그 작은 아이폰이라는 기계 그게 등장하니까 세상 사람들이 제 발로 그 기계 안으로 기어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서 경쟁적으로 앱을 만들어서 올리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어느 여학생을 칠 뻔 했습니다. 파란 신호로 바뀌고 시작 줄에서 가려는데 여학생이 그냥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클락션을 빵- 누르고 야단치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저를 한번 쓱 보더니 그냥 갑니다. 그 여학생은 스마트폰 안에 들어가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바깥 세상과 교신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지하철 타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무도 옆에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스마트폰 안에 들어가 살고 있습니다. 남 욕 할 것도 없습니다. 저희 집도 이상합니다. 제 아들놈 방학 때 집에 오면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습니다. 제 안사람은 거기 가서 문 두드리기도 싫다고 문자를 날립니다.‘저녁 됐다. 나와라, 오바.’같은 집에 살면서도 스마트폰 안에 들어가서 그 안의 세계에서 교신을 합니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스티브잡스가 그런 세상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아이폰은 분명히 과학기술로 탄생한 작은 기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기계 안에 세상을 담았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그 기계 안에 열리고 말았습니다. 과학이 인문, 사회를 품은 것입니다. 참 어마어마한 일을 해 낸 것은 틀림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애국자는 아닙니다. 그런데 벌써 몇 년째 이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소득이 2만불에 걸려서 못 빠져 나온 지가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우리나라가 2만불이 될 때까지는 수직 상승하던 나라 아닙니까? 그러다가 2만불이 무슨 마의 덫이길래 거기에 걸려서 거의 10년 째 여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나를 고민하던 도중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강의를 할 때마다 답을 찾기 위해 질문을 했습니다. 지난 3년간은 저한테 답을 주신 분이 단 한 분도 없었습니다. 질문은 바로대한민국 국민보다 더 죽으라고 일만 하고 사는 국민이 있는가?’ 입니다.‘내가 세계를 조금 돌아다녀봤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는 지도 모르고 삶의 질, 그 까짓 거 접어두고 그저 밤낮으로 죽으라고 일만 하는 그런 국민들을 내가 본 적이 있다하시는 분 계십니까? , 안 계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제가 졌습니다. 어떤 분이 저더러 전공이 뭐냐고 묻습니다. 제가 하도 오지랖 넓게 이러고 다녀서 인가 봅니다. 그래서 답변은 이렇게 합니다.‘관찰하기입니다.’그냥 관찰하는 것이 정말 제 주 전공입니다. 동물 행동을 관찰하고 우리 사회 변화를 관찰하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관찰을 조금 할 줄 아는데 제 관찰에 의하면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우리입니다. 이웃나라 일본 사람들이 삶의 질 접어놓고 일만 죽으라고 밤낮으로 하고 삽니까? 그 사람들 여행 잘 다니고 잘 즐깁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탄탄한 경제를 가지고 있는 독일 사람들의 노동 시간이 우리나라 보다 더 깁니까? 저 남태평양 피지제도 사람들이, 저 남미 볼리비아 사람들이, 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죽으라고 매일 일만 하고 삽니까? 천만의 말씀 입니다. 제 관찰에 의하면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저희 정말 무지하게 열심히 삽니다. IQ검사 결과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은 2, 3등 밑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머리 좋다는 것은 이제 전 세계가 다 압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입만 열면 한국 이야기를 합니다. 요즘 생각하면 유태인들도 이제는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도 제일 좋고 일도 제일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모양 이 꼴 일까요? 왜 우리는 3만불, 5만불에 달성하지 못합니까? 제 관찰에 의하면 단지 그 이유가 전국민이 그저 매일같이 하는 일이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죽으라고 숙제만 다 열심히 하고 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도토리 국가라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전 국민이 똑같은 공부했습니다. 전 국민이 다 똑같은 시험을 봅니다. 수능 시험이라는 것을 보고 나서 전 국민이 일렬로 한번 서 봅니다. 일렬로 서서는 상위권 대학부터 끊어 배치됩니다. 그렇게 하면 달리 가르치기나 해야지 이 대학이 가르치는 것이나 저 대학이 가르치는 것이나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전 국민이 다 고만고만한 연구와 공부를 했습니다. 나와서 도토리들끼리 키 재고 앉아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래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전 국민이 다 스티브 잡스 같아서는 이 나라 망합니다. 그것만은 분명히 압니다. 그런 사람들 난장판 만들어 골치 아픕니다. 그러니 제발 숙제만 열심히 해주십시오. 본인에게도 좋고 나라에게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 사이에 가끔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한 둘씩은 있어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두터워 질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 다양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괴짜들이 모여서 뒤섞이고 서로 소통하고 하는 가운데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다빈치,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옛날에는 이 분들처럼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런 분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드뭅니다. 스티브 잡스가 사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을 했습니까? 서체 조금 개발했고 소비자 마음 조금 읽었던 정도인데도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는 저 사람들 기억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 사람들 흉내 내는 누군가가 하나 나타나니까 환호성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많았는데 왜 지금은 없을까요? 아주 간단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옛날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서 한 양반이 아무 분야나 파고 돌아 다녔고 조금만 파면 그 바닥이 금방 보이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금년이 정약용 선생님 250주년입니다. 정약용 선생님이 지금 우리랑 같이 사시면 그 분이 그런 대단한 토목 공학자가 되실 수 있으셨을까요? 정약용 선생님 후손이 계시면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제 생각에는 택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약용 선생이 만약 우리 곁에 오서 지금 이 세상을 본다면 아마 기절하실 것입니다. 저 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적어도 19세기, 20세기 이 두 세기가 지났습니다. 지난 두 세기는 역사에서 가장 멋진 세기였습니다. 과학의 발달 덕택에 우리 인류가 축적해 놓은 지식의 총량을 생각해보십시오. 어마어마합니다. 어느 한 개인이 두 세 분야를 완벽하게 통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전략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좁고 깊게 파고 들어가는 전략입니다. Specialization, 전문화입니다. 예전에 학교에 다닌 우리들에게는 각자 전공이 하나씩 있습니다. 한 우물 파라고 해서 우리는 한 우물 파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21세기로 들어오더니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한 우물만 파다가는 잘못하면 쪽박 찬다는 것입니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소양을 갖춘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융합, 통섭과 같은 이야기가 들리는 것입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님이 첼로를 하는 장한나 양에게 덕담을 하는 신문기사에서우리 옛말에 이런 말이 있는데 들어보았느냐라고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우물을 깊이 파려면 넓게 파라라고 쓰신 것을 읽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해 너무 억울했는데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 입니다. 어느 정도 깊이 파려면 삽질할 공간이라도 일단 확보해야 될 것입니다. 깊이 파려면 일단 어느 정도 넓게 시작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한번 해보십시오. 이 어마어마한 지식의 세계에서 혼자서 한번 넓게 파기 시작해 보십시오. 전 학문 분야에 걸쳐서 파기 시작해 보십시오. 평생을 노력한들 파기는커녕 표면도 한번 다 못 긁어보고 운명하실 것입니다. 그 것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식의 홍수, 지식 세계입니다. 그래서 나올 수 밖에 없던 개념이 저는 통섭이라고 생각합니다.

 

Consilience, 통섭은 19세기 영국의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월(William Whewall)이라는 분이 만들어낸 단어입니다. 영국에서는 하도 사람들이 안 써서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죽은 단어입니다. 그것을 제 지도교수님이 책의 제목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미국에서는 별로 많이 팔리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제가통섭이라는 그릇에 담아내었는데 이렇게나 많이 번져나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쩌면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주장한 것이 아니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때마침 제가 꺼내 놓은 것입니다. 제 딴에는 통섭이라는 단어를 한자를 조합해서 만들었고 그렇다고 이야기했더니, 한 불교 철학 하시는 분이 저에게 제정신이냐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통일신라 시대 때 원효대사님이 화장사상, 화음의 개념을 설명하실 때 늘 쓰시던 단어인데 백주 대낮에 자기가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냐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망신살이 뻗쳤지만죄송합니다. 제가 불교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서요. 그렇지만 제가 어찌되었든 원효대사님하고 통했잖아요. 그러면 됐죠, 이렇게 얼버무리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는 이렇게 빠르게 번져 나갔을까요? 때가 되었다는 것도 있지만 저는 우리 문화에 이미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원효대사님이 그 옛날부터 설명도 하신 것도 있겠고 우리에게는 비빔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계인들이 요즘 비빔밥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합니다. 남들이 좋아한다고 너무 으쓱대지 말고 조금 솔직해 져 보기로 합시다. 사실 이게 음식입니까? 그릇에 밥을 떴으면 그 밥을 밥으로 두지 왜 그 밥 위에다가 온갖 것을 그렇게 집어 던져 놓았을까요? 온갖 채소, 나물, 거기에 또 달걀은 왜 들어갑니까? 솔직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근데 거기 불고기 넣고 고추장 풀고 참기름 두르고 비비면 저 하나하나를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맛이 창조되는 겁니다. 세계인들이도대체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걸 개발했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나?’라고 하지만 우리가 개발하려고 개발했나요? 그저 남은 음식 처리하려고 어쩌다 만들어 낸 것 아닙니까? 하지만 어찌되었든 서로 어울리지도 않는 기가 막히게 다른 것을 한데 섞어서 새로운 맛을 창조해 낼 줄 아는 이런 능력, 세계에 이런 민족이 없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 민족에게 통섭은 그냥 문화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제가 비빔밥 이야기를 지난 몇 년 했더니 제 선배 교수님이 어느 날 저에게최교수는 매 끼 비빔밥 먹나?’라고 질문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또 그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작년에 제가 터득했습니다. 생각해보니까 비빔밥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밥 어떻게 드세요? 숟가락으로 밥 한술 뜨고 젓가락 들고 반찬을 집습니다. 반찬 하나만 드십니까? 두 세 개를 한 입에 넣으십니다. 만약 첫 술에 두부, 김치, 콩나물 이렇게 넣었다고 칩시다. 너무 맛있다고 그 끼니는 계속해서 두부, 김치, 콩나물의 조합으로 식사 끝내는 분 대한민국에 단 한 분이라도 있을까요? 우리는 매번 바꿉니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가 먹어야 하는 음식이 접시에 담겨 나옵니다. 그 사람들은 뭘 먹어야 되는지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쇠스랑 같은 것으로 접시에 담긴 음식을 입에 쓸어 넣으면서 대화를 즐깁니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식탁이 대화의 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서 밥상머리에서 떠들다가 어머님한테 혼나신 기억 다 있으실 것입니다. 입 안의 음식물이 나올까 봐 야단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도 한 이유이긴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밥 한 술을 입에 넣은 다음 젓가락을 들고 내가 이번에는 어떤 조합을 만들어서 기가 막힌 맛의 향연을 한번 만들어 볼까?’ 고민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언제 떠들 여유가 있습니까? 대한민국 사람들의 뇌는 조합을 만들려고 밥 먹는 순간에도 쉴 수가 없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섞는 문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도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일본에 동료들이 여럿 있어서 일본에 오고 갈 일이 있는데 그 때마다 참 숙연해 집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고 성실한지에 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이번에 여름에 가서 보니 일본 사람들이 에어컨을 끄고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더 후텁지근한 일본에서 에어컨 없이 살기 참 힘든데 그들은 원전 없이 과연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해 국민 전체가 실험을 한번 해보자고 해서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대단했습니다. 한 번은 동경대학에서 강의를 하는데 요코하마 교수가 자기 대학에도 와서 한번 강의를 해 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애매하다고 했더니 기차만 타고 오라고 합니다. 그 다음날 신칸센을 타고 요코하마 역에 내렸습니다. 제가 일본 동료교수들 수십 명 아는데 자가용 가지고 있는 교수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전부 기차를 타고 다닙니다. 그런데 요코하마 역에서 내리니까 이 교수는 자가용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차를 타고 요코하마 대학까지 가는 데는 한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데 시동을 40번은 끄고 왔습니다. 신호에 걸려도, 언덕에 섰을 때도 시동을 끄는 것이었습니다. 끄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시동을 끄길래 제가 물어봤습니다.‘이게 진짜로 절약이 되는 것이 맞냐? 혹시 켤 때 연료가 확 들어가서 헛일을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입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일본에서는 이런 절약에 관한 실험이 수십 번 반복이 되기 때문에 확신한 증거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몸에 배었습니다.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아끼면 얼마나 아낄까 싶어서 그냥 시동을 켜 두고 볼일을 보고 돌아오기도 하는 우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 한번은 저녁 식사를 하러 모였는데 만난 지 십 몇 년 되는 교수가 왔습니다. 진딧물 연구하는 친구인데, 십 몇 년 전에 제가 우리나라로 초대해서 같이 지리산을 등반하다 진딧물 신종 발견해가서는 둘이 논문을 함께 쓰기도 한 가까운 동료입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 요즘은 무슨 연구를 하냐고 물었는데 십 몇 년 전에 하던 연구랑 똑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교수 지금 삼십 몇 년 째 진딧물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삼십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진딧물 뒷다리의 털 수 세는 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기초를 다지는 일본의 힘 입니다. 그 덕에 일본에서는 노벨상도 계속 나오게 되는 것이고 참 존경스럽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에는 술이 약간 취했는지 이상한 소리를 질러대고 왔습니다.‘솔직하게 이제 너희들 걱정된다. 어떻게 된 것이 너희들은 앉은 자리를 돌려 앉지를 못하냐?’이렇게 말입니다. 그 교수에게서 진딧물을 배워 진딧물 논문을 딱 두 편 썼는데 그 교수 다른 논문들보다 저 혼자 쓴 논문이 더 많이 읽힙니다. 저는 이 반골 기질을 어쩔 줄 모르고 똑같이 하기 싫어서 연구를 뒤집어 보기도 하고 이리 저리 이상한 짓을 했었는데 그 것이 재미있다고 제 논문은 인용이 퍽 많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뻐기면서융합의 시대이고 통섭의 시대인데 너네 들은 어떻게 매뉴얼대로만 하고 이러고 앉아있니?’이야기했습니다. 일본을 경험해 보신 분들은 다 동의 하실 텐데 일본 사람들 정말 융통성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질러대고 왔습니다.‘어쩌면 우리 한국이 앞으로 더 잘 될 것 같다. 너네들 너무 앞뒤가 꽉 막혀서 어쩌려고 그래?’가까운 친구들이니까 이런 이야기도 하며 술 한잔하고 왔는데 조용한 게 영 기분 나빠 하는 표정이긴 했습니다. 기초를 다지고 기본기가 충실한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도 다 압니다. 그러면서도 이제 더 이상 어느 한 분야에 매몰되어 있는 시대가 아니라 소통하고 섞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21세기는 우리에게 굉장히 유리한 시대가 아닐까?’하는 은근한 기대를 해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이고 답답합니다. 교육은 문과, 이과 나누어서 가르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현실입니다. 교과부, 지경부는 융합연구를 하자고 매일같이 모입니다. 모여서는 5, 6년 째 벌써 융합연구의 허와 실, 융합연구의 문제에 대해서만 논의하고 있습니다. 답답해 미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회의에 가서 이상한 짓 한번 했습니다. 최재천 교수한테 1년에 100억씩 500억만 줘 봐달라고 했습니다. 500억 다 쓰고 어느 날 와서 노력은 많이 했는데 아무것도 건진 게 없네요. 죄송합니다이래도 욕하지는 말아달라고 말입니다. 제가 500억 쓰는 동안에 전국의 연구자들 수백 명하고 소통할 것이고 우리끼리 서로 한 가지씩만 배웠다고 쳐도 500억이 아깝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는 경제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가 같이 융합연구 시작한 지 6개월이 안되었는데 특허냈냐, 논문냈냐, 영수증 챙겼냐고 저희를 득달합니다. 융합연구는 연구결과가 그렇게 빨리 나오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득달을 하니까 융합연구 한번이라도 해본 연구자는 두 번 다시 안 합니다. 연구 결과도 빨리 안 나오는데 자꾸 득달하니 다음 연구비 받기가 난감해지기 때문에 또 하지 않습니다. 멍석만 펴주면 전 세계에서 우리가 제일 잘 할 것 같은데 왜 그러고 있는지 참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지경부와 교과부에서 여러 가지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내년부터는 상당히 융통성 있는 운영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양에는 융합연구가 대세라더라그것 틀린 말 입니다. 대세 정도가 아니고 현실입니다. 거의 모든 연구가 다 융합연구 입니다. 지금 누가 한 울타리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다 넘나드는 시대입니다. 우리도 해야 합니다. 멍석만 펴주면 우리 정말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겁도 없이 새로운 학문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아직은 아무도 호응을 안 해줘서 혼자 떠들고 있지만 포기 안 할 것입니다. 혹시 한 5년 뒤에 카이스트 의생학과 이런 게 생길지 아무도 모릅니다. 바로의생학이라는 학문을 고안해 낸 것입니다.‘()’자가 헤아릴 의자입니다. 의태어(擬態語) 할 때자입니다. , 흉내 낸다는 뜻 입니다. 자연을 흉내 낸다고 보시면 됩니다. 벨크로(Velcro)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들 아시는 찍찍이입니다. 사실 우리가 발명한 것은 아니고 자기의 씨앗을 동물들의 털에 붙여 멀리 이동시키던 식물을 본 따서, 진화의 역사를 통해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베낀 것입니다. 사실 우리끼리 베끼면 대학 총장도 못하고 장관도 못 합니다. 표절은 불법이기 때문에 표절 때문에 떨어져 나간 분들 여럿 계십니다. 그러나 자연을 표절하는 것은 합법입니다. 자연이 우리를 고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연을 매우 잘 표절한 대한민국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지금 MIT의 김상배 교수 입니다. 연세대학 기계공학과 나왔고 스탠포드 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를 하신 분입니다. 동남아시아 여행하시다 호텔 벽면 천장에 붙어서 기어 다니는 게코(Gecko)라는 도마뱀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이 분이 그 게코의 발바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발바닥에 나있는 털, 섬모를 그대로 베꼈습니다. 1초에 4cm, 비교적 빠른 속도로 미끄러운 유리 벽면을 그냥 타고 오르더랍니다. 이 것을 타임지가 2006올해의 발명으로 선정하였고 연말에 크게 소개했습니다. 김상배 박사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고 하버드를 거쳐서 MIT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년 전, 보스턴에 가는 김에 잠깐 찾아 뵈어도 될지 이 교수님께 이메일로 여쭈었습니다. 제가 제 강연에서 몇 백 번 이름을 이야기해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저한테 어서 오시라고 맞아주었습니다. 연구실에 가 보았더니 도마뱀만 베끼는 게 아니고 온갖 동물들을 다 베끼고 앉아 있습니다. 제가 김상배 박사님, 이게 무슨 발명입니까? 순 표절이지라고 했더니 자연을 표절하는 것은 엄연한 발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계속 연구 해 달라고 이야기 하고 왔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신칸센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면서 표면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서 밤에 소리도 없이 날아다니는 올빼미의 깃털 표면을 시뮬레이트 하고 있고 앞모양은 물총새의 부리모양을 베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기중기는 무거운 것만 집을 수 있지만 코끼리 코는 무지무지 강인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땅콩까지 집을 수 있는 섬세함까지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끼리 코 기중기를 만들어 내는 연구가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보트는 빠지면 안 되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물을 튀기며 물 위를 달렸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한 회사가왜 안되냐?’고 의문을 품고 돌고래 보트를 만들었습니다. 모양도 돌고래처럼 예쁘게 만들고 행동도 돌고래와 흡사합니다. 솟구쳤다가 자맥질했다가 뒤집기도 합니다. 문제는 저런 것 몇 백대 소양호에 풀어놓으면 사고가 많이 날 것 같은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없어서 못 판다고 합니다. 자연을 표절하면 때로 이렇게 기가 막힌 대박을 칩니다. 박쥐는 완벽한 암흑 속에서도 물체를 피해 다니고 나방도 잡아먹습니다. 초음파를 내보내고 그게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것을 잡아서 전부 파악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에코 로케이션의 메커니즘을 이용해서 시각 장애인들께 지팡이를 만들어 드리고 있습니다.

 

자연에서는 우리가 배울 점도 많고 실제로 우리는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산에 등산 갔다가 바지에 씨앗 붙어 본 경험들은 다들 있으시지요? 우리는 그걸 떼면서 귀찮다고 욕만 했습니다. 그런데 스위스의 그 사람은 여기에서 착안하여 벨크로(Velcro)를 만들었습니다. 벨크로는 심장병 수술에까지 쓰이는 어마어마한 초특급 patent, 특허가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그 동안 어느 천재가 우연한 기회에 자연에 있던 아이디어를 가져다 쓸모 있게 소개 할 때까지 기다리고만 살았을까요? 서두에 말씀 드렸던 것과 같이 저는 연구비도 없고 참 불쌍한 과학자인데 요즘 열심히 떠들고 다닙니다. 생물학 결코 가난한 학문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잘 하면 생물학에서도 기가 막힌 대박이 터질 수 있습니다. 자연에 있는 아이디어들 그냥 가져오기만 해도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 머리 속에서 매일 아이디어 짜내느라고 애를 쓰는데 막상 아이디어 꺼내놓기만 하면 회장님이좋았어. 빨리 만들어그러시나요? 검증을 해야 합니다.‘사회에서 먹힐까? 시장에서 통할까?’이런 검증만 몇 년씩 하다가 결국 없어지는 아이디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다윈 선생님이 말을 빌리자면, 자연에 있는 아이디어는 이미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에 혹독한 검증을 수천만 년 겪어 살아남은 것들입니다. 그 혹독한 검증과정에서 실패한 놈들은 다 멸종해서 사라졌습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 예를 들어 까치, 소나무, 은행나무, 귀뚜라미 이런 것들은 모두 한 가닥 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입니다. 그 한 가닥의 비밀을 캐다가 우리 입맛에 맞게 조금만 각색하면 그 아이디어가 우리 머리 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보다 백 배, 천 배 막강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어마어마한 검증과정을 이미 거친 것 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쓰지 못하고 그냥 놓아 두었던 자연의 아이디어들을 주우러 가자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공짜라는 것입니다. 먼저 줍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세상에는 자연과 소통하는, 자연을 표절하는 학문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미 6년 전에 서울대학교에서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제 연구실에의생학 연구센터를 만들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시설까지는 못 만들고 문에 이름 하나 써 붙인 것입니다. 그래도 그 동안 기업 대 여섯 군데와 브레인 스토밍도 같이 해봤습니다. 참 재미있었습니다. 아직 대박 감의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기업은 풀어야 될 숙제를 자꾸 이야기하고 저희는 자연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서 두어 개가 가끔 클릭하는 아주 재미있는 경험을 해 봤습니다. 자꾸 하다 보면 뭔가 이루어 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굉장히 서글픈 경험을 했습니다. 하버드 대학은 기부금을 그렇게 잘 걷는 대학으로 유명하고 하버드 역사상 개인 최대 기부금액은 2009년 북유럽의 Wyss라는 사람의 125 밀리언 달러 입니다. 그가 기부하면서 꼬리표를 달기를자연의 아이디어를 연구해서 실용에 써주세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Wyss institute가 생겨났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2006년에 벌써 자연을 표절하는 연구소를 차려놨었는데 그걸 저를 주셔야지요이야기했습니다. 하버드 대학으로 뛰어가서 보았더니 저 연구소에 제가 옛날에 연구 같이 했던 동료들이 대여섯 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나에게 올 돈 지금 가로챈 것 모르냐고 신경질 냈더니 언제든 와서 연구하라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이 이렇게 시작했으면 앞으로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 목요일에 대구에 과학기술대학이 새로 생기는데, 거기에 열리는 국제학회의 기조강연에서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제가 생체모방을 영어로 ‘Evolutionary biomimetics’ 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이제 시작이고 진화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목요일 강연에서 이야기 할 것입니다. 현재 참 재미있는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 번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저는 융합과 통섭이 최대의 덕목처럼 보이는 21세기, 지금 이 시대에 우리 교육의 현실이 너무 통탄스럽습니다. 중학생이 글 한번 써서 냈는데 선생님이 읽어보더니넌 글이 안 되는구나. 이과 가라하고 수학시험 한번 잘못 봤더니넌 수학을 못하니까 문과 가라라고 합니다. 그렇게 갈라져 버립니다. 무슨 놈의 교육이 못하는 것을 가르쳐줄 생각은 안 하고 못 하는 것만 요리조리 피해가라고 요령만 가르쳐줍니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요즘 책을 쓰고 있는데 인권문제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는데 국가가 무슨 권리로 저한테 나머지 반은 배우지 못하도록 합니까?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배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이제 문과와 이과의 장벽은 없애야 합니다.

 

제가 제 입으로 이야기하기는 쑥스러운데 저는 조용한 혁명을 하나 일으켰습니다. 당선되시면 문과, 이과 장벽을 없애자고 대선 주자들에게 이야기를 하시게 하자, 몇 달 전부터 이 문제로 고민하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저보고 총대를 매라고 해서 또 총대를 맨 수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토론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느 분이사실은 대선주자한테 하는 것보다 서울대 입학처장님께서 하시면 바로 끝나는 일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입학본부장님께 정말 뵙고 싶다고 시간 조금 내 주실 수 있으시냐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여덟, 아홉 모인 모임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한참 토론을 했습니다. 이제 정말 바뀌어야 될 때이고 서울대만 바뀌면 우리나라가 다 바뀐다고 한참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입이 무거우신 분이셨습니다. 저희한테 아무 이야기도 언지를 주지 않고 가셨습니다. 그래서‘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 박사의 또 다른 책,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선물로 보내드리면서혁명은 때로 조용히 일어납니다. 본부장님이 그냥 조용히 하시면 끝날 수도 있습니다이야기했습니다. 2주 전에 신문 보셨나요? 서울대가 이제 문과, 이과 장벽 없이 신입생을 뽑아보겠다고 발표 했습니다. 사실 발표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신문에서 살짝 가져다가 1면에 펑 때려서 천하에 공개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총장님한테 불려가 자초지종 설명을 드렸답니다. 최재천 교수의 꼬임에 넘어가서 불려갔다고 이야기 했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다른 자리에서 오연천 총장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휘젓고 다니냐고 물으시기에 죄송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깨를 툭툭 치고 가시면서잘했어한 마디 하셨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서울대학에 있을 때는 그런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오는데도우린 안돼. 그런 놈들을 데려다가 우리가 어떻게 가르쳐?’라고 완강하게 거부하는 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고 합니다. 다수가 찬성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시대가 변했다고 합니다. 큰일이 없는 한 어쩌면 내년 입시부터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 터지고 난 다음 다른 대학도 줄줄이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이제 드디어 우리도 정말 다양한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미 고등학교에는 법적으로 문과, 이과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6차 교육과정부터 없어졌지만 대학이 그런 입시제도를 바꿔주지 않는 바람에 고등학교는 실질적으로 그것을 고수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대학이 그것을 풀어주면 고등학교 교육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저는 조금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과, 이과 따로 배우신 분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상은 이제는 넘나들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으로 자꾸 변해가고 있는데 다시 대학에 돌아갈 것도 아니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미래학자들이 앞으로는 직업을 평생 대 여섯 번은 바꾼다고 합니다. 싫으나 좋으나 95, 100세까지는 살 것이고 노동 인생도 60, 70년 됩니다. 대략 60에 은퇴하시고 집에서 놀고 먹는 것 기대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정년제도는 조만간 없어집니다. 절대로 정년제도가 유지 될 리가 없습니다. 집에서 놀고 먹어야 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눈덩이같이 불어나고 일 할 사람의 숫자는 이렇게 줄어드는 데 무슨 재주로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정년이 계속 뒤로 미뤄지거나 아예 없어지거나 이 둘 중의 하나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65, 70년 노동인생을 한 직장에서 버틸 수 있을까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쫓겨나고 또 다른 직장을 하다 보면 대 여섯 번, 일고 여덟 번 갈아타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공부는 대학 때 전공 달랑 하나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대 여섯 번, 일고 여덟 번의 직장을 바꾸시겠습니까? 제일 좋은 방법은 대학에 다시 돌아가서 학위를 또 하는 겁니다. 저는 대학도 그렇게 변해줘야 된다고 대학 총장님들과 만나면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대학 졸업생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학위를 할 수 있도록 대학은 끊임없이 A/S를 해야 된다고 말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보고 대학에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직장으로 찾아와서 가르치고 다음 학위를 만들어서 옆구리에 하나씩 채워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학이 그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열심히 이야기 하지만 아직 아무 총장님도 시작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 조금 답답합니다.

 

현실적으로 그 것이 안 되는 상황이니 저는통섭의 식탁에서 기획 독서를 해야 된다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제가 기획 독서 이야기를 하니까 갑자기그런 게 있었나?’하는 표정들을 하시는 데 그렇다면 그 동안 하던 독서가 무슨 독서인가를 생각하실 수 밖에 없으시지요? 기획독서의 반대는 아마 취미독서 정도 됩니다. 취미독서는 눈만 나빠지는데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하실 건가요?

 

제가 하나 성공했으면 지금쯤 무지무지한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 하나 있는데 지금 십 몇 년 성공은 못 하고 자꾸 시간만 가고 있습니다. 컴퓨터 하는 분과 십 몇 년 전에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그 분들은 저만큼 심각하지 않았나 봅니다. 바로 입체 글자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눈은 3차원 공간을 보라고 진화했습니다. 우리는 입체적인 물체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2차원 공간에다가 글자를 박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발명한 것 중에 책처럼 바보 같은 발명품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전 세계인들의 눈을 다 망가뜨린 것이 바로 책입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보는데 있어 글자가 입체로 보이게 하는 방법이 없는가에 대해 이 연구를 쭉 해오고 있습니다. E-Book이 나오기 전에 제 연구 결과가 나와서 특허를 땄다면 기가 막히게 대박을 치는 건데 못하고 지금 이렇게 있습니다. 눈 나빠지는데 다 아는 내용 읽으면서 히죽거리는 그런 독서는 그만하시고 기획 독서를 하자는 것입니다. 책이란 원래 내가 모르는 분야의 지식을 얻고자 해서 있는 것입니다. 모르는 분야를 기획해서 공략해야 합니다. 내가 모르는 분야를 읽는데 잘 읽힌다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두 권째, 세 권째 읽으면 참 신기하게도 책장이 넘어가기 시작합니다. 읽히기 시작하고 노하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제가통섭의 식탁서문에 이런 시나리오를 하나 썼습니다. 40대 중반에 첫 직장에서 쫓겨나서 다른 직장 없나 둘러보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다 길에서 대학 동창을 만납니다.‘어이구, 반갑다. 뭐하고 지내냐?’‘나 직장에서 나와서 지금은 다른 할 것 없나 찾고 있어. 넌 뭐하냐?’‘난 조그만 사업하는데’‘뭐 어떤 거 하는데?’‘이야기해도 모를 거야’‘아니, 뭐 하는데?’‘나노 과학의 무엇을 가지고……’ 그 순간 나노 과학에 대해서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보지 않은 양반이면 어떨까요? 그 얘기 해본들 아무 쓸 데가 없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악수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경영학하고 첫 직장 얻어서 다니면서도나노 과학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나도 나노 과학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하고 책을 붙들고 씨름했던 사람은 그 순간에 이렇게 이야기 할 것입니다.‘나노도 굉장히 종류가 다양한데 어떤 거 가지고 하니?’‘탄소 튜브를 가지고 뭐……’ ‘, 그거 요즘 나온 연구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던데이렇게 그 친구와 이야기가 길어지고 심지어 그 사업에 뛰어드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첫 직장 얻을 때, 노벨 물리학상 받았다고 모셔가는 것 아닙니다. 요즘은 전공과목 다섯 과목만 들으면 전공 했답시고 졸업시킵니다. 전공 분야에 대해 알면 뭘 그렇게 대단하게 알까요? 그저 옆의 친구보다 요만큼 더 공부했다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직장은 그렇게 찾는 것입니다. 두 세 번째 직장도 책 한 권 더 읽은 것으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노 과학에 대한 책 두어 권 읽고 나면 제가 나노에 대해서 뭐 아는 줄 알고 신문에 나노 특집 기사가 나면 그걸 또 읽습니다. 지나가다 나노 강연이 있으면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 읽은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신문 넘기면서요즘 신문에는 읽을 게 없어라고 합니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점점 그 분야를 공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노, 양자역학, 진화생물학, network theory 등등 하나씩 공략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독서가 재미없지만 한 분야, 두 분야 하다가 보면 그것도 재미있습니다. 공략하는 기가 막힌 재미가 있습니다. 첫 분야 공략할 때는 당연히 힘듭니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공략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처음처럼 힘들지 않습니다. 새로운 분야로 진입하는 노하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런 식으로 기획독서를 하면서인생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노력을 하는 것이 인생 100세 시대에 중요한 전략 중 하나가 아닐까생각 해 봅니다. 너무 오래 떠들었으면 용서 하시고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질문 1. 이과, 문과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드시기 위해 노력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강연 중에 국민소득 2만 불의 덫을 말씀 하셨는데, 이에 대해 산업계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탈피 할 수 있을 지 고견을 들려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산업계에 구체적인 처방을 내릴 만한 능력에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여러 기업에 초대를 받아서 강연을 해보면서 느낀 것은 이제 이런 시대에 정말 넘나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 대기업 그룹에서는 구글을 흉내 내어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 사례도 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인사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공부를 한 사람들을 잔뜩 모아놓고는 이제부터 다른 것을 공부하면서 넓혀보라고 하는 것 보다는 다양한 인재를 모아서 섞어 놓아야 힘들지만 그 안에서 서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열심히 많이 떠들다 보니까 한 두 군데 기업에서는 요즘 우리 기업이 굉장히 다양하게 사람을 뽑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제가 또 하나 준비하고 있는 책이 하나 있는데 하버드 웨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저는 하버드 대학에서 기숙사 사감을 약 10년 했습니다. 그래서 하버드 대학의 학생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밤낮으로 10년을 관찰했고 그래서 조금 압니다. 위키피디아에 들어가서 하버드 대학이라고 치면’The first corporation in the United States’ 라고 나옵니다. 우리말로 직역을 하면 미국 최초의 기업입니다. 하버드 대학은 기업입니다. 하버드 코퍼레이션이 있습니다. 거기는 이 세상에서 제일 돈 놀이를 잘 하는 기업 중 하나입니다. 고리대금업자회사입니다. 저 월 스트리트 사람들보다 월급이 한 배 반이 더 넘습니다. 지난 2008년 그 해 해지펀드에 너무 많이 투자했다가 하버드 자산의 1/3을 날린 엄청난 사건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당히 복구 했습니다. 1년에 어마어마한 돈을 버는 기업입니다. 만일 하버드가 기업이라면 금년에 376주년을 맞았는데 이 세상에 376년 동안 1등 자리에서 안 내려온 기업이 있을까요? 저는 그런 기업 모릅니다. 그렇다면 하버드는 1등 자리를 내 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뭔가 분명히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하버드 입학사정관을 10년 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뷰 해 달라고 요청이 오는데, 그럴 때 가끔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하버드 대학은 성적을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 성적 좋은 놈이 다 몰리는데 왜 성적을 안 보겠습니까? 성적 봅니다. 성적 좋은 놈 한 70~80% 일단 챙겨놓습니다. 그 다음은 하버드 대학이 할 줄 아는 기가 막힌 전략으로서, 하버드 대학 회의 가서 제가 그런 이야기 하면 부인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그 전략은 나머지 약 20~30%는 막말로거름을 뽑는 것입니다. 그 학생들한테 크게 기대하는 것 없습니다. 그냥 재미있는 놈들 뽑아서 훌륭한 엘리트들 옆에 뿌려놓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아이들은 교수한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Peer한테 배운다고 합니다. 클린턴 시절에 재무장관 하셨던 분이 쓴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버드에 가서 수업 듣는다고 그 것이 팬 스테이트에 가서 수업 듣는 것보다 진짜로 나은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에 가면 인맥을 만들기 때문이지 수업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버드에는‘Vibrant student community’를 만들기 위해 학생을 뽑는다고 써 있습니다. 굉장히 재미있는 놈들을 뽑습니다. 이런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진짜 엘리트가 되는 것입니다. 혹시 엘 고어의 하버드 대학 룸 메이트가 누군지 아십니까? 맨 인 블랙에 나오는 액션 스타, 타미 리 존스입니다. 엘 고어가 미국 대통령은 못 했을망정불편한 진실이라는 책과 다큐멘터리를 쓰고 만들어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고를 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엘 고어가 엘 고어랑 룸메이트 했더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앞 뒤 꽉 막힌 엘리트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 고어와 타미 리 존스가 만났던 것입니다. 저는 기숙사 사감을 하면서 그런 방을 무지하게 많이 봤습니다. 한 놈은 공부만 하고 한 놈은 파티만 하는 아주 힘든 조합입니다. 그런데 하버드는 그렇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 부대낌 속에서 진정한 엘리트가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게 하버드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시간 대학 교수를 했습니다. 미시간 대학도 굉장히 좋은 대학이지만 미시간은 그런 겜블을 하지 못 합니다. 쫓아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급해서 1등만 뽑으려고 합니다. 하버드는 1등이기 때문에 80%쯤 뽑아놓고 나서우리는 얘네만 가지고도 1등 해. 얘네를 더 잘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서울대학 총장님께 자꾸 이야기를 합니다.‘우리나라에서 서울대학교는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신입생의 한 80%만 뽑는 대로 뽑고 나머지 20%b-boy도 뽑고 별 학생을 다 뽑는 것입니다. 저런 이상한 놈이 서울대학교에 어떻게 들어왔나 할 정도의 놈들이 들어와서 난장판을 만들어줘야 그 난장판 속에서 진짜 보석 같은 엘리트들이 탄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야기 드려도 못 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한 놈들로 100% 뽑으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업에서도 도입 해야 합니다. 결국은 일할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80%만 뽑아 놓는 것이 그렇게 큰 겜블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나머지 20% 정도는 정말 괴짜들을 뽑아놓고 막 뒤섞어 놓는다면 사는 것은 고달픕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무언가 불꽃이 튀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 질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질문 2. 일본인과 어느 날 밥을 같이 먹는데 웃습니다. 왜 웃냐고 했더니 반찬을 한꺼번에 여러 개를 먹는 것에 깜짝 놀라서 웃었다고 합니다. 그 사건을 통해서 일본 사람하고 우리나라 사람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선조가 많이 같은데도 우리는 많이 다릅니다. 혹시 생태학적이나 또는 생물학적으로 이런 다름의 가장 큰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참 흥미로운 질문이십니다. 그 답변을 하기 전에 제가 변명을 하나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이 다 잘났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우리는 기초를 너무 안 하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반성하기로 하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질문하신 것에 대해서는 이미 여기 저기 제 나름대로 의견을 밝힌 것이 있습니다. 저는 섬과 반도의 차이라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섬나라 사람들로서의 자부심이 굉장합니다. 이 세상에서 토기는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고수하려고 하고 전 세계 고고학 연구비의 반 이상이 일본에서 나옵니다. 일본은 고고학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합니다. 한 몇 년 전에는 자기가 심어놓고 발견했다고 했다가 들킨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은 중앙아시아 어딘가에서 더 오래된 토기가 있다는 사실이 탄소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서 결정 났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굉장히 섭섭해 하는데 일본은 문화가 일본 섬에서 만들어져서 대륙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그 것은 생태학자가 보기에는 전혀 말이 안 됩니다. 생물들은 대륙에서 섬으로 갑니다. 진화의 역사에서 섬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 멸종 확률이 너무 높아서 섬이 근원지가 될 리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섬에서는 자꾸 죽어나가고 육지에서 자꾸 건너가는 것이 생태학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건너갈 때 제일 많이 통과하는 곳이 반도입니다. 반도는 가끔 섬에서도 기어올라옵니다. 일본 사람들이 기어올라와서 우리 타고 중국까지 가서 난리를 치기도 했습니다. 반도는 길목이라서 굉장히 다양한 생물들이 살 수 있습니다. 저는 개미 연구를 오래했는데, 실제로 영국 섬 전체의 개미 종이 한 40종 정도 밖에 없는 것에 반해 면적이 훨씬 작은 우리 남한에는 거의 180종 정도가 발견되었습니다. 즉 반도는 생물 다양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저희 생각에는 반도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고유의 독특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많은 것들이 관통하고 섞이고 머물렀다 갔고 사실은 우리 민족이 굉장히 많이 섞인 민족입니다. 단일 민족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 것은 신채호 선생님이 민족 단결을 위해 억지로 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 이전에 단일 민족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배운처용가를 보면 중동 사람이 와서 자기 부인하고 같이 잔 내용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굉장히 많은 것이 섞여있습니다. 유전자 조사를 해 보아도 유전자가 굉장히 다양한 종족입니다. 역시 반도였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반도가 가진 독특함이 통섭이나 융합을 품을 수 있는 토양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초만 확실하게 잘 다지면서 멍석만 잘 펴 준다면 융합, 통섭을 우리가 참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질문 3. 책에서도 말씀 하신 것처럼 배운 것 같지 않게 재미있게 많이 배운 것 같아서 너무 감사 드립니다. 책 읽으면서 성 선택론에 관해서 되게 흥미롭게 생각하게 되었는데 괜찮으시다면 그것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성 선택론에 대해서 대한민국 사람으로는 최초로 공부한 사람이 아마 저 일 것입니다. 다윈이 자연 선택과 성 선택 두 개를 설명했는데 저도 자연 선택 연구하려고 시작했다가 연구하다 보니까 성 선택이 제 연구에서 너무나 중요해져서 제 박사학위 논문에 가장 자주 인용된 키워드가 ‘Sexual selection’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한테 성 선택론에 대한 책을 한 권 집필하면 좋겠다고 제안이 와서 내년이나 후년에 베를린 고등과학원에 한 1년 가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그만큼 성 선택 연구를 많이 했는데 저한테는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다윈이종의 기원에서 자연 선택을 설명 하면서 힘들어 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꿩 중에 왜 장끼는 저렇게 화려한데 까투리는 보호색으로 보여질 정도로 드러나지 않을까? 같은 종인데 왜 수컷들은 저렇게 화려하고 암컷들은 화려하지 않을까?’와 같은 것입니다. 화려하다는 것은 잘 들킨다는 뜻이 되니까 위험하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컷들은 왜 저렇게 했을까 굉장히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2년 뒤인간의 유래라는 책을 쓰면서이 세상에는 자연 선택이라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 선택이 있다. 성에 관련된 선택은 자연선택과는 별개로 일어날 수 있다라고 밝혀냅니다.

이를 테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케네디 가의 여성이 선택 해줘서 결혼도 하고 캘리포니아 주 지사를 재냈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그는 영화에서 근육질 남자로 나오기도 해서 여성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 주지사 선거에서 거의 떨어질 뻔 했습니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고 파티에 가서 성추행을 하도 많이 한 게 들통이 나서 기자회견까지 했습니다. 남자답게 나와서 시인하고 사과를 한 덕에 케네디 가의 후원을 업어서 주 지사까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우디 엘런을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만약 석기시대였다면 우디 엘런이 조용히 토끼 한 마리 잡아가지고 집에 오다가도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에게 덩치로 밀려 사냥감을 빼앗겼을 것입니다. 자연선택, Natural selection으로 보면 도저히 게임이 안 되고 우디 엘런에게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디 엘런 주변에는 아름다운 여성이 끊이지 않습니다. 성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우디 엘런이 성공한 수컷입니다. 예전 같은 상황에 있었으면 우디 엘런이 일찍 죽어서 빛을 못 봤을지 모르지만 현대에 들어오면서 근육의 힘 보다는 머리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우디 엘런이 살아남으면서 많은 여성을 상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의 유전자가 후세에 남을까요? 물론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마리아 슈왈츠제네거 사이에서도 낳고, 하녀 사이에서도 자녀를 낳아 그 만큼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우디 엘런에게 비하면 비교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누구의 유전자가 더 많이 퍼져나갔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경우에 자연선택보다는 성 선택이 훨씬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분야에서도 이제는 성 선택에 대한 연구가 주류를 이룹니다. 제가 처음 시작할 때는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1년에 나오는 논문 100편 중에 80편이 성 선택에 관련된 논문들입니다. 웬만한 것은 이제 다 성 선택으로 설명이 되기 시작합니다. 마케팅도 성 선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윈 이전에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지만 따지고 보면 암수간의 선택처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그 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이성 선택입니다. 생존에 작용하는자연 선택보다 진화적으로 더 막강한 힘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연구해 볼 만한 분야입니다.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우희 연구원 (whkim@ips.or.kr)